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화재 현장의 의인 수의사..대피 안내에 감사 편지 제안까지
노트펫
입력 2020-10-12 18:11 수정 2020-10-12 18:12
[노트펫]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대피를 유도해 주민들을 구한 수의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불을 끄고 주민들을 구하느라 새까맣게 그을린 소방관들에게 감사의 표시가 이어진 가운데 감사 편지 아이디어를 낸 것 역시 이 수의사였다.
화재가 발생한 지난 8일 밤 11시40분경. 3층 테라스에서 시작된 불이 번진 지 30분 가량 지나 화재경보가 울릴 때쯤이었다. 꼭대기층인 33층에 살고 있는 이승진(55) 씨는 화재경보 소리에 잠이 깼고, 동시에 집안에 연기가 차오르는 것을 보고 실제상황인 것을 깨달았다.
젖은 수건으로 입을 막았을 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벽을 더듬어 가며 집밖으로 나온 그는 옥상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구 계단 앞에는 어린 학생을 포함한 주민 20여명이 먼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옥상으로 나가지 못한 채 차오르는 연기를 마시고 있었다.
누군가 옥상 문을 열어봤지만 불길이 이는 모습에 차마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로 있다간 연기에 질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옥상 구조를 잘 알고 있던 그는 문을 열고 나가 옥상 상황을 살폈다.
여러 군데 작은 불이 보이긴 했지만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계단 앞에 모여 있던 이웃 주민들이 옥상 대피공간으로 하나둘씩 올라와 연기를 피했다.
계단에 있던 주민들이 올라오고 얼마쯤 지나 계단을 뛰어 올라온 소방관이 도착했고,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옥상에 있던 주민들 40여명이 안전하게 바깥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한편 화재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숙소 한 켠에 주민들이 손수 써서 붙여 놓은 감사 편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역시 옥상 대피를 유도한 이승진 씨의 제안이었단다.
숙소 한 켠 '안녕하세요. 입주민 여러분. 소방관님, 경찰관님 그리고 시청, 남구청 보건소 등등 도움을 주신 분들께 쪽지를 작성해 주세요'라는 안내글 아래 11일 오후까지 40여 통의 손편지들이 빼곡히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엄마아빠 얼굴도 다시 볼 수 있고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어린이의 편지에 가슴 뭉클함이 묻어난다.
이승진 씨는 화재가 난 아파트 인근에 위치한 이승진동물의료센터의 대표 수의사다. 30년 가까이 동물병원을 운영해온 이 수의사는 울산광역시수의사회장으로서 동물보호복지는 물론 수의사의 사회적 책임을 줄곧 강조해왔다.
울산시는 지난달 말 울산 반려동물문화센터를 개관하면서 '반려동물 친화도시 울산'를 선언했다. 지자체 최초의 반려동물 친화도시 선언이었다. 이 원장이 6년 전 내놓은 반려동물문화정착방안이 뼈대가 됐다. 이 원장은 또한 길고양이 보호에도 꾸준히 힘을 기울여왔는데 최근에는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이주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다.
그런가 하면 울산시광역시수의사회는 지난 3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성금을 울산시에 기부하기도 했다. 수의사들 역시 사회적 어려움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원장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살아 있는 게 행복하다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며 "사람을 업고 뛰고 하는 등 직접 구조에 나서준 소방관들은 물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주신 시민과 국민들 덕분에 모든 이웃이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회에 보답할 기회를 꼭 갖고 싶다"고 재차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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