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간 떨어지는 굉음에 앞운전자 갑자기…
동아일보
입력 2013-01-07 03:00 수정 2013-01-07 08:40
《 주부 이명진 씨(42·경기 고양시)는 휴일인 6일 오전 또 한 번 도로 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마트에 가려던 그는 직진과 우회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우측 차로에서 신호에 걸려 정지해 있었다. 그러자 오른쪽 깜빡이를 켠 뒤차가 ‘우회전해야 하니 길을 비켜라’라는 듯 신경질적으로 연이어 경적을 울려댔다. 앞으로 더 나가면 횡단보도를 침범하고, 주행 차량과 부딪칠 것을 우려해 움직일 수 없었다. 뒤차는 더 길게 경적을 울려 댔다. 그는 하소연했다. “막무가내로 울리는 경적, 이럴 땐 도대체 어떡하나요.” 》
모든 운전자가 공감하는 이런 ‘경적 스트레스’는 폭력과 범죄로 이어질 정도로 큰 심적 고통을 준다. 지난해 8월 충북 충주시 연수동에선 한 50대 남성이 길을 비키라며 경적을 울린 운전자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 살인 미수 혐의로 입건됐다. 같은 달 서울 관악구의 한 도로에선 30대 남성이 경적을 울려 대는 택시 운전사에게 전기충격기를 들이댔다.
○ 도로의 융단폭격기 경적
경적은 다른 차를 추월할 때나 자신의 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뛰어드는 보행자와 차량에게 긴급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처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도로에서 만나는 경적은 ‘융단폭격기’처럼 무차별적이다. 주부 이 씨처럼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운전자에게도 위협하듯 경적을 울려 주변의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를 놀라게 만든다. 정상적으로 차로를 바꾸는 차량에 속도를 줄여 주는 대신 경적이나 상향등으로 위협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녹색불로 바뀐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뒤차들의 사정없는 경적 세례를 받는 것은 한국 운전자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땐 항상 출발선에 선 카레이서처럼 긴장한 채 핸들을 잡아야 한다.
경적이 보행자에게 미치는 스트레스도 크다. 본보 취재팀은 4일 20∼50대 도시 근로자 10명에게 하루동안 몇 번이나 경적 소리를 듣는지 기록해 달라고 의뢰했다. 그 결과 이들이 들은 경적 소리는 0∼21회로 1인당 평균 9.7회였다. 버스로 통근하는 회사원 최모 씨(28·여)는 이날 총 11번의 경적소리를 들었다. 오전 11시경엔 서울 중구 무교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을지로에서 우회전해 오는 관광버스가 울리는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고 한다. 그는 “승용차 경적에도 놀라지만 버스나 트럭은 몇 배나 커 공포스럽다”라고 말했다. 그가 들은 버스 경적은 천둥이나 전기톱 소리에 맞먹는 112dB(데시벨) 수준이다.
○ 운전자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이처럼 스트레스를 주는 경적 소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3일 오전 본보 조건희 기자(28)와 채널A 강은아 기자(27·여)가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를 찾아 배명진 소장에게 직접 스트레스 지수 측정을 의뢰했다. 이마에 전극을 붙이고 뇌파를 측정했다. 이어 자율신경 균형도 검사기에 집게손가락을 넣고 혈류 속도와 심박 변화를 쟀다.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0.295였던 조 기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5초에 한 번씩 2분간 경적 소리를 듣자 0.495로 치솟았다. 평온한 마음으로 출근하자마자 데스크에게서 30분 이상 쉴 새 없이 욕설에 가까운 말투로 잔소리를 들었을 때에 비견할 만한 스트레스였다. 한 연구 자료는 이 정도 스트레스를 ‘칠판을 손톱으로 긁었을 때 받을 만한 세기’라고 표현했다. 청력 손상을 방지하려고 92dB로 낮춰 실험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강 기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0.427에서 0.458로 약간 상승했다. 스트레스 지수는 초조함을 나타내는 하이베타파를 알파파(안정 상태 때 발생하는 뇌파)로 나눈 수치다.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뜻이다.
