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유전자가위로 다이어트? ‘위고비’ 넘는 비만 치료법 나올까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3-11-24 03:00 수정 2023-1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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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만 치료 연구 주목
체지방률 낮은 쥐의 장내 미생물, 비만 쥐에게 이식하니 체중 감소
생활습관 개선하는 디지털치료
지방 연소 돕는 유전자 교정 등… 수술-약물 외 치료법 연구 활발


분변미생물군이식(FMT)을 통한 비만 치료 연구가 활발하다. 최근 중국 안후이의대 연구팀은 적은 체지방을 유지하는 사향쥐의 장내 미생물을 비만 쥐에게 이식한 결과 체중이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주사형 비만 치료제의 체중 감량 효과가 알려지면서 비만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비만을 질병으로 지정할 정도로 비만은 치료 대상으로 여겨진다.

현재 비만 치료에는 위의 60∼70%가량을 잘라내는 위소매절제술 같은 수술적 방법과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 등이 활용된다. 체중 감량 효과를 확실히 보이지만 한 달에 200만 원 안팎으로 가격이 부담스럽다. 이에 따라 새로운 비만 치료법의 실마리를 찾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미생물 이식했더니 체중 감소

이솽친 중국 안후이의대 연구원과 장밍서우 일본 도쿄도립대 연구원이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비만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장내 미생물을 실험용 쥐에게 이식한 결과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하고 그 연구 결과를 22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장내 미생물이 인체 내에서 다양한 대사 과정에 관여하고 질병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앞선 연구에서 속속 확인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만, 당뇨, 대장암 등을 지닌 사람의 장내 미생물 구성은 건강한 사람과 다르다. 장내 미생물이 학계에선 ‘잊혀진 장기’로 불리는 이유다.

연구팀은 항상 낮은 수준의 체지방량을 유지하는 사향쥐가 특정 장내 미생물이 풍부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사향쥐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비만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사향쥐의 분변에서 장내 미생물을 채취해 비만 쥐의 장에 이식하는 분변미생물군이식(FMT)을 실시했다.

그 결과 사향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비만 쥐는 그렇지 않은 비만 쥐에 비해 체중이 감소했다. 12주 동안 이어진 관찰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체중 감소가 확인됐다.

분변미생물군이식을 통한 비만 치료 연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캐런 렁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리긴스연구소 연구원팀은 2020년 국제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 네트워크 오픈’에 14∼18세 비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분변미생물군이식을 실시한 결과를 보고했다. 26주간의 관찰 결과 체질량지수(BMI)의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지만 여자 청소년에게선 복부 지방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분변미생물군이식이 실제 비만 치료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핀란드 페이예트헤메병원 연구팀이 ‘JAMA 네트워크 오픈’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성인 비만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분변이식술은 체중 감량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연구팀은 “비만 치료에서 분변이식의 효과를 얻기 위해선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디지털치료제·유전자가위 등 새로운 접근법 등장

비만 치료를 위한 새로운 치료 방식을 개발하는 움직임은 활발하다.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2020년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비만을 치료하는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해 화제가 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8주 동안 디지털치료제와 함께 자기관리를 받은 과체중 참가자들은 스스로 자기관리를 한 환자들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하게 체중이 감소했다. 디지털치료제는 약물이 아니지만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를 의미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비만 치료법도 주목받는다. 미국 조슬린당뇨병센터 연구팀은 2020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일반적인 백색 지방을 ‘갈색 지방’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해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갈색 지방은 몸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백색 지방과 달리 체내에서 열을 발생시켜 에너지를 소모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백색 지방을 갈색 지방으로 바꿀 수 있는 단백질 발현량이 늘어나도록 유전자를 교정했다. 한 달에 걸쳐 쥐에게 고지방 식단을 실시하는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 유전자가 교정된 세포를 이식받은 쥐는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몸무게가 훨씬 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사람에게 적용하면 비만 환자에 대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새로운 비만 치료제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성인 비만 환자는 6억5000명이 넘는다. 앞서 WHO는 비만 치료제를 중·저소득 국가 정부 구매계획의 가이드라인으로 이용되는 ‘필수의약품 목록’에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도 비만 환자는 증가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성인 비만율은 32.5%로 전년도보다 0.3%포인트 증가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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