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드리프트… 미끄러지며 코너링… 日 프로 레이서 다니구치 ‘도요타 스포츠카 86’ 동승기

동아일보

입력 2012-06-19 03:00 수정 2012-06-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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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전남 영암군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의 F1(포뮬러원) 트랙에서 프로 레이서 다니구치 노부테루가 도요타의 신형 스포츠카 ‘86’에 기대 서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토요타 제공
아찔하리만큼 가파른 산등성이의 고갯길. 쏜살같이 언덕을 내려가던 자동차가 순간 휘청거리더니 강렬한 타이어의 마찰음을 내며 매끄럽게 코너를 돌아나간다. 중력을 무시한 호쾌한 드리프트(drift·바퀴를 미끄러뜨려 방향을 신속히 바꾸는 운전기법)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시게노 슈이치(しげの秀一) 원작으로 1998년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한 만화 ‘이니셜D’의 한 장면이다.

3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프로 레이서로 입문한 다니구치 노부테루(谷口信輝·41·튜닝업체인 HKS 소속)는 ‘이니셜D 키드’다. 히로시마에서 이름을 날리던 ‘스트리트 레이서’는 프로 입문 1년 만인 2001년 드리프트 대회인 ‘D1 그랑프리’ 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19세 때 우연히 이니셜D 주인공의 자동차인 도요타 ‘AE86 트레우노’를 타게 된 것이 계기였다.

15일 전남 영암군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의 F1(포뮬러원) 트랙. 동아일보는 다니구치가 운전대를 잡은 도요타의 스포츠카 ‘86’에 함께 탑승해 드리프트 기술의 진수를 맛봤다. 86은 1987년 단종된 AE86의 후속 모델이다. 이니셜D의 향수를 기억하는 자동차 마니아, 운전에 갓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젊은 층을 대상으로 개발한 도요타의 후륜구동(뒷바퀴굴림) 스포츠카다.

영암 F1 트랙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로 지목되는 270도 터닝 구간. 코너링을 향해 질주하던 다니구치는 순간 운전대를 살짝 틀었다. 측면으로 미끄러지는 뒷바퀴의 마찰음이 들려오는 순간, 그는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기며 운전대를 빠르게 휘감았다. 전자식 제어장치를 끈 차는 트랙의 펜스까지 닿을 듯 미끄러지다 어느새 균형을 잡고 코너링을 탈출했다. 아스팔트 위에 피겨스케이팅의 명연기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몸이라는 ‘센서’를 최대한 활용하세요.” 드리프트를 꿈꾸는 운전자들을 위한 다니구치의 조언이다. 운전석에 몸을 밀착시키고 차체의 미세한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의 흔들림을 피부로 느끼면서 운전대와 페달의 조작 타이밍을 일치시켜 나가는 것이 그의 드리프트 비결이다.

브레이크 시 앞바퀴에 하중이 쏠리는 느낌에 맞춰 타이어의 접지력(接地力)을 제어하는 것도 필수. 무엇보다 불필요하게 좌우로 시선을 옮기면 의도했던 것보다 운전대를 더 꺾게 되므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드리프트는 레이스의 기록 단축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를 미끄러뜨리지 않고 타이어의 접지력만으로 코너링을 공략하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성과 관계없이 자동차 마니아들은 드리프트에 열광한다. 차의 한계를 넘어서는 운동성과 일반 주행에서는 맛보기 힘든 짜릿함이 그 매력이다.

드리프트 레이서로 시작한 다니구치가 일반 레이서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그는 2010년 트랙 최단 기록을 겨루는 ‘수퍼 GT’ 대회에서 우승하며 편견을 물리쳤다.

그는 “드리프트도 결국 운전의 일부”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차를 움직여가는 운전의 즐거움은 그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를 레이싱의 세계로 이끈 것도 “누구보다도 운전을 빠르고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는 “4월 빨간색 86을 직접 구입했다”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새 차”라고 자랑했다. “86은 운전자의 실력을 키워줄 수 있는 차”라는 게 그의 평가다.

영암=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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