자율신경계의 균형도로 측정한 조 기자의 건강지수(만점 100)가 82에서 68로 뚝 떨어졌다. 강 기자는 68에서 58로 낮아졌다. 조 기자의 자율신경 균형 검사기 모니터에 ‘면역 저하 및 질환 위험 가능성이 30% 증가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채정호 강남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스트레스 상태가 지속되면 자율신경 기능의 부조화 때문에 두통 실신 고혈압이 나타나거나 백혈구의 과립구가 지나치게 많아져 세포조직이 파괴되는 등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경적 소리는 인간의 뇌가 싫어하는 단순음을 가장 잘 들리는 3500Hz(헤르츠)의 진폭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는 어떨까.
본보와 남궁문 원광대 토목공학과 교수팀이 5일 서울 종로구 일대 7.9km를 운전할 때 경적을 9차례 울린 정모 씨(33)의 뇌파를 측정했다. 정 씨의 스트레스 지수는 경적을 울릴 때마다 치솟았다. 9번 경적을 누르는 순간의 스트레스 지수는 평상시보다 평균 4배로 높아졌다. 노란불에 교차로를 건너거나 차로를 2, 3개씩 한꺼번에 가로지르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을 때보다도 경적을 울렸을 때의 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소음뿐 아니라 경적을 유발하는 나쁜 운전 습관 때문에 경적 울렸을 때 스트레스가 급증한다고 지적한다. 실험 대상 운전자가 경적을 울린 상황은 주로 앞차에 바싹 붙어 운행하다가 그 좁은 틈으로 끼어들려는 옆 차에 경고를 보내거나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에 짜증을 풀기 위한 경우였다.
○ 이제는 조용한 도로 만들어야
경적을 분노 표출 수단으로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에선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 운전자에게 경고하기 위한 본래 용도를 제외하곤 거의 울리지 않는다. 본보 취재팀이 지난해 12월 26, 28일 일본 도쿄(東京)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서 초보 운전자 2명과 동승해 테스트한 결과 2시간 동안 각 1차례의 경적 소리만 들었다. 수차례 차로를 바꾸고 녹색불에 제때 출발하지 못해도 다른 운전자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도로에서 불필요한 경적 소음을 걷어내려면 운전자들의 의식 개선과 함께 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경적을 울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처벌받지만 단속이 어렵다. 단속돼도 승용차의 범칙금은 최대 4만 원이다.
소음 제한 기준인 110dB(대형차 112dB)을 어기고 불법 개조 경적을 단 차량도 스트레스의 주범이지만 이 역시 단속이 어렵다. 경적은 자동차 정기검사의 필수 점검 항목이 아니다. 배기 소음이 크게 들리는 경우에만 한해서 경적 이상 유무를 검사한다. 이 탓에 지난해 검사차량 277만 대 중 불법 개조 경적을 장착했다가 단속된 차량은 57대뿐이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공동기획: 경찰청·손해보험협회·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안전공단
▶ [채널A 영상] 도쿄 ‘이여사’와 한국 ‘김기사’ 비교했더니…
모든 운전자가 공감하는 이런 ‘경적 스트레스’는 폭력과 범죄로 이어질 정도로 큰 심적 고통을 준다. 지난해 8월 충북 충주시 연수동에선 한 50대 남성이 길을 비키라며 경적을 울린 운전자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 살인 미수 혐의로 입건됐다. 같은 달 서울 관악구의 한 도로에선 30대 남성이 경적을 울려 대는 택시 운전사에게 전기충격기를 들이댔다.
○ 도로의 융단폭격기 경적
경적은 다른 차를 추월할 때나 자신의 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뛰어드는 보행자와 차량에게 긴급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처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도로에서 만나는 경적은 ‘융단폭격기’처럼 무차별적이다. 주부 이 씨처럼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운전자에게도 위협하듯 경적을 울려 주변의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를 놀라게 만든다. 정상적으로 차로를 바꾸는 차량에 속도를 줄여 주는 대신 경적이나 상향등으로 위협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녹색불로 바뀐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뒤차들의 사정없는 경적 세례를 받는 것은 한국 운전자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땐 항상 출발선에 선 카레이서처럼 긴장한 채 핸들을 잡아야 한다.
