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벳푸’로 통한다

조성하 전문기자

입력 2018-12-22 03:00:00 수정 2018-12-22 09: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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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규슈 그랜드루트

고온 고압의 온천 수증기가 굴뚝을 통해 공중으로 배출되는 장면. 여기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최고라 불리는 온천타운 규슈의 벳푸. 지구의 11개 온천 천질 가운데 10개를 갖춘 온천 천국으로 저 풍경은 ‘100년 이내 사라지지 말아야 할 풍경’(일본)으로 선정된 벳푸의 진면목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 무대를 일본으로 옮기면 이런 말도 가능하다. ‘모든 길은 에도(江戶)로 통한다.’ 에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전국이 동서로 나뉘어 천하의 대세를 잡기 위해 요동칠 당시 동군(東軍)의 수장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서군과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승리해 새로 연 에도시대(1603∼1868년) 막부의 새 수도(현재의 도쿄)다. 그리고 당시 혼슈(일본 열도의 네 큰 섬 중 가장 큰 것)는 에도에서 뻗어 나간 다섯 길로 연결됐다. 이름 하여 ‘에도 고카이도(五街道)’. 이 중 도카이도(東海道) 나카센도(中山道)는 옛 수도 교토(京都)를 각각 태평양 해안을 따르거나 혼슈 중앙을 관통해 이었다. 고슈(甲州)·오슈(奧州)카이도는 야마나시와 후쿠시마현을, 닛코(日光)카이도는 닛코(도치키현)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규슈(네 큰 섬 중 서남단 것)는 어땠을까. 에도시대 규슈의 9소국(小國)은 에도를 해로(세토내해)와 육로(도카이도)로 오갔다. 모지(기타큐슈시)∼난바(오사카시)는 해상(446km), 난바∼에도는 육상 루트. 모지는 현재 부관페리가 오가는 혼슈 최남단 시모노세키(下關·야마구치현)와 마주한 규슈 최북단 항. ‘관문관리청’이란 모지(門司)의 뜻풀이 그대로 ‘일본지중해’ 세토내해로 진입하는 선박을 통제하던 곳이다. 그런 지정학적 이유로 규슈의 육로는 이 모지로 향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 변화가 일었다. 구심점이 벳푸로 옮겨간 것인데 근대화로 열리게 된 온천관광이 세계적인 온천타운을 중심으로 발달해서다.

아소-구주국립공원의 유후산 아래 쓰카하라 고원 전망대의 풍경. 왼편 위가 온천휴양지 유후인이고 오른편 길은 23.3km 거리의 벳푸와 유후인을 잇는 현도11호선(오이타자동차도로). 규슈 그랜드 루트는 저 유후인에서 히타로 이어진다.
벳푸: ‘온천천국‘ 일본서도 자타공인의 최대·최고 온천관광지. 그뿐이 아니다. 관광 마케팅과 산업도 최첨단이었다. 일본 최초 수세식 양변기가 설치된 온천료칸 개장(1924년), 세계 최초의 미모 여성 가이드 동승 관광버스 운행(1925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벳푸온천 홍보 퍼레이드(1928년), 할리우드 스타를 태운 범선의 벳푸 기항 및 온천관광(1929년) 등등. 21세기 들면서는 이웃한 유후인이 벳푸에 이어 일본 최고 온천휴양지로 부상하며 벳푸는 ‘규슈관광루트 중심‘이 됐다. 그리고 올해는 ’규슈 그랜드 루트‘ 개척 원년. 주인공은 지난 세기 이 모든 혁신을 주도했던 90년 역사의 벳푸 향토 기업 가메노이 버스다.


규슈 그랜드 루트: 규슈 관광의 이 새 브랜드 창안자는 가메노이(龜の井)버스주식회사의 다나카 노부히로 사장. ‘벳푸∼유후인∼히타(日田)’를 연결하는 버스관광 루트인데 기존의 벳푸∼유후인 노선(일반버스 및 유후링 관광쾌속버스 운행)에 ‘유후인∼히타’ 새 노선을 추가 개설해 이은 것이다. 여행자가 벳푸 온천타운을 관광한 뒤엔 유후인으로 옮겨 조용한 휴식을 즐긴 후 특급버스로 히타를 찾도록 한 것이다. 그런 뒤엔 유후인으로 돌아와 구주렌잔의 아름다운 고원을 가로질러 구로카와온천과 아소산의 구마모토로 버스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이 모든 구간 버스엔 산큐패스(기타큐슈 3일권)가 통용된다.

