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급발진조사 이상해…몰랐나, 숨겼나?
동아경제
입력 2012-12-07 14:28 수정 2012-12-10 15:20
정부가 급발진 2차 조사대상 차량인 BMW 528i 엔진제어장치(Engine Control Unit) 조사과정 중에 냉땜(cold soldering joint·납땜 불량) 의심 부위를 발견했지만 간과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달 21일 국토해양부는 급발진 2차 조사 관련 발표 당시 “한국전자부품연구원(Korea Electronics Technology Institute·이하 KETI)이 실시한 528i 사고차량 엔진제어장치 외관검사·X-Ray·초음파 등 비파괴검사와 단면분석·Decapsulation·SEM/FIB 분석 등 파괴검사에서 기계적인 오작동을 일으킬만한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 조사 中 ECU 냉땜(크랙) 진행 포착
하지만 동아닷컴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KETI가 사고차량 엔진ECU를 분석한 자료에는 이 기판의 한 부위에서 냉땜(‘크랙’이라고 표현)이 진행 중이라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내용을 보도자료에서 빼고 브리핑을 진행했다.
냉땜은 납땜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 엔진ECU에 냉땜이 발생할 경우 일부 잘못된 신호가 발송돼 스로틀밸브(엔진에 연료의 공급을 조절하는 콘트롤)가 갑자기 열리거나 닫히며 급발진 의심 현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전자부품연구원 분석 자료를 보관중인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지난달 30일 자료 확인과 함께 설명을 직접 들었다”며 “KETI의 분석 자료에 의하면 사고차량 엔진ECU 한 곳에 크랙이 진행되고 있지만, 전기적 접촉은 유지되고 있다고 기재돼 있었다”고 말했다.
美 NASA, 엔진ECU 분석 10개월 소요
韓 안전공단, 사고동일조건 실험 생략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사고차량과 동일한 조건에서 분석이 진행됐다면 실험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KETI에 엔진ECU 분석을 의뢰하려면 추가적으로 급발진을 가려내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급발진 합동조사단 자문위원이 제안한 ‘ECU 정밀검사 안’도 함께 전달해야하는 게 원칙이다. 이 안은 얼마 전까지 급발진 합동조사단 자문위원을 지낸 기계고장전문가 장석원 공학박사가 만들어 자문회의(8월 7일)에서 조사 방법 등을 설명했다.
장 박사는 “‘ECU 정밀검사 안’에 나와 있는 내용을 분석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며 “지난 2010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나사(NASA·미항공우주국)에 의뢰해 토요타 급발진 추정사고 엔진ECU를 분석할 때 열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KETI의 조사결과에는 이상이 없지만 냉땜 등 동작조건을 고려한 분석을 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BMW 사고조건 맞추려면
진동+100℃ 인가해 실험해야
‘동작조건을 고려한 분석’이란 사고 발생 당시와 같은 조건에서 이뤄져야한다는 의미다. 이 방법은 장 박사가 지난 8월 7일 엔진ECU 상세 분석 방법을 합동조사단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언급됐다. 그가 이날 발표했던 고장분석 절차를 보면 ▲실사용 전압이하에서 측정(전압인가에 의한 회복방지), 재현되지 않는 경우에는 온도를 변화시키면서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지난 11월 발생한 528i 급발진 추정사고 당시 차량 속도는 214km/h였다. 이때 배기기관에는 최소 850℃의 열이 발생하고 엔진ECU 역시 100℃ 안팎으로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엔진ECU 조사는 이 같은 사용 환경을 갖춘 실험이 아니라 상온(약 15~25℃)에서 진행됐을 뿐더러 단순 하드웨어 이상 유무를 판별하는 분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국토부가 BMW 사고차량의 크랙 발견 관련 정밀 조사는 사고차량에 부착돼 있던 엔진ECU, 전자식 가속제어장치(ETCS) 등 6종을 사고차량과 같은 528i에 장착한 뒤 급가속, 제동, 전자파 내성시험 등을 하는데 그쳐 냉땜과 관련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만약 KETI가 엔진ECU 실험조건을 100℃에 맞추고 진동을 가하는 등 동일한 환경에서 보다 정밀한 분석으로 냉땜 부위의 변화를 파악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급발진 현상은 래치업 때문에 발생
토요타 코롤라도 엔진ECU 납땜이상 리콜
2005년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부품기술학회(Electronic Components and Technology Conference)에 발표된 다층 인쇄회로기판의 신뢰성검증 관련 논문(Assuring Via Reliability from Chip Carriers to Thick Printed Wiring Boards, 2005·Endicott Interconnect Technologies, Inc)에는 온도 변화에 따라 크랙이 고온에서 벌어졌다가 저온에서 다시 붙는 현상이 자세하게 기록돼있다. 위 논문에 따르면 22℃에 납땜 크랙이 발견되더라도 전기적 신호가 통했으나, 각각 100℃·150℃ 이상의 조건에서는 크랙부위가 점점 벌어져 전류가 이어지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결과는 나사(NASA·미항공우주국)의 공식 보고서에도 있다. 2011년 나사 연구책임자 벨트(Belt) 박사의 래치업(Latch-up) 현상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 엔진ECU 오동작은 냉땜과 순시정전(Black-out) 두 가지 요인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엔진 CPU 오동작이 발생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급발진 현상과 시동 꺼짐(유사 급발진)을 유발 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다.
벨트 박사는 지난 2009년 미국에서 발생한 토요타 코롤라와 매트릭스 모델의 시동 꺼짐 현상(133만대 리콜)은 냉땜에 의한 유사 급발진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토요타도 엔진제어모듈(ECM)의 특정 납땜 부위, 회로를 감싸는 데 사용된 전자부품에 균열이 생겨 시동이 꺼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바 있다.
한편 정부는 BMW에게 소명을 요구하고 이 결과에 따라 추가조사 등 향후 일정을 결정할 계획이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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