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 효시’ 제일모직 역사속으로

염희진기자

입력 2015-05-27 03:00 수정 2015-05-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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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재편 가속]
故이병철회장 각별한 애정… 브랜드명으로 ‘제일모직’ 활용할듯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발표로 ‘제일모직’이라는 사명(社名)은 창립 6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삼성은 창업정신을 계승하고 글로벌 인지도를 고려해 합병회사의 사명을 ‘삼성물산’으로 정했다.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삼성물산은 1938년 설립 이후 1975년 ‘종합상사 1호’로 지정돼 해외 영업을 주도해왔다. 삼성은 제일모직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감안해 제일모직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54년 설립한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가 모태다. 이 선대 회장은 섬유의 국산화를 위해 1956년에는 한국 최초의 모직 공장을 대구에 설립했고,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 독일에서 기술을 도입했다.

회사 설립 연도는 삼성물산(1948년) 제일제당(1953년)보다 늦지만 그룹 내에서 제일모직은 실질적 근간이나 다름없었다. 이 선대 회장은 1987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제일모직의 등기이사직을 유지할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제일모직 사사에 따르면 이 선대 회장은 1954년 9월부터 1971년 1월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도 1987년 취임 후 1980년대 후반부터 2005년까지 제일모직 등기이사로 재직했다.

제일모직은 1958년 첫 흑자를 올리면서 한국 섬유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 1961년에는 양복에 쓰이는 천을 국내 최초로 해외에 수출했다. 1960년대까지 원사와 모직물 생산을 주로 해오다 1970년 한국 최초의 남성복 브랜드인 삼성물산의 ‘댄디’를 인계받아 기성복 시대의 막을 열었다. 이후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에서 빈폴과 갤럭시, 로가디스, 여성복 구호 등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1980년대까지 의류사업 위주였던 제일모직은 1990년대부터 석유화학과 전자재료 부문에 진출하며 10년마다 한 번씩 혁신을 거듭했다. 1990년대 이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합성수지 사업으로 기업 변신에 성공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전자재료 사업 육성에 나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능성 소재 등 첨단 제품을 개발했다. 2004년에는 화학과 전자재료 부문 매출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2013년 제일모직은 패션사업부문을 관계사인 삼성에버랜드에 넘긴 이후 소재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해왔다. 지난해 7월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하며 사라질 뻔했지만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꾸며 살아났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제일모직 패션부문과 삼성에버랜드가 합병할 당시 업계에서는 패션부문보다 부동산과 레저 사업의 비중이 커 에버랜드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그럼에도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을 살릴 만큼 그룹 내에서 제일모직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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