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성열]‘장그래’를 진정 구하고 싶다면…

유성열기자

입력 2015-01-01 03:00 수정 2015-01-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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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임금동결 받아들이고… 재계는 시간제 일자리 등 약속
1982년 네덜란드식 대타협 고려를


유성열·정책사회부
정부가 지난해 12월 29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제출하면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정부는 3월까지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반발하는 등 험로가 예상된다. 야당 역시 노사정 합의안이 국회로 온다고 해도 그대로 통과시키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노동시장 구조 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당장 기업들은 60세 정년연장법이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2016년 이전부터 이미 신규 채용을 줄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V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은 6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은 다 제시했다”고 할 정도로 정부안은 예상보다 파격적이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동시에 반대하고 나선 것 역시 정부안이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도록 설계됐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물론 동시에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정부를 믿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노동계는 고용유연성만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경영계 역시 비정규직 처우만 개선해 주다가 정작 자신들의 등골이 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누구나 솔로몬의 해법을 생각하기 쉽지만 묘수는 결국 가장 상식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상식은 바로 노동계와 경영계가 임금동결과 고용안정을 맞교환하는 사회적 대타협뿐이다. 1970년대 극심한 실업난을 겪었던 네덜란드도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노동계가 임금동결을 받아들이는 대신,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과 시간제 일자리 나누기 등을 약속한 것. 그 결과 네덜란드의 고용률(2013년 기준)은 7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반면 같은 해 한국의 고용률은 64.4%밖에 되지 않고 비정규직의 처우는 훨씬 열악하다.

한국이라고 바세나르 협약 같은 사회적 대타협을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 노사정 간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네덜란드도 뤼돌퓌스 뤼버르스 총리의 리더십과 노사정 간 끊임없는 대화가 없었다면 대타협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1999년 2월 이후 노사정위에서 탈퇴해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참여 역시 필수적이다.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이 노사정 대화 가능성을 밝힌 것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민주노총도 당분간은 ‘거리 투쟁’을 접고 미래를 위한 노동시장 구조 개혁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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