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직장에서 자신만 따돌림 당한다고 느끼는 순간
동아일보
입력 2013-01-26 03:00 수정 2013-01-26 05:24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땐 어렵게 생각지 말고 뒤를 돌아보자. 아마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동아일보DB
김미연(가명) 씨는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으로 동료 여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외롭고 힘들다는 호소를 하며 병원을 찾아왔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다. “여직원이 불과 4명뿐인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그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 두 달 전 나머지 3명과 떨어진 부서로 옮기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처음 몇 번은 그 친구들이 홀로 떨어진 내게 점심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고 종종 차나 커피를 같이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뜸해지더니 어느새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지요. 그런데 연장자인 내가 먼저 연락해 함께 밥을 먹자고 말하는 것이 자존심 상했어요. 몇 번 혼자 밥을 먹었는데 그런대로 괜찮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갑자기 소외감이 물밀듯이 몰려왔고 그 친구들이 나를 무시하고 따돌렸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했고, 다른 여직원들과 마주치면 스스럼없이 일상적인 안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단다. 하지만 세 명 가운데 누구 하나 자신에게 따로 만나자거나 밥을 함께 먹자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실망감은 물론이고 ‘내가 그들에게 잘못했나?’ ‘나는 사랑받지 못해’라는 자기 비하의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예전에 후배 한 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언니는 첫인상이 조금 무서워서 말 걸기가 어렵다”고 한 표현이 귓가에 맴돌기도 했다. 이내 식욕이 떨어졌고, 슬픈 감정이 들었으며, 매사 의욕과 흥미도 별로 없는 채 최근에는 불면 증세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주요 우울성 장애’다. 그녀가 이런 증세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친밀했던 이들과의 멀어짐이다. ‘상실(loss)’이란 우울증을 야기하는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그녀는 상실감을 느꼈지만 그것을 별일 아닌 것처럼 평가 절하했고, 심지어 자기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부정했다.
우울증의 여러 치료 기법 중에서 ‘대인관계 정신치료(Interpersonal Psychotherapy)’라는 것이 있다. 이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에는 대인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대인관계 정신치료 이론에 의하면 우울증의 치료에 있어서는 네 가지 영역을 살펴보고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해결되지 않는 애도(Unresolved grief)’, ‘사회적 역할 논쟁(Social role dispute)’, ‘사회적 역할 전환(Social role transition)’, ‘대인 결핍(Interpersonal deficit)’이 그것들이다. 그녀는 동료 여직원들과의 부분적 이별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압했고, 결과적으로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대인 결핍 상태에 놓였다. 그러니 그녀에게는 탈이 난 대인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했다.
먼저 그녀의 감정을 살펴봤다. 그녀는 왜 사람들과 떨어진 상황에 대해서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같은 회사 동료다 보니 서로 어울리면서 지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친하다’란 느낌은 약했다. 그러다 보니 셋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도, 멀게 느껴지는 사람도 없이 똑같은 원근감을 유지했다.
나머지 세 명 A, B, C의 관계에 대해서 묻자, “아마 A와 B가 서로 더 친했던 것 같고, C는 그저 어울리는 정도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A와 B가 전체 관계의 핵심이며 조금 떨어진 곳에 C가, 그녀는 보다 멀리 놓여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사라져도 전체 관계가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들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던 그녀가 왜 시간이 지나면서 갑자기 소외감을 느꼈을까?
그것은 사실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혼자서 생활하기보단 서로 모여서 집단을 이루며 생존을 유지했다. 원시 시대에서의 ‘따로 떨어진 혼자’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 사람은 굶어 죽거나 동물 또는 다른 부족의 습격을 받아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인 역시 혼자 있음에 대한 원초적 불안을 갖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유전자 차원에서 저장된 경험적 기억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원초적 불안이 활성화되어 고립감, 소외감, 슬픔, 두려움, 분노, 좌절 등의 부정적 감정들이 뿜어져 나왔다.
치료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감정의 전개 과정을 들여다봤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때 차라리 아쉽다고 먼저 말할 것을…” 하고 답했다. 이제 깨달았으면 실천할 차례다. 그녀는 동료 여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달 동안 너희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까 너무 외롭고 슬펐어. 너희들과 함께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얘기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깨달았어.”
사람들은 다소 놀란 듯이 반응하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간 내가 제일 나이 많다고 혹시 서운하게 한 점 있으면 사과할게. 그리고 사실 불필요한 자존심 때문에 먼저 다가서지 못했어. 이제부터는 예전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싶으니 나도 좀 끼워 줘.”
고백에 가까운 그녀의 행동에 다들 놀랐지만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고 한다. 그녀의 상태는 이제 대인 ‘결핍’ 상태에서 대인 ‘풍부’ 상태로 돌변했고, ‘해결되지 않는 애도’는 어느새 ‘해결된 애도’, 즉 ‘재결합’으로 발전했다. 식욕 부진 등 그녀의 증상들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은 그야말로 덤이었다.
손석한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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