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용꿈 꾸는 전자상가 “긴장해 아키하바라!”

김범석기자

입력 2015-07-18 03:00 수정 2015-07-1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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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효과’ 기대 부푼 용산

10일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HDC신라면세점은 용산역과 용산전자상가 일대를 ‘한국의 아키하바라’처럼 만들겠다고 밝혔다. 위쪽 사진은 내년 1월 HDC신라면세점이 들어서는 현대아이파크몰의 조감도. 아래쪽은 오타쿠 문화의 성지인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 HDC신라면세점 제공·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전자상가는 한산했다. 중고 게임 소프트웨어 매장이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휴대전화 대리점에만 약간의 손님이 있을 뿐 대부분의 점포에는 직원들만 있었다. 평일 낮 시간인 것을 감안해도 상가 안에는 손님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손님을 맞는 상가라기보다 사무실 같은 점포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예 문을 닫은 점포도 적지 않았다. 전자기기와 전자부품, 게임 소프트웨어 등을 판매하는 이곳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독보적인 전자타운으로 호황을 누린 곳이다. 현재는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한때 잘나갔다’는 추억만 간직한 채 상인들은 매일 손님 몇 명만 맞으며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이날 상가 한쪽에는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 중이었다.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아 보였다.

“관광객들 많이 오지 않겠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이들이 얘기하는 ‘희망’은 내년 1월 용산역 현대아이파크몰에 들어서는 ‘HDC신라면세점’ 얘기였다.

이들의 얘기 중 많이 등장한 단어는 ‘아키하바라(秋葉原)’였다. 아키하바라는 일본 도쿄를 대표하는 전자상가로 애니메이션 캐릭터, 아이돌 가수 등 오타쿠 문화의 성지(聖地)로도 불린다. 일본인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며 아키하바라는 평일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HDC신라면세점은 신규 면세점 선정 전 “침체된 용산전자상가와 공동 마케팅을 펼쳐 용산을 ‘한국의 아키하바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강조한 바 있다.




제2의 ‘아키하바라’ 꿈꾸는 용산역


용산전자상가연합회 등 상인단체 관계자들은 “면세점 운영 업체들과 논의해야 할 것도 많고 동네 자체가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정익교 사단법인 용산전자상가 이사 겸 나진산업 미래기획실 부장은 “유동인구가 많아지는 것만으로도 ‘전자타운’의 분위기는 많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관광객 유치가 중요해진 시대에 면세점에 대한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0년 4조5000억 원이던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올해 10조 원 규모로 5년 만에 2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5조4000억 원이 시내 면세점에서 발생했다.

HDC신라면세점은 그동안 6곳이던 서울시내 면세점에 15년 만에 새로 들어서는 시내면세점 중 한 곳이다. 함께 선정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SM면세점(하나투어 컨소시엄)도 있지만 HDC신라면세점에 좀 더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대(현대산업개발)와 삼성(호텔신라) 등 대기업 2곳이 합작해 면세점 법인을 만들었다는 것도 물론 관심거리다. 하지만 장소가 ‘용산’, 특히 ‘용산역’이라는 것이 흥미롭다는 분위기다.

HDC신라면세점은 호남권 고속철도(KTX)의 시발점인 용산역의 대표 유통단지인 현대아이파크몰에 들어선다. 쇼핑 공간은 전체 6만5000m²의 면적 중 그동안 캠핑·아웃도어, 악기 매장으로 운영되던 3∼7층 문화관 공간에 총 2만7400m² 규모로 조성된다. HDC신라면세점 측은 총 400여 개의 패션 쇼핑 공간은 물론이고 중소·중견기업 제품 판매 공간, SM엔터테인먼트와 합작으로 만드는 5000m² 규모의 한류 공연장, 용산역을 통해 지방 관광을 연계한 관광상품 등을 계획하겠다고 밝혔다. 양창훈 HDC신라면세점 공동 대표(현대아이파크몰 대표이사 사장)는 지난달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침체됐던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 전자상가가 중국인 관광객 특수로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용산역 앞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HDC신라면세점은 도쿄 아키하바라처럼 ‘소프트웨어 파워’가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을 하고 기존에 발표했던 5000m² 규모의 한류 공연장 조성 계획에 덧붙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할리우드 스타 거리를 표방한 ‘한류 스타 거리’를 추진 중이다. 한류 공연장을 함께 만들기로 한 SM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해 만드는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의 밀랍인형이나 핸드프린팅 조형물 등이 들어가는 일종의 ‘포토 존’ 형태로 구성할 예정이다. 위치는 현대아이파크몰 3층 용산역 입구 광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HDC신라면세점은 면세점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텔 및 용산전자상가 등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기 쉽도록 면세점-호텔-전자상가를 한 번에 잇는 구름다리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

면세점 주변 부대시설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하고 있다. 현재 이렇다 할 호텔이 1개도 없는 이곳에 ‘앰배서더 호텔 용산’(1700여 실)부터 ‘육군호텔’(196실), ‘용산의료관광호텔’(387실) 등 호텔 3개가 2017년까지 잇달아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공사 중인 아모레퍼시픽 신사옥(2017년 완공 예정)도 ‘뷰티’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HDC신라면세점의 영향으로 용산역 인근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쇼룸이나 화장품 매장 등을 설치할 것을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용산구청도 용산구의 대표 관광지인 이태원과 용산역을 연계한 관광 정책을 개발 중이다. 대표적으로 이태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 번에 용산역 앞에 갈 수 있도록 한 대중교통(버스)과 외국인 관광용 버스 등을 개발할 방침이다.


