오바마 ‘애플 수입금지’ 거부권 행사… 특허권료 협상서 삼성 불리해져
동아일보
입력 2013-08-05 03:00 수정 2013-08-05 03:00
《 26년 만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금지 조치를 거부한 데는 상당한 고민이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미 언론과 전문가들이 거부권 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 상황에서 결정 마감 시한인 3일 막판에 예상을 뒤집은
반전 카드를 빼들었다. 》
특허 침해 사실만을 갖고 자국의 정보기술(IT)의 대표주자 격인 애플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에 미 행정부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미국시장 내 삼성전자의 급성장도 정치권과 재계가 견제구를 던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허 침해 판정 결과를 경제 및 정치적 이유로 뒤집었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 겉과 속이 다른 거부권 행사 배경?
ITC의 권고를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한 이유는 ‘애플의 삼성 특허 침해를 인정하더라도 이를 수입금지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과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대행한 미 무역대표부(USTR)는 그 근거로 이른바 ‘공용특허’로 해석될 수 있는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원칙을 강조했다.
마이클 프로먼 USTR 위원장은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ITC의 권고를 거부한 데 대한 부담을 고려한 듯 “이번 정책 결정은 ITC의 결정이나 분석에 대한 동의나 비판은 아니다. 또 특허 보유권자가 구제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법원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허 침해 판정과 수입금지 결정은 별개의 문제임을 확실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실상 표준기술에 해당되는 특허 기술 침해와 관련된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꾼 것은 보호무역주의를 드러낸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특히 그동안 자유무역 정책을 신봉해 온 오바마 대통령이 이 같은 인상을 던져줄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여기에는 미 정치권과 재계의 끊임없는 압박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는 게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미 상원의원 4명은 최근 프로먼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애플 제품 수입 금지에 대해 “공익을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버라이즌, AT&T 등 미 IT업계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했다. 미 IT업계가 이번 결정에 관심을 쏟은 것은 오바마가 삼성의 손을 들어줄 경우 삼성의 협상력이 더욱 커져 미 업체들의 목소리가 더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 대통령이 ITC 권고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7년 삼성전자의 컴퓨터 메모리칩 관련 분쟁 이후 26년 만이다.
○ 잠잠하던 특허전쟁 재가열 우려
이번 결정으로 삼성과 애플이 중심이 되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세계 IT업계의 특허전쟁이 다시 타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과 애플은 수년간 지속되어 온 특허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내부 협상을 해왔으며 막판 합의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로 애플과의 특허권료 협상이 불리한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 원칙의 적용이 반드시 삼성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전자업계는 애플 제품 수입금지를 거부한 미국 정부가 역으로 삼성전자 제품만 수입을 금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제품에만 불이익을 준다면 노골적으로 자국 업체를 보호하려 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런 의미에서 수입금지는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주요 외신들은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 제품이 수입금지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일부 상원의원이 행정부에 편지를 보내 우려를 표시할 정도로 이번 사안은 정치적으로 흘렀다고 설명했다. 특히 FT는 “워싱턴의 노골적 ‘애플 편들기’가 애플-삼성 간 싸움에서 두 번째 승리를 애플에 안겨줬다”며 지난해 애플이 낸 소송에서 미국 법원이 삼성에 거액의 벌금을 선고한 일을 상기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번 결정을 이례적이라고 해석하면서 “삼성전자의 법적 승리를 (정치적으로) 뒤집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김기용 기자 witness@donga.com
▼ 표준기술 특허권 남용 막기위한 ‘프랜드 원칙’ ▼
美정부 ‘잠자던 규정’ 돌연 거부권 근거로 제시
ITC의 권고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한 근거인 ‘프랜드 원칙’은 표준기술 특허권 남용을 막자는 것이다.
삼성이 제기한 4건의 특허침해 주장 가운데 ITC가 애플의 침해를 인정한 것은 ‘무선통신에서 데이터 전송의 오류를 없애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처럼 휴대전화를 만들려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표준기술 특허에는 프랜드 원칙이 적용된다.
전 세계 기업들이 반드시 같은 기술을 써야 하는 통신 분야에선 ‘3GPP’ 같은 국제표준화기구가 표준기술을 정하는데 특허권자는 이때 프랜드 원칙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특허권자가 표준기술로 과도하게 높은 특허료를 받으려 하거나 사업자를 차별해 기술을 제공할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다.
