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싸움 영상 돈된다” SNS 생중계…수수료 버는 빅테크는 방치

손준영 기자 , 이수연 기자 , 최원영 기자

입력 2024-05-13 03:00 수정 2024-05-13 05:4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비방 주고받던 게임 BJ들 ‘현피’
시청자 “1500만원 건다” 부추겨
유튜버도 후원금 벌려 싸움 중계… 수익 30% 챙기는 빅테크 안 말려
EU는 유해-불법 콘텐츠 즉시 삭제


《10대들마저 ‘헤드록 기절 현피’ 생중계로 SNS 돈벌이




부산에서 50대 유튜버의 살인 현장이 9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사건은 ‘불량 콘텐츠가 돈이 되는’ 인터넷 방송의 생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12일 취재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현피’(온라인 다툼의 당사자가 만나서 싸우는 것)로 검색해 보니 싸움 동영상이 수천 건 나타났다. 두 남성이 싸우다 한 명이 실신하는 모습을 10대가 SNS에 생중계하고, 시청자 수천 명이 몰려 댓글을 달고 후원금을 보내는 사례도 있었다. 플랫폼 기업이 불량 콘텐츠를 사실상 방치하고, 정부도 제대로 심의·감독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유럽처럼 유해 콘텐츠를 방치한 기업에 ‘과징금 폭탄’을 물리자는 제안이 나온다.》






11일 새벽 인스타그램 라이브에 두 남성이 몸싸움하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한 남성이 상대방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쓰러뜨리고 뒤에서 목을 졸라 실신시키는 과정이 동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1300여 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한 이 영상에는 “이거 보려고 1시간을 (기다렸다)” 등 댓글이 달렸다. 해당 동영상을 게재한 사람은 18세 A 군. 그는 평소 자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계좌번호를 올려둔 채 이른바 ‘현피’(온라인 다툼의 당사자가 만나서 싸우는 것) 등 싸움 동영상을 주로 게시해 왔다.


● ‘현피’에 1500만 원 거는 시청자

11일 새벽 18세 A 군이 자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생중계한 싸움 동영상의 한 장면.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 모습이 시청자 1300여 명에게 고스란히 노출됐다. SNS 캡처
9일 부산에서 유튜버 홍모 씨(56)가 다른 유튜버를 흉기로 살해하는 현장이 유튜브로 고스란히 생중계된 가운데, 폭행 등 ‘불량 콘텐츠’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인터넷 방송의 유료 후원 생태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 진행자(BJ)는 자극적인 방송을 내보내면 실시간 후원 시스템을 통해 즉각 보상받기 때문에 이런 행태를 부추기는 구조다. 유튜브 실시간 후원 시스템 ‘슈퍼챗’의 경우 시청자가 적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50만 원까지 유튜버에게 보낼 수 있다. 1000원을 후원하면 화면에 문구가 뜨지 않지만, 액수가 올라가면 댓글창 상단에 고정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실제로 올 3월 한 인터넷 게임 방송 BJ는 평소 비방전을 벌이던 다른 BJ와 현피를 벌였다. 한 시청자가 ‘둘이 만나 싸우면 1500만 원을 후원하겠다’며 이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 속에서는 한쪽이 상대를 일방적으로 발로 차고 바닥에 눕혀 20차례 넘게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12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현피’로 검색해 보니 A 군이 올린 것과 비슷한 싸움 동영상이 수천 건 나타났다. 교복을 입은 학생 2명이 교실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한 동영상은 2021년 9월 ‘K고딩(고등학생) 현피’라는 제목으로 게재돼 14만 회 넘게 조회됐다.


● “빅테크 자정 기대 못 해” 해외선 규제 나서

A 군은 평소 SNS에 음주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고 후원을 받아왔다. SNS 캡처
빅테크 기업들이 극단적인 콘텐츠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료 후원 중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선 슈퍼챗으로 발생한 수익의 30%를 운영업체인 구글이 플랫폼 이용료 등 명목으로 가져간다. 페이스북, X(옛 트위터), 틱톡 등도 비슷한 수익모델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선 유튜브 내 폭행 동영상 등은 ‘정보통신 콘텐츠’로 분류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모니터링한다. 심한 경우 시정을 요구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영상들에 비해 인력이 부족해 즉각적인 대응도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각종 규제 입법을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에 엄격히 대응 중이다. 독일에선 2018년 시행한 ‘네트워크집행법’에 따라 유튜브와 X 등 사용자 200만 명 이상이 가입한 SNS에서 폭력이나 비방 등 콘텐츠에 대한 사용자의 불만이 접수되면 24시간 내에 삭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부터 빅테크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인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도입했다. DSA에 따라 유튜브와 X, 틱톡 등 SNS 플랫폼 기업은 유해·불법·허위 콘텐츠를 발견하는 즉시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매출의 최대 6%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폭력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들이 실제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한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현재 심의와 감독, 제재는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 등에만 집중돼 있어 인터넷 방송에 대응이 어렵다”고 했다.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콘텐츠대 교수는 “유튜버가 유해 콘텐츠를 올리면 후원용으로 공개한 개인 계좌를 동결하거나 예금을 압류하는 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