경적이 보행자에게 미치는 스트레스도 크다. 본보 취재팀은 4일 20∼50대 도시 근로자 10명에게 하루동안 몇 번이나 경적 소리를 듣는지 기록해 달라고 의뢰했다. 그 결과 이들이 들은 경적 소리는 0∼21회로 1인당 평균 9.7회였다. 버스로 통근하는 회사원 최모 씨(28·여)는 이날 총 11번의 경적소리를 들었다. 오전 11시경엔 서울 중구 무교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을지로에서 우회전해 오는 관광버스가 울리는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고 한다. 그는 “승용차 경적에도 놀라지만 버스나 트럭은 몇 배나 커 공포스럽다”라고 말했다. 그가 들은 버스 경적은 천둥이나 전기톱 소리에 맞먹는 112dB(데시벨) 수준이다.
○ 운전자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0.295였던 조 기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5초에 한 번씩 2분간 경적 소리를 듣자 0.495로 치솟았다. 평온한 마음으로 출근하자마자 데스크에게서 30분 이상 쉴 새 없이 욕설에 가까운 말투로 잔소리를 들었을 때에 비견할 만한 스트레스였다. 한 연구 자료는 이 정도 스트레스를 ‘칠판을 손톱으로 긁었을 때 받을 만한 세기’라고 표현했다. 청력 손상을 방지하려고 92dB로 낮춰 실험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강 기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0.427에서 0.458로 약간 상승했다. 스트레스 지수는 초조함을 나타내는 하이베타파를 알파파(안정 상태 때 발생하는 뇌파)로 나눈 수치다.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뜻이다.
자율신경계의 균형도로 측정한 조 기자의 건강지수(만점 100)가 82에서 68로 뚝 떨어졌다. 강 기자는 68에서 58로 낮아졌다. 조 기자의 자율신경 균형 검사기 모니터에 ‘면역 저하 및 질환 위험 가능성이 30% 증가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채정호 강남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스트레스 상태가 지속되면 자율신경 기능의 부조화 때문에 두통 실신 고혈압이 나타나거나 백혈구의 과립구가 지나치게 많아져 세포조직이 파괴되는 등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경적 소리는 인간의 뇌가 싫어하는 단순음을 가장 잘 들리는 3500Hz(헤르츠)의 진폭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는 어떨까.
본보와 남궁문 원광대 토목공학과 교수팀이 5일 서울 종로구 일대 7.9km를 운전할 때 경적을 9차례 울린 정모 씨(33)의 뇌파를 측정했다. 정 씨의 스트레스 지수는 경적을 울릴 때마다 치솟았다. 9번 경적을 누르는 순간의 스트레스 지수는 평상시보다 평균 4배로 높아졌다. 노란불에 교차로를 건너거나 차로를 2, 3개씩 한꺼번에 가로지르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을 때보다도 경적을 울렸을 때의 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소음뿐 아니라 경적을 유발하는 나쁜 운전 습관 때문에 경적 울렸을 때 스트레스가 급증한다고 지적한다. 실험 대상 운전자가 경적을 울린 상황은 주로 앞차에 바싹 붙어 운행하다가 그 좁은 틈으로 끼어들려는 옆 차에 경고를 보내거나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에 짜증을 풀기 위한 경우였다.
○ 이제는 조용한 도로 만들어야
경적을 분노 표출 수단으로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에선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 운전자에게 경고하기 위한 본래 용도를 제외하곤 거의 울리지 않는다. 본보 취재팀이 지난해 12월 26, 28일 일본 도쿄(東京)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서 초보 운전자 2명과 동승해 테스트한 결과 2시간 동안 각 1차례의 경적 소리만 들었다. 수차례 차로를 바꾸고 녹색불에 제때 출발하지 못해도 다른 운전자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도로에서 불필요한 경적 소음을 걷어내려면 운전자들의 의식 개선과 함께 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경적을 울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처벌받지만 단속이 어렵다. 단속돼도 승용차의 범칙금은 최대 4만 원이다.
소음 제한 기준인 110dB(대형차 112dB)을 어기고 불법 개조 경적을 단 차량도 스트레스의 주범이지만 이 역시 단속이 어렵다. 경적은 자동차 정기검사의 필수 점검 항목이 아니다. 배기 소음이 크게 들리는 경우에만 한해서 경적 이상 유무를 검사한다. 이 탓에 지난해 검사차량 277만 대 중 불법 개조 경적을 장착했다가 단속된 차량은 57대뿐이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공동기획: 경찰청·손해보험협회·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안전공단
▶ [채널A 영상] 도쿄 ‘이여사’와 한국 ‘김기사’ 비교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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