규슈 그랜드 루트의 세 곳은 지형과 역사, 매력이 제각각이다. 벳푸는 지옥탕 순례에 다양한 테마파크(아프리칸사파리, 기지마고원 놀이공원, 다카시마야 원숭이공원)와 쓰루미다케(해발 1300m)의 벳푸만 전망대(케이블카)를 지닌 해안 도시. 반면 유후인은 높은 산에 둘러싸인 해발 470m 분지의 옛 정취 짙은 산간마을에서 온천을 즐기는 휴양지다. 그리고 히타는 267년간 에도시대에 막부가 직할영지로 삼았던 심심산중의 고도. 교토의 귀족이 거주하며 남긴 화려한 문화 덕분에 ‘리틀 교토’라 불린다.


히타: 중심 거리 마메다마치엔 당시 영화를 가늠케 하는 상점(술도가 간장 된장 양조장)이 여직 성업 중. 그 배경은 ‘수향(水鄕)’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 데서 찾는다. 이곳은 산간의 여러 물줄기가 모여 드는 분지. 당시는 강물이 물자 수송의 주역이던 시절로 수로(水路)는 지금의 고속도로. 그러니 각지 산물의 집하장이자 거래시장이고 모여든 상인 간에 거금이 돌았는데 히타는 그 자체로 상업은행 역할을 했다. 즉, 막부가 파견한 귀족이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막부 금고를 채웠던 것이다.

‘규슈 그랜드 루트’는 이렇듯 각기 다른 세 곳을 산큐패스 특급, 쾌속버스로 찾는 ‘느린 여행’이다. 렌터카 여행에선 기대할 수 없는 여유와 감상이 여기선 최고의 가치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제 막 시작된 전인미답의 흥미진진한 여행 루트다. 누구보다 먼저 그 매력을 즐기고 숨겨진 진가를 세상에 알리는 건 오직 나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니 올겨울 여행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여기로 떠날 것을 권한다.


산큐패스
: 규슈 7개 현의 버스회사(49개·노선 2500개)가 규슈 최대 기업 니시테쓰(서일본철도)를 중심으로 개발한 날수(3·4일)와 지역(남·북·전규슈) 한정 버스이용권. 그 인기는 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목적지를 찾는 데 어려움이 없어선 데 그건 ‘규슈타비’에 상세히 업데이트되는 정보와 별도 제공의 가이드북(무료) 덕분. 운영자는 현지에서 발품 팔아 꼼꼼히 수집한 생생한 정보를 매일 올리는 지원석 계장(니시테쓰 자동차사업본부). 여행자들이 올리는 현장 수집, 긴요한 짤막 정보까지 더해진다.

산큐패스는 남·북부 3일권이 각각 6000엔과 7000엔, 전규슈 3·4일권은 1만, 1만4000엔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렴한 곳은 니시테쓰그룹 홍보관 ‘디스커버리 큐슈’(서울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607)다. 지금은 2000엔 짜리 벳푸체험티켓을 무료 제공 중.


▼물의 고향 히타의 매력에 빠지다▼

가메노이버스 다나카 노부히로 사장


“일본에 ‘저팬 그랜드 루트’가 있다면 오이타현엔 ‘규슈 그랜드 루트’가 있습니다. ‘도쿄∼오사카∼교토’처럼 벳푸 여행자의 발길을 유후인과 히타로까지 이끄는 대표 여행 코스를 말하는 겁니다.”

가메노이버스 다나카 노부히로(田中信浩·사진) 사장의 이 말은 ‘규슈 관광의 모든 길은 벳푸로 통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웃한 벳푸와 유후인은 세계적인 온천휴양지지요. 반면에 히타는 아직 생소합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좋아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나카 사장은 벳푸나 유후인, 한 곳에 그치지 말고 편리한 가메노이버스로 부담 없이 편안하게 히타를 찾을 수 있게 이 루트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리틀 교토’라 불리는 히타는 에도시대 귀족문화의 유산이라 할 만합니다. 수향(水鄕)이라고도 불리는데 물과 자연의 어울림이 그만이어서지요. 182년 된 사케 양조장 군초(薰長)와 삿포로맥주 양조장이 그 물로 술을 빚습니다. 전통의 야타카부네(屋形船)놀이(식당처럼 지은 배에서 가이세키 요리 즐기기)도 그 강에서 즐깁니다.”

