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혁신 수혈받아야… 유통-화학 연관 분야에 집중 투자”[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입력 2024-02-17 01:40 수정 2024-02-17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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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진출 확대하는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AI 만드는 곳 못지않게 AI 활용 신사업서 새 기회
유전자가위 분야도 유망”… “싱가포르-이스라엘처럼
세계시장 보고 창업하도록 정부-기업-대학 더 긴밀해져야”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이사는 “그룹 신사업과 연관될 수 있는 식품이나 유통, 화학 분야 등 스타트업 중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존 사업 문법을 바꾸는 곳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7월 국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42개사를 묶은 ‘CVC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내년까지 총 8조 원의 CVC 펀드를 조성할 계획도 있다. 대기업 위주로 형성된 주력 산업과 스타트업의 신산업을 제대로 연결시켜야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다. 스타트업은 투자금은 물론이고 기술 검증과 시장 개척에서 대기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혁신’을 수혈받을 수 있다. 전체 스타트업 투자액 중 CVC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미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CVC 대표들을 만나 투자 방향과 계획 등을 들어 본다.


롯데벤처스는 모기업인 롯데그룹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베트남에 2021년 지사를 설립했다. 베트남 정부의 기업 등록발급 승인을 받은 첫 외국계 벤처투자법인이다. 그룹의 유망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식품과 유통, 화학, 모빌리티 등 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전영민 대표이사(57)를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책들로 둘러싸인 집무실에서 만났다. 롯데벤처스는 2016년 설립됐고, 전 대표는 2020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지난달 롯데그룹 전체 사업 방향을 논의하는 회의(VCM)가 열렸다. 롯데벤처스는 올해 뭘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하나.

“우리 그룹의 비즈니스를 환골탈태해 줄 그런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더 집중한다. 과감하게 실험적 도전을 하는 스타트업을 눈여겨볼 것이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투자하고, 그들이 세운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할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인맥이나 전문성, 경험, 영업망과 같은 기반 인프라를 더 열심히 제공할 것이다. 혁신을 일으킬 것 같은 스타트업에는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성장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스타트업이 그룹에 혁신을 불러온다고 믿나.


“에디슨이 발명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제너럴일렉트릭(GE)이 아니라 엔지니어들을 고용해서 사내에 만든 ‘에디슨 연구소’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발명 프로세스를 도입한 거다. 그 이후에 대기업들이 사내 연구소를 속속 설치했다. 지금은 CVC가 그런 역할을 한다.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 기업이 부속 CVC를 만들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혁신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CVC는 초기 투자를 거쳐 성공 가능성이 확인되면 나머지 지분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 인수합병(M&A)을 해서 같은 식구로 만든다. 미국에서는 창업자들의 출구(엑시트) 전략에서 대기업에 매각하는 방식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앞으로 한국도 그렇게 갈 것이다. 이게 미래형 혁신과 신규 사업의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유망할 것으로 보는 분야는 어디인가.


“인터넷이라는 기반 기술이 나올 때 창업 붐이 일었다. 스마트폰이 나올 때도 그랬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그런 기술이고, 크리스퍼 카스9과 같은 유전자 가위가 그렇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기반한 친환경 발전과 배터리, 우주산업, 드론에 기반한 항공산업 기술도 그렇다. 이런 게 모두 한꺼번에 연구실에서 산업으로 터져 나오는 시대다.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본다. 동갑내기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컴퓨터 기술이 나오던 시점에 창업한 것과 같이 요즘 청년들에게 유사한 기회가 주어진 거라 생각한다. 새 기반 기술을 활용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틀을 바꾸는 식품, 유통, 콘텐츠 서비스, 호텔, 석유화학과 소재 관련 스타트업을 눈을 더 크게 뜨고 찾고 있다.

가장 먼저는 AI일 것 같다. 초기인 지금은 오픈AI나 구글같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기업이 주목받지만 진짜는 AI의 응용에 있다고 본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보다 그걸 응용해서 비즈니스에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 창업자가 성공했다. 스마트폰은 애플이나 삼성전자가 만들지만 토스, 쿠팡, 배달의민족 같은 스타트업이 크게 성공했다.”




―스타트업 업계가 투자의 혹한기를 맞아 위축됐다. 대처 방안은 없나.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도는 ‘투자’와 ‘기반 기술의 혁신 강도’라는 두 축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한 축의 힘이 빠져 있는 셈이다. 빠른 금리 인상은 늘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근본적으로는 미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금이 마른 때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 정부는 그 예산을 줄였다. 아쉽다. 중장기적으로 대기업, 스타트업, 정부, 대학이 긴밀하게 협력해 총력전을 벌이는 체제가 필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을 얼마나 많이 배출하는가가 국가의 경쟁력과 미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낮은 밸류로 지금 투자를 받는 것보다는 비용을 최대한 줄여 생존 기간을 늘리는 방법을 먼저 시도하라고 권하고 싶다.”




―지난해 대통령 경제사절단 내 벤처캐피털로서는 유일하게 베트남을 방문하는 등 동남아 진출이 활발한 것 같다.


롯데벤처스는 올해 국내 스타트업과 베트남 한인 기업인 네트워크를 연결한다. 사진은 지난해 4월 베트남 글로벌 기술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프로그램 ‘팁스 투 글로벌’ 데모데이 행사에 참여한 롯데벤처스. 롯데벤처스 제공
“독자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로 번영하기에는 한국 시장이 작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미국, 중국, 이스라엘, 싱가포르에서 활성화돼 있다. 미국과 중국은 시장 자체가 충분하고,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에서는 아예 외국 시장을 보고 시작한다. 성공에는 절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필요하다. 그래서 롯데벤처스가 연결이 가능한 시장에 우리 스타트업들이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이 비슷한 베트남과 일본이 우선 고려하는 시장이다. 베트남 정부에서 최초로 외국계 벤처캐피털 면허 1호를 롯데벤처스에 주었다. 베트남 정부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과정이 1년 넘게 걸렸다. 하노이에서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베트남 시장에 롯데벤처스가 투자펀드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베트남 정부가 해본 적이 없어서 1년 정도 걸리고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외국계 벤처캐피털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유망한 한국 스타트업들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울 예정이다.”




―인사 전문가로서 4년 동안 롯데벤처스를 이끌며 창업자들을 만나 보고 느낀 점은….


“혁신적인 창업가들과 함께 어울리니까 20년은 젊어진 느낌이다. 많이 배우고 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미래가 밝다는 희망을 느낀다. 3년 전 미국의 창업자 270만 명을 조사한 논문이 있다. 46세에 창업한 사람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창업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 1위는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해서 많은 경험을 했는가’라는 것이었다. 뜻이 맞는 몇몇이 회사를 시작할 때는 모르지만 회사가 성장하는 동안 수많은 문제들을 겪게 된다. 그 문제 중에는 아이디어나 천재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있다. 경험이 해결해야 할 대목이다. CVC는 자금 투자와 인프라 제공 외의 값진 것을 제공한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이다.”

전영민 대표는…
△1967년 출생
△고려대 철학 학사, 경영학 석사
△경희대 경영학 박사
△1992년 롯데그룹 본부 인사팀 입사
△2013년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
△2019년 롯데인재개발원장
△2020년 롯데벤처스 대표이사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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