미 정부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12월 애플과 구글이 벌인 특허침해 소송에서 “프랜드 원칙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선 법원이 가처분이나 금지 처분을 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을 프랜드 조항 위반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삼성전자가 다른 기업과 벌이고 있는 특허소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손으로부터 특허침해 소송을 당해 ITC의 판정을 앞두고 있다. 이 소송에서는 에릭손이 프랜드 조항을 위반했는지가 쟁점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특허 침해 사실만을 갖고 자국의 정보기술(IT)의 대표주자 격인 애플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에 미 행정부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미국시장 내 삼성전자의 급성장도 정치권과 재계가 견제구를 던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허 침해 판정 결과를 경제 및 정치적 이유로 뒤집었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 겉과 속이 다른 거부권 행사 배경?
ITC의 권고를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한 이유는 ‘애플의 삼성 특허 침해를 인정하더라도 이를 수입금지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과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대행한 미 무역대표부(USTR)는 그 근거로 이른바 ‘공용특허’로 해석될 수 있는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원칙을 강조했다.
마이클 프로먼 USTR 위원장은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ITC의 권고를 거부한 데 대한 부담을 고려한 듯 “이번 정책 결정은 ITC의 결정이나 분석에 대한 동의나 비판은 아니다. 또 특허 보유권자가 구제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법원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허 침해 판정과 수입금지 결정은 별개의 문제임을 확실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실상 표준기술에 해당되는 특허 기술 침해와 관련된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꾼 것은 보호무역주의를 드러낸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특히 그동안 자유무역 정책을 신봉해 온 오바마 대통령이 이 같은 인상을 던져줄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여기에는 미 정치권과 재계의 끊임없는 압박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는 게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미 상원의원 4명은 최근 프로먼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애플 제품 수입 금지에 대해 “공익을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버라이즌, AT&T 등 미 IT업계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했다. 미 IT업계가 이번 결정에 관심을 쏟은 것은 오바마가 삼성의 손을 들어줄 경우 삼성의 협상력이 더욱 커져 미 업체들의 목소리가 더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 대통령이 ITC 권고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7년 삼성전자의 컴퓨터 메모리칩 관련 분쟁 이후 26년 만이다.
○ 잠잠하던 특허전쟁 재가열 우려
이번 결정으로 삼성과 애플이 중심이 되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세계 IT업계의 특허전쟁이 다시 타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과 애플은 수년간 지속되어 온 특허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내부 협상을 해왔으며 막판 합의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로 애플과의 특허권료 협상이 불리한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 원칙의 적용이 반드시 삼성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전자업계는 애플 제품 수입금지를 거부한 미국 정부가 역으로 삼성전자 제품만 수입을 금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제품에만 불이익을 준다면 노골적으로 자국 업체를 보호하려 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런 의미에서 수입금지는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주요 외신들은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 제품이 수입금지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일부 상원의원이 행정부에 편지를 보내 우려를 표시할 정도로 이번 사안은 정치적으로 흘렀다고 설명했다. 특히 FT는 “워싱턴의 노골적 ‘애플 편들기’가 애플-삼성 간 싸움에서 두 번째 승리를 애플에 안겨줬다”며 지난해 애플이 낸 소송에서 미국 법원이 삼성에 거액의 벌금을 선고한 일을 상기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번 결정을 이례적이라고 해석하면서 “삼성전자의 법적 승리를 (정치적으로) 뒤집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김기용 기자 witness@donga.com
▼ 표준기술 특허권 남용 막기위한 ‘프랜드 원칙’ ▼
美정부 ‘잠자던 규정’ 돌연 거부권 근거로 제시
ITC의 권고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한 근거인 ‘프랜드 원칙’은 표준기술 특허권 남용을 막자는 것이다.
삼성이 제기한 4건의 특허침해 주장 가운데 ITC가 애플의 침해를 인정한 것은 ‘무선통신에서 데이터 전송의 오류를 없애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처럼 휴대전화를 만들려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표준기술 특허에는 프랜드 원칙이 적용된다.
전 세계 기업들이 반드시 같은 기술을 써야 하는 통신 분야에선 ‘3GPP’ 같은 국제표준화기구가 표준기술을 정하는데 특허권자는 이때 프랜드 원칙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특허권자가 표준기술로 과도하게 높은 특허료를 받으려 하거나 사업자를 차별해 기술을 제공할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다.
미 정부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12월 애플과 구글이 벌인 특허침해 소송에서 “프랜드 원칙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선 법원이 가처분이나 금지 처분을 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을 프랜드 조항 위반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삼성전자가 다른 기업과 벌이고 있는 특허소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손으로부터 특허침해 소송을 당해 ITC의 판정을 앞두고 있다. 이 소송에서는 에릭손이 프랜드 조항을 위반했는지가 쟁점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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