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꼬리물기車에 내 인생 1년반 부서져”
동아일보
입력 2013-01-05 03:00 수정 2013-01-05 05:23
‘교차로 사고’ 대전 40대 주부의 하소연
최정숙 씨(45·여·대전 서구 둔산동)는 이곳에서 꼬리물기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다. 엄연히 초록 신호를 보고 출발했는데 오른쪽 길에서 나타난 차량과 부딪친 것. 당연히 자신이 피해자고 꼬리물기 차량이 가해자로 결론날 줄 알았지만 정반대의 조사 결과 때문에 1년 6개월 동안 재판을 치러야 했다.
꼬리물기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2일자 동아일보 ‘시동 꺼 반칙운전’ 첫 회를 보고 최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를 보고 속이 시원했어요. 꼬리물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세상에 알려주세요. 저 같은 피해자가 어디 한둘이겠어요?”
그는 2011년 5월 10일 오후 7시 25분경 보문산 오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테미고개 방면으로 가기 위해 교차로에 진입했다. 초록 신호를 받은 직후여서 시속 20km쯤 됐을까. 순간 ‘쾅’ 소리가 났다. 정신 차리고 눈떠 보니 예상치도 못했던 차량을 들이받고 자신의 승용차가 멈춰 있었다. 오른쪽 금산 방면에서 좌회전해 역시 테미고개 방향으로 가기 위해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이었다. 노란 신호에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내 교차로에 진입하는 전형적인 꼬리물기식 신호 위반이었다.
사방에서 경적이 울렸고 교차로는 차량으로 뒤엉켰다. 상대방 승용차는 운전석 뒤 문짝이 파손됐고 최 씨의 쏘렌토 차량도 앞 범퍼가 부서졌다. 최 씨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차량수리는 보험 처리를 하면 됐고 상대 차량이 신호를 위반했으니 법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꼬리물기 차량이 아니라 최 씨가 가해자라고 결론 냈다. 상대방이 신호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 씨는 사고 당시 중학생 아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있었다.
“평소 아들에게 신호등 준수 등 준법을 강조했는데, 엄마가 신호위반 교통사고를 낸 꼴이 됐잖아요. 자식 앞에서 법을 어긴 엄마라는 누명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교차로에는 경찰이나 행정기관이 설치한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최 씨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생업인 슈퍼마켓도 뒷전으로 미루고 뛰어다녔다. 마침내 사고 현장 주변 업소 CCTV 녹화 내용을 입수했다. 하지만 식별이 어렵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해 결국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됐다. 벌점 30점에 벌금 150만 원이 나왔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현수막을 3차례 내걸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는 상대 차량 운전자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다 인근 슈퍼마켓의 CCTV에서 결정적인 내용을 확보했다. 최 씨 오른쪽 도로에서 처음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과 사고 차량이 진입할 때까지의 시간이 27초 정도였다. 초록 신호는 22초 동안 지속되고 노란 신호는 3초간 들어오기 때문에 사고를 낸 차량은 빨간불로 바뀌는 시점에 교차로에 진입해 사고를 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하지만 화면이 선명하지 않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최 씨는 6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은 1년 1개월 동안 진행됐다. 모두 8차례 재판이 열려 최 씨가 준비한 관련 서류만도 라면박스 한 상자를 가득 채웠다.
