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이면 될 급발진 EDR분석 왜 미루나?
동아닷컴
입력 2012-11-07 16:00 수정 2012-11-08 09:09
정부가 급발진 관련 조사 2차 대상 차량에 대한 EDR(사고기록장치) 분석을 늦추면서 의혹을 사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당초 BMW 528i와 현대자동차 YF쏘나타 두 건의 급발진 2차 조사결과를 지난달 31일 공개하기로 했다가 일정을 미뤘다. 특히 YF쏘나타 조사는 정부와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타협점을 찾지 못해 무기한 연기됐다.
국토부는 동아닷컴이 지난 1일 보도한 ‘급발진 2차 조사결과 발표 연기’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YF쏘나타의 경우 운전자가 사고차량을 제공하지 않아 각종 기계장치 조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528i 조사 역시 엔진제어장치(ECU)의 이상여부 검증을 위한 공인분석기관의 정밀분석기간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급발진 조사 방식 및 일정과 관련해 몇 가지 지적을 받고 있다.
먼저, 급발진 원인규명 조사 순서를 갑자기 바꿔 의혹을 자처했다. 국토부는 YF쏘나타 차주에게 EDR 추출날짜(9월24일)를 통보해놓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차량 결함조사 후 EDR을 공개하겠다며 일정을 중단했다. 국토부는 “EDR 분석을 먼저 진행하면 그 결과에 따라 기계 결함 조사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운전자는 “EDR을 추출해 분석하겠다던 정부가 갑자기 말을 바꿔 차량결함부터 조사하겠다며 차량을 달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차량제공을 거부했다. 특히 차량결함 조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미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난 상태라 국토부의 요구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EDR은 분석 프로그램과 연결해 결과를 얻어내는데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YF쏘나타 조사를 위한 신뢰성 검증을 모두 마친 단계에서 정부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토부가 차량 급발진 의혹을 해소하기위해 꾸린 급발진 민관 합동조사반은 지난 5월29일 YF쏘나타 EDR 분석을 진행하기로 하고 운전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교통안전공단은 당시 현대차로부터 EDR분석 프로그램을 제공받았는데, 이는 EDR의 15가지 필수 확인사항 중 4가지만 임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따로 설계된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운전자와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 분석 프로그램의 신뢰도가 의심된다며 EDR 분석 프로그램 사용을 불허했다.
이에 따라 교통안전공단은 YF쏘나타 EDR을 제작한 부품회사 TRW오토모티브 측에 분석프로그램을 다시 요청했다. 공단은 이 프로그램으로 9월13일 EDR 분석데이터를 추출하고 경찰과 운전자에 통보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같은 달 24일 사고대상차량의 EDR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공단이 EDR 분석을 또 다시 미루면서 실행되지 못했다.
공단은 EDR 조사를 5일(9월19일) 앞두고 “차량결함을 먼저 살펴본 뒤 EDR 추출은 나중에 할 것”이라고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합동조사반의 회의는 없었고 결정이 난 일주일 뒤인 9월27일에서야 형식적인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자문위원은 “이미 교통안전공단에서 EDR 조사를 연기하기로 결정한 뒤 위원들에게 통보하는 형식이었다”고 말했다. 급발진 관련 조사는 합동조사반의 전체회의를 거쳐 확정된 사안에 대해서만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한 공단 소속 이종현 실장(합동조사반 조사인증실장)과 류기현 팀장(합동조사반 간사)의 보직을 10월 중순 돌연 바꿔 합동조사반에서 제외시킨 것도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국토부는 “공단이 합동조사반과 협의 없이 결정한 사항이라 우린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급발진 조사 관련 의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달 4일에는 심재철 국회의원실에서 요청한 EDR 분석 시연이 갑자기 취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심 의원실에 따르면 이날 TRW 프로그램으로 EDR 분석 시연을 하기로 공단과 사전에 합의했지만, TRW코리아 관계자가 공단 외에는 EDR 분석데이터를 공개할 수 없다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EDR 분석은 취소됐다.
또 다른 급발진 차량 528i도 부실 조사 의혹을 받고 있다. 합동조사반은 사고 차량에 EDR이 장착돼 있지 않다는 BMW 측의 주장만 듣고 확인 작업을 하지 않은 채 ECU 조사로 대체해 BMW에 면죄부를 주려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528i는 두 회사로부터 에어백 ECU를 납품받아 사용하는데 하나는 보쉬(Bosch)고 다른 하나는 오토리브(Aotoliv)다. 보쉬는 EDR 상용 장비를 개발·판매하는 회사라 EDR 장착 가능성이 있지만, 사고가 난 528i는 오토리브 에어백 ECU가 달려있는 모델로 이 회사는 EDR을 채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 합동조사반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병호 의원은 교통안전공단 국정감사에서 “급발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피해가 크기 때문에 BMW측이 의도적으로 EDR을 숨길 가능성도 있다”며 “의지가 있으면 얼마든지 합동조사반에서 EDR 장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국토부는 급발진 2차 조사 결과를 이달 발표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별차량 조사 완료 후에 급발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급발진 발생 가능상황을 조성해 공개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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