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m 날아간 오피러스, 급발진인가? 진실공방

동아경제

입력 2014-05-22 10:00 수정 2014-05-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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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3월 26일 오후 3시. 윤두현 씨(64)는 기아자동차 오피러스를 운전하던 아내 A씨(60)가 의문의 차량사고를 당해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황급히 경기도 의정부 모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아내 A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인지장애를 안고 살아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당시 동승했던 지인 둘 중 한명은 숨을 거뒀고, 이들은 운전자 과실 때문에 사고가 났다며 곧바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윤 씨는 답답했다. 물어도 대답 없는 아내를 보면 더욱 그랬다. 아내 잘못으로만 보기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황들 때문에 억울한 부분이 많았다. 윤 씨의 아내는 운전을 16년 동안 했지만 사고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윤 씨는 당시 “급발진이 아니고서야 사고에 대한 설명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불상(不詳)’으로 최종 결론 났기 때문에 이 끔찍했던 사고 원인을 꼭 밝혀내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시작한 급발진 공방이 벌써 5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기아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잘못 조작해 발생한 것으로 추인함이 상당하다, 즉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이유 없다’라는 이유로 지난해 패소 판결을 받은 윤 씨는 곧바로 서울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그리고 이 사건 재판부의 현장검증이 있었던 지난 19일 오후 3시. 취재진은 담당판사와 원·피고 측 변호인과 동행해 사고 상황들을 되짚어봤다.

포천경찰서에 따르면 당시 A씨의 오피러스는 경기도 포천의 편도 1차선 도로를 달리 던 중 우측으로 굽은 내리막길에서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자동차검사소 입구로 돌진했다. 검사소 주변에 주차된 쏘나타의 왼쪽 뒷문과 범퍼를 추돌하고 콘크리트 벽에 부딪힌 뒤 약 40m 정도 날아가서야 정지했다.

여기서 차량 이동 경로는 사건의 가장 큰 논란거리다. 차량이 쏘나타와 높이 80~100cm, 두께 23cm 벽을 잇달아 추돌하고도 멈추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 먼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차의 이동구간에는 다른 차량 4대가 나란히 주차돼 있었지만, 오피러스로 인한 파손이나 흠집이 전혀 없었다. 또한 폭 6m가량의 개천도 있었다. 하지만 오피러스는 이를 모두 뛰어넘어 40m 이상을 날아갔다.

윤 씨의 주장은 이런 정황을 봤을 때 오피러스의 속도가 줄지 않을 만한 엄청난 힘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이는 윤 씨가 급발진을 의심하는 결정적 이유다. 차량 속도에 대해 기아차는 사고 현장 CCTV 분석결과 100~126km/h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그 정도 속도로는 40m 가량을 날아가기 힘들고 그보다는 훨씬 높은 속도였다는 게 윤 씨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같은 코스를 최대한 빨리 내달리면 최대속도는 얼마나 나올까. 취재진은 사고 차와 동일 모델인 오피러스 2010년형 2.7리터 LPG모델을 타고 직접 주행해봤다. 사고 전 이동 상황을 고려해 사고 지점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부터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속도를 높였다. 그 결과 오피러스는 약 100m 정도의 오르막길을 40~50km/h에 주파했고, 이후 9초 동안의 내리막길에서 사고 지점까지 최고속도 120km/h를 찍었다.

사고 지점은 급격한 곡선이 시작되는 장소로 반드시 감속이 필요했다. 문제의 차량처럼 중앙선을 넘고 계속 진행했다면 속도는 최대 130km/h까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거리였다. 사고 당시 정확한 속도는 이번 달 내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교통사고분석 결과가 나와 재판부로 넘겨질 예정이다. 이때 만약 130km/h 이상 속도가 났다면 운전자 실수로만 봐왔던 재판부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사고기록장치(EDR) 유무에 대해서도 양측의 주장은 엇갈렸다. EDR에는 충돌 직전 5초 동안 △브레이크 작동 여부 △속도 △분당 엔진회전수(RPM) 등의 핵심 정보가 담겨 있어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원고 측은 사고차량의 EDR 데이터 공개를 줄곧 요구해왔지만, 기아차는 2009년도에 제작한 오피러스에는 EDR이 없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가 정부에 보낸 대외비 문서를 보면 지난 2008년 이후 전 차종 EDR 장착이라고 기록돼 원고 측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아차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미국 법규가 요구하는 EDR과 유사한 기록 장치를 장착한 차종이 일부 있다”며 “적용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내용은 회사 영업비밀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차량이 벽을 충돌했을 때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고 브레이크 자국도 없었다 △사고 이후에도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됐다 △사고 직후 찍힌 사진을 보면 운전자 오른쪽 신발이 가속 페달 위에 위치했고, 신발 밑면에 가속 페달 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었다 △ECU는 차량에 이상 신호가 있는 경우 페일세이프 모드로 자동 전환돼 차량 가속을 막는다는 등의 이유로 운전자 실수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항소심에 대한 변론은 다음달 25일 예정돼 있고 올해 하반기에 최종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 EDR(Event Data Recorder) ::

자동차의 에어백과 연동해 장착된 기록 장치. 충돌 5초 전부터 충돌 때까지 △브레이크 작동 여부 △속도 △엔진회전수(RPM) △공기흡입장치(스로틀 밸브)의 열림 정도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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