지난해 11월 23일 대전지법. 단순 교통사고 사건이지만 이례적으로 현장검증까지 벌인 대전지법 이지영 판사는 10장 분량의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최 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별것도 아닌 일로 번거롭게 만든다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록 단순한 꼬리 물기,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지만 한 사람의 인생 중 1년 반을 짓밟았어요. 수사기관이 엄중하게 조사해서 제대로 처벌해야만 잘못된 운전습관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최정숙 씨는 2011년 5월 다른 차량의 불법 꼬리물기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가해자로 몰렸다 정식 재판을 통해서야 결백을 입증했다. 최 씨가 3일 대전 중구 보문산 오거리를 찾아 당시 사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4일 오후 대전 중구 대사동 보문산 오거리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꼬리물기’가 끊이지 않았다. 노란불에도 줄줄이 교차로에 진입해 다음 신호를 받고 출발하는 차량들과 뒤엉켰다. 이런 꼬리물기는 운전자에게 짜증만 주는 게 아니다.최정숙 씨(45·여·대전 서구 둔산동)는 이곳에서 꼬리물기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다. 엄연히 초록 신호를 보고 출발했는데 오른쪽 길에서 나타난 차량과 부딪친 것. 당연히 자신이 피해자고 꼬리물기 차량이 가해자로 결론날 줄 알았지만 정반대의 조사 결과 때문에 1년 6개월 동안 재판을 치러야 했다.
꼬리물기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2일자 동아일보 ‘시동 꺼 반칙운전’ 첫 회를 보고 최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를 보고 속이 시원했어요. 꼬리물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세상에 알려주세요. 저 같은 피해자가 어디 한둘이겠어요?”
그는 2011년 5월 10일 오후 7시 25분경 보문산 오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테미고개 방면으로 가기 위해 교차로에 진입했다. 초록 신호를 받은 직후여서 시속 20km쯤 됐을까. 순간 ‘쾅’ 소리가 났다. 정신 차리고 눈떠 보니 예상치도 못했던 차량을 들이받고 자신의 승용차가 멈춰 있었다. 오른쪽 금산 방면에서 좌회전해 역시 테미고개 방향으로 가기 위해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이었다. 노란 신호에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내 교차로에 진입하는 전형적인 꼬리물기식 신호 위반이었다.
사방에서 경적이 울렸고 교차로는 차량으로 뒤엉켰다. 상대방 승용차는 운전석 뒤 문짝이 파손됐고 최 씨의 쏘렌토 차량도 앞 범퍼가 부서졌다. 최 씨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차량수리는 보험 처리를 하면 됐고 상대 차량이 신호를 위반했으니 법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꼬리물기 차량이 아니라 최 씨가 가해자라고 결론 냈다. 상대방이 신호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 씨는 사고 당시 중학생 아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있었다.
“평소 아들에게 신호등 준수 등 준법을 강조했는데, 엄마가 신호위반 교통사고를 낸 꼴이 됐잖아요. 자식 앞에서 법을 어긴 엄마라는 누명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교차로에는 경찰이나 행정기관이 설치한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최 씨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생업인 슈퍼마켓도 뒷전으로 미루고 뛰어다녔다. 마침내 사고 현장 주변 업소 CCTV 녹화 내용을 입수했다. 하지만 식별이 어렵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해 결국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됐다. 벌점 30점에 벌금 150만 원이 나왔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현수막을 3차례 내걸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는 상대 차량 운전자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다 인근 슈퍼마켓의 CCTV에서 결정적인 내용을 확보했다. 최 씨 오른쪽 도로에서 처음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과 사고 차량이 진입할 때까지의 시간이 27초 정도였다. 초록 신호는 22초 동안 지속되고 노란 신호는 3초간 들어오기 때문에 사고를 낸 차량은 빨간불로 바뀌는 시점에 교차로에 진입해 사고를 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하지만 화면이 선명하지 않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최 씨는 6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은 1년 1개월 동안 진행됐다. 모두 8차례 재판이 열려 최 씨가 준비한 관련 서류만도 라면박스 한 상자를 가득 채웠다.
지난해 11월 23일 대전지법. 단순 교통사고 사건이지만 이례적으로 현장검증까지 벌인 대전지법 이지영 판사는 10장 분량의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최 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별것도 아닌 일로 번거롭게 만든다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록 단순한 꼬리 물기,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지만 한 사람의 인생 중 1년 반을 짓밟았어요. 수사기관이 엄중하게 조사해서 제대로 처벌해야만 잘못된 운전습관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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