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이야기]과속 10마일 묵인 vs 함정 단속

동아일보

입력 2012-01-17 03:00 수정 2012-01-17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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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아예 과속할 생각을 하지 마라.’

미국에 유학이나 주재원으로 나가는 이들이 자주 듣는 말입니다. 과속하다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고, 심할 경우 구속이나 추방까지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기자는 몇 번 미국에서 운전해본 적이 있지만 그래도 지난해 7월 연수를 오면서 약간 긴장을 하게 되더군요. 실제 미국의 고속도로는 어떨까요. 기자가 주로 이용하는 코네티컷 주의 I91이나 I95번 고속도로는 제한속도가 보통 시속 65마일(시속 105km)인데 1차로는 대부분 80마일 정도로 달리고, 2차로는 75마일, 3차로는 70마일 정도입니다. 제한속도 이하로 달리는 차량은 10%도 안 돼 보이더군요.

그런데 시속 10마일을 초과해 75마일로 달리는 차량의 행렬을 경찰차가 더 빠른 속도로 추월해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고, 그런 상황에서도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거의 관습법처럼 시속 10마일까지는 단속을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는 시속 75마일 이상 달리는 차가 거의 없고 보통 70마일 안팎의 속도를 유지해 동부지역보다 평균 속도가 약간 낮습니다. 과속 단속이 심한 영향도 있고 지역적인 특성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오일쇼크로 인해 시속 65마일 안팎이던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1974년 일괄적으로 55마일로 낮췄다가 각 주의 반발이 심해지자 1987년 65마일로 높였습니다. 1995년부터는 각 주에 속도제한 권한을 환원하게 됩니다. 몬태나 주는 이때 제한속도를 없앴습니다. 미국에 가면 도로요금과 제한속도가 없는 ‘프리웨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죠. 하지만 부작용이 생기자 몬태나 주는 1999년 75마일로 제한속도를 만들었습니다. 유타 주와 텍사스 주의 일부 고속도로는 시속 80마일까지 허용됩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제한속도에서 시속 10마일 이상 빠르게 달리는 차는 드뭅니다. 단속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속 70∼80마일로 달리다 보면 이동시간이나 연료소모량 등을 감안할 때 더 빠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100∼110km(약 62∼68마일)인데 운전자들은 시속 120km 안팎으로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단속 정보를 듣고 무인 과속 단속 카메라 앞에서만 속도를 줄입니다. 또 아무리 선의(善意)라지만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가짜 카메라 박스를 놓아두고 운전자들을 기만하는 것도 썩 유쾌한 모습은 아닙니다. 서로 속고 속이려는 모습이랄까요.

운전자의 대부분을 범법자, 혹은 카메라만 피해서 속도를 높이는 얄팍한 사람으로 만드는 법질서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도로의 설계속도는 과거보다 높아졌고 자동차의 성능도 향상됐습니다. 도로의 상황에 따라 속도제한을 현실적으로 약간 더 높이고, 대신 위반할 경우는 엄중한 벌금과 보험료 인상 등으로 과속 의지 자체를 꺾는 것은 어떨까요.

―미국 노스헤이븐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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