‘유커(遊客)’ 명소 된 오타쿠 성지, 아키하바라

HDC신라면세점이 ‘롤 모델’로 꼽는 아키하바라는 일본 도쿄의 동쪽에 있다. JR(저팬레일로드)와 일본 이바라키(茨城) 현 쓰쿠바(つくば) 시를 잇는 쓰쿠바익스프레스, 도쿄 도심의 히비야(日比谷)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최근 이곳에는 ‘이랏샤이마세(일본어로 어서오세요)’보다 ‘환잉광린(중국어로 환영합니다)’이라는 말이 더 잘 들릴 정도다. 그만큼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뜻이다. 지난달 28일 아키하바라의 대표 면세점인 ‘라옥스(LAOX)’는 물론이고 역 앞 캐릭터 상점 ‘세가(SEGA)’에서도 중국어가 가능한 점원들이 가게 앞에 나와 중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본정부관광청에 따르면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13년 131만 명에서 지난해 240만 명으로 약 83%가 늘어났다. 아키하바라는 이들이 즐겨 찾는 도쿄의 대표 장소다. 도쿄도 관광 공식 사이트 ‘Go Tokyo’가 2013년 발표한 보고서 ‘외국인 여행자 행동 특성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도쿄에서 가장 많이 들르는 곳으로 아키하바라가 긴자, 신주쿠, 시부야 등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유는 뭘까. 일본의 전자제품 판매점인 ‘요도바시 카메라’ 아키하바라점의 한 점원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면세 해택을 주고 중국어가 가능한 점원을 따로 뽑는 등 관광객을 끌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는 2009년 아키하바라의 면세점 라옥스가 들어선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시도에 앞서 아키하바라만의 확실한 ‘소프트웨어 파워’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키하바라는 과거 라디오 상가로 시작해 1970, 80년대 TV나 냉장고 등 ‘가전제품 시장의 메카’로 불린 곳이다. 이후 소니 워크맨,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 컴퓨터 등 개인용 전자제품 판매 밀집 지역으로 변모했다. 특히 게임, 만화 등에서 파생된 캐릭터나 소프트웨어 산업과 맞물리면서 이른바 ‘오타쿠’(마니아)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아키하바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일본 게임이나 만화 등 문화 콘텐츠 팬들이 상당수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의 인기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의 공연장과 기념품 판매점 등이 생기면서 그룹 멤버들의 사진이 들어간 상품이나 이들의 공연 영상을 보러 오는 중국인들도 많아졌다. 손님을 ‘주인님’으로 모시는 일본 특유의 ‘메이드 카페’나 만화 캐릭터 ‘건담’을 앞세운 ‘건담 카페’ 등도 아키하바라만의 소프트웨어 파워로 꼽힌다.


외국인 관광객 잡을 ‘소프트웨어’가 필요

HDC신라면세점을 통해 용산역 인근이 아키하바라처럼 관광 명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하드웨어(면세점) 한 곳을 더 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한국의 아키하바라’로 만들겠다는 식으로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이 국내 면세점 및 관광업계에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용산전자상가도 자구책을 모색하는 중이다. 정보기술(IT) 관련 창업자 10여 팀이 입주했고 3차원(3D) 프린트 기술을 접목한 ‘프린팅 체험장’이 생기는 등 텅텅 빈 매장에 소프트웨어를 앞세운 콘텐츠들을 채우는 중이다. HDC신라면세점과 SM엔터테인먼트가 계획 중인 한류 공연장 역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당길 유인책 중 하나로 꼽힌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남조 한양대 교수(관광학부)는 “현재 전자제품 판매점이라는 사실 외에 특별한 지역 문화가 없는 데다 국내에서도 용산전자상가 자체의 경쟁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케이팝 공연장 역시 최근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에 생긴 YG엔터테인먼트의 ‘홀로그램 공연장’ 등 다른 곳에도 이미 케이팝 공연장이 들어섰거나 지어질 예정이어서 용산역 자체의 경쟁력으로 보기에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면세점 쇼핑을 목적으로 방문한 손님들이 무조건 용산전자상가나 인근의 다른 지역 상권을 들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역 매장에서도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거나 할인 쿠폰을 주는 등 자연스럽게 지역 점포도 들르며 관광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 정책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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