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개발사 직원서 태극마크까지…“게임 반대하시던 부모님께 기쁨 드리고 싶었다”[태극전사, 지에군!]

항저우=강동웅 기자

입력 2023-09-29 03:00 수정 2023-09-2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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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e스포츠 최초 항저우AG 금메달리스트 김관우 인터뷰

‘지에군(结棍)’은 중국 항저우 지역 방언으로 ‘대단하다’ ‘강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단의 아시안게임 선전을 기원합니다.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 김관우가 26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32강전과 승자조 토너먼트에 참가한 뒤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 임하며 대회 우승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관우는 28일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한국 e스포츠 선수단의 대회 첫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979년 한국과 대만에서 태어난 두 동갑내기 남성이 44년 뒤인 2023년 9월 28일 중국 항저우에서 마주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두 중년 남성을 이어준 건 1987년 발매된 추억의 게임 ‘스트리트파이터’였다. 30여년 전 이 게임으로 동네 오락실을 주름잡던 이들은 성인이 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게임 결승전 무대에까지 올랐다.

게임 패드로 추억의 ‘격투’를 벌인 두 남성 중 마지막에 미소를 지은 건 한국 선수였다.


●게임 패드 들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다
한국의 e스포츠 국가대표 김관우(44)는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결승전(7전 4승제)에서 샹위린(44·대만)을 4-3(2-1, 0-2, 1-2, 2-0, 2-1, 0-2, 2-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에 채택된 e스포츠에서 한국 선수단이 금메달을 배출한 건 김관우가 처음이다.

김관우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한 이가 많지는 않았다. 스트리트파이터5는 리그오브레전드(롤), FC온라인(옛 피파온라인4), 배틀그라운드모바일을 포함해 이번에 한국이 e스포츠에 국가대표를 파견한 4개 종목 중 메달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김관우는 10, 20대가 대부분인 e스포츠 한국 선수단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 메달 획득이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관우는 보란 듯 금메달을 따며 전날 FC온라인의 곽준혁(23·KT)이 동메달에 그쳤던 한국 e스포츠 선수단의 아쉬움도 함께 씻어냈다.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 김관우가 26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승자조 16강전에서 일본의 카와노 마사키를 2-0으로 꺾은 뒤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관우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트리트파이터5는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선수의 장점이 드러나는 게임이다. 상대와의 거리 조절을 잘하고, 상대가 언제 공격을 들어올지 타이밍을 잘 예측하는 게 중요한데 이건 모두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그렇게 보면 나이가 많은 게 이 게임에서는 장점이 되는 것 같다. 다른 게임과 달리 스트리트파이터5 강자들은 샹위린을 비롯해 대부분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부모 반대에도 변함없이 걸어온 ‘게임 외길’
김관우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해 집 앞 오락실을 학교처럼 드나들었다. 당시 스트리트파이터2가 출시되면서 친구들 사이에 격투 게임이 인기를 끌자 김관우 역시 격투 게임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방과 후 오락실로 직행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5시간 넘게 게임을 하고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갔다가 부모에게 혼이 난 적도 많았다.

김관우의 게임 사랑은 성인이 된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게임개발사에 취직해 게임 개발 기획 업무를 보며 ‘덕업일치(취미와 일의 조화)’를 이뤘다. 김관우는 “부모님이 원하시던 진로가 아니었다. 판사나 검사와 같은 직업을 원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내가 좋다고 하니 응원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 김관우가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머리를 감싸며 감격하고 있다. 항저우=뉴스1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부모의 바람을 이뤄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지난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김관우는 스트리트파이터5 훈련에 매진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스트리트파이터5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태극마크를 단 김관우는 “부모님이 처음에는 내가 국가대표가 된 걸 믿지도 않으셨다. 이후 내가 대표팀 훈련을 나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믿으시더라”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선물해드리면, 그때는 부모님이 내가 지금까지 게임해왔던 것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기에도 냉철한 상황 판단…‘베가’ 캐릭터 하나 만으로 아시아 평정
여러 장르의 게임을 섭렵한 김관우가 격투 게임인 스트리트파이터5에서 유독 두각을 드러낸 건 심리전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김관우는 “현실에서 실제 싸움(격투)을 한다고 하면 신체적인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한 지인은 현실에서 자신이 하는 싸움의 스타일이 격투 게임에 그대로 나온다고 말하기도 하던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나는 상대와 주고받는 심리전을 즐기는 편인데 격투 게임을 잘하려면 심리전에 반드시 능해야 한다. 위기에 몰린 순간에도 ‘상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냉철하게 유추해 움직임을 간파해내면 그때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 말했다.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 김관우가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결승전에서 자신의 주 캐릭터인 ‘베가’를 활용해 상대에게 기술을 걸고 있는 장면이 경기장 상단의 중계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다. 항저우=뉴스1