그는 한국인 여행자가 가메노이버스의 최고 고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옥탕이 몰린 간나이의 버스센터에 들러보세요. 한글 안내도 잘돼 있고 과자와 커피도 드립니다. 2월엔 산큐패스 한국인 여행자 전용 지옥탕 순례버스(3650엔)도 무료 운행합니다.”
 

▼아부라야의 열정으로 데워진 벳푸▼



가메노이버스 창업자 아부라야 구마하치 동상(사진 위). 벳푸역 앞이다.1928년 가메노이버스 창업 당시의 아부라야 사장과 여승무원. 뒤로 포드자동차를 개조한 지옥탕 순례버스가 보인다. 가메노이버스 제공
1925년 어느 날. 일본 후지산 정상에 이런 팻말이 섰다.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내해, 온천은 벳푸’. 이어 일본 전국 주요 도시에는 이런 글판이 붙었다. ‘벳푸 가메노이 호텔 개관’. 벳푸온천(오이타현)과 일본 최초로 수세식 양변기를 갖춘 료칸 스타일의 온천호텔 광고판이다. 그걸 세운 이는 아부라야 구마하치(1863∼1935). 1928년 벳푸의 가메노이(龜の井)버스 창업자다.

그는 오이타현 사람이 아니다. 관광업자도 아니었다. 미곡도매상으로 서른 살에 오사카로 진출해 투기사업으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다. 그는 ‘아부라야 장군’이라 불린 ‘큰손’이었다. 그런데 그의 손은 실제로도 솥뚜껑만 했다. 그래서일까. 4년 후엔 알거지가 됐고 무일푼으로 화물선 선창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도미(渡美)했다. 그가 귀국한 건 마흔여섯 살 때(1909년). 그런데 거긴 오사카도, 고향 우와지마(에히메현)도 아닌 벳푸.

2년 후 ‘신의 한 수‘가 등장했다. 가메노이 호텔 개업(1911년)이었다. 그 한 수, 역시 큰손다웠다. 고객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전 세계, 그것도 부자들. 동시에 국내 광고도 개시했다. 비행기로 오사카 상공에서 광고전단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미국에서 본 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후지산 정상 광고판 등장도 이즈음. 1928년엔 미국에 진출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거리 선셋 불리바드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를 벌였다. 그때 또 역사가 씌어졌다. 핫피(겉옷 위에 걸치는 일본 전통의 얇은 옷)의 등판에 ♨를 붙인 것인데 온천 지도 부호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세계 최초의 케이스였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백미는 아직 등장 전. 하이라이트는 ‘벳푸 지옥순례(Hells‘ Tour)’였다.

이건 벳푸의 여러 지옥 탕을 차례로 들르는 투어. 지금도 벳푸의 명물로 성업 중이다. 그의 총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순례 버스를 미국 포드사에서 도입하고 거기에 미모의 여성 가이드를 태워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게 1928년. 가메노이 버스는 이렇게 창업돼 올해 90주년을 맞았다.

이후에도 혁신은 계속됐다. 클럽메드의 키즈클럽과 똑같은 ‘오토기(おとざ)클럽’을 운영했다. 그의 어린이 사랑은 끔찍했다. 벳푸만에 착륙한 수상비행기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어린이 앞에 나타난 깜짝쇼를 펼칠 정도. 그는 아이들의 우상이었고 그런 그를 아이들은 ‘대머리 삼촌’이라 불렀다. 규슈 최초의 골프클럽도 그의 아이디어고 벳푸와 나가사키를 잇는 규슈횡단도로, 구주렌잔(玖珠連山)의 경관도로 야마나미 하이웨이 제안도 그가 했다.

그는 벳푸에 지금도 건재하다. 벳푸역 앞 광장에 양팔을 펼치고 망토를 휘날리며 아이들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의 동상이다. 복장은 오스트리아 목동 것을 닮았는데 그건 당시 지옥순례버스 운전기사 유니폼. 벳푸시는 수시로 동상에 옷을 입힌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그런데 올해는 예외다. 럭비선수 차림을 하고 있다. 내년 가을 일본 전국서 펼쳐질 럭비월드컵을 겨냥한 관광 마케팅이다. 오이타현엔 인기 최고의 올블랙스팀(뉴질랜드) 경기가 배정됐고 그의 영원한 맞수 월러비(호주)가 여기서 훈련해 이걸 바탕으로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전략이다. 아부라야의 마케팅 DNA를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벳푸(일본오이타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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