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판화·색종이로 경쾌한 에너지 선사…세련미 선보인 앙리 마티스

김태언 기자

입력 2022-02-02 11:36 수정 2022-02-0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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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내 노력을 숨기려 노력했다. 사람들이 내게 작품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결코 추측하지 못할 정도로 내 작품이 봄날의 가벼운 기쁨을 가지고 있기를 바랐다.”

앙리 마티스(1869~1954)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그를 설명하는 단어는 ‘색채의 해방자’ ‘야수파 창시자’로 잘 알려졌지만, 그는 ‘선의 연금술사’이기도 했다. 기호같이 단순해진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그 누구보다 감각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에는 마티스의 의도가 숨어있었을 테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는 마티스의 드로잉과 판화 총 196점을 선보인다. 마티스는 선 안에 색이 채워졌던 과거 화풍에서 벗어나 색만으로 형태를 만들어낸 작품들로 이름을 알려왔다. 이번 전시는 색면을 탐구했던 마티스의 회화보다는 그가 말기에 선보인 드로잉과 판화, 색종이 오리기에 주목했다. 출품작은 세 명의 컬렉터 소유품으로 이뤄졌는데, 이 중 24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은 30년 넘게 마티스의 판화를 수집해온 영국 런던의 아트 컬렉터 버나드 제이콥슨이 대여했다.





그의 간결한 드로잉과 판화 작품은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유명하다. 포스터나 엽서로 제작되면서 일명 ‘감성샷’을 장식한다. 마티스는 1906년에 발표한 ‘삶의 기쁨’ 이후로 드로잉을 보다 발전시켰다고 알려진다. 드로잉 작품 ‘서 있는 여인의 누드’(1949년)에서 보듯 그의 드로잉은 사실적 묘사가 아니다. 판화 ‘3개의 얼굴, 우정’(1951년)이나 ‘성모를 위한 습작, 베일을 쓴 성모’(1950~1951년) 등을 보면 마티스의 선은 화가의 손에 실린 무게에 따라 굵어지거나 가늘어지기도 하고, 들쭉날쭉하거나 직선이 되기도 한다. 여태껏 크게 조명 받은 적 없던 마티스의 드로잉이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특유의 모던함과 경쾌한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이 전시는 마티스가 평생 시도한 6가지 판화 기법에 따라 작품이 구분되어 있다. 기법에 따라 단순함, 디테일 등 그 매력이 모두 다른데 이중 물과 기름의 반발력을 이용한 기법인 석판화 작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드로잉이라 착각할 정도로 치밀한 ‘실내, 독서’(1925년)를 보면 앞선 작품들과 다른 섬세함도 엿볼 수 있다. 마티스는 색채 화가로 유명했음에도 거의 흑백 판화만을 만들어왔다. 이는 마티스가 자신의 판화 작품이 선대 판화가들의 작품과 견주어지길 바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시 후반부에는 가위로 한 드로잉이라 할 수 있는 ‘종이 오려붙이기 작업(컷아웃)’이 있다. 1940년, 암 진단을 받은 마티스는 수술을 받아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때 그는 붓 대신 가위를 들었고 색종이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작이 20편의 컷아웃 작품을 수록한 아트북 ‘재즈’(1947년)다. 마티스는 큰 종이 위에 밝은 색상을 칠하고, 칠한 종이를 가위로 오려 모양을 만들어냈다. ‘이카루스’(1946년) ‘푸른 누드’(1952년) 등의 작품을 만들어내며 가위질에서 유동성을 발견한 그는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라며 ‘가위 그리기’라 이름 붙였다.

마티스는 재현을 포기한다면 그 대가로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것을 명료화했고 불필요한 부분은 화면에서 제거했다. 그래서인지 전시는 내내 가볍고 세련되다. 지금 이 시기, 마티스가 세계적으로 더더욱 사랑받는 이유일 테다. 실제 호주 시드니 주립미술관과 앙리 마티스 컬렉션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 볼티모어 미술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마티스 특별전에 개최되고 있으며, 일본 도쿄와 중국 상하이, 베이징에서도 마티스 전이 계획되어 있다. 전시는 4월 10일까지. 1만3000원~2만 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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