김관우는 스트리트파이터5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다 잘 활용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베가’라는 한 캐릭터만을 사용했다. 스트리트파이터5 선수들이 보통 2, 3개 이상의 주 캐릭터를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관우는 “스트리트파이터5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상황에 따라 상대에 유리한 캐릭터를 고르기 위해 여러 캐릭터를 돌아가며 쓴다. 하지만 베가는 다른 캐릭터를 상대로 할 때 강점뿐 아니라 약점도 딱히 없는 캐릭터다. 스트리트파이터5에서 특별한 ‘카운터 픽’이 없는 캐릭터인 셈”이라고 말했다.

베가는 움직임의 속도가 빠른 캐릭터다. 심리전에 능한 김관우가 상대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적의 선택이다. 대신 힘이 세지는 않아 한 번의 공격에 큼지막한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 김관우는 “어차피 모든 캐릭터에는 장단점이 있다. 나는 스트리트파이터라는 게임에서 ‘한 우물’을 오랫동안 팠다보니 내가 원하는 순간에 맞춰 움직여줄 수 있는 빠른 속도의 베가 캐릭터를 사용하기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 김관우가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결승전 승리 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항저우=뉴스1

김관우는 유리한 상황뿐 아니라 역전을 당한 위기 상황에서도 베가 만을 고집했다. 반대로 결승 상대 샹위린은 캐릭터 ‘루시아’와 ‘루크’를 번갈아 사용하며 김관우의 리듬을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관우는 “결승 상대였던 샹위린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 평소 루시아를 많이 쓰던 선수인데 이번 대회에서 나를 상대로 루크를 처음 꺼내더라”며 “루시아가 상대를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라면 루크는 거리를 두고 견제를 하다가 상대의 하단 등 빈틈을 노려 공격한다. 샹위린의 루크를 처음 상대할 때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곧 루틴을 파악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성훈 스트리트파이터5 국가대표 감독(40)은 “김관우는 스트리트파이터라는 격투 게임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인물”이라며 “경험이 풍부한 만큼 감정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황 판단을 냉정하게 잘 한다. 강한 캐릭터를 골라 승부를 보기보다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베가)를 마음대로 조종하며 게임이 자신에게 유리해지도록 운영해나간다”고 평가했다.


●“스트리트파이터6 메달까지 따 팬들께 추억과 영광 선물하고 파”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결승전에 김관우를 응원하는 한국 관중들의 모습. 항저우=뉴시스

김관우는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스트리트파이터라는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스트리트파이터가 아직 살아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금메달을 따게 돼서 기쁘다”며 “스트리트파이터는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해왔던 추억의 게임이지만 나는 이 게임을 잊지 않고 아직까지 열심히 하면서 마침내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땄다.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낼테니 스트리트파이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김관우의 목표는 직업인으로서의 스트리트파이터 게임 선수가 되는 것이다. 김관우는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스트리트파이터의 새 시리즈인 ‘스트리트파이터6’가 나왔다. 대회 준비에 몰두하느라 스트리트파이터5만 연습했는데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게임 선수를 전문적으로 하며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이제는 스트리트파이터6 훈련에 집중해보고 싶다. 새 시리즈에서도 큰 대회 메달을 따 팬들에게 추억과 영광을 선물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항저우=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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