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치지 않는 자의 골프 이야기]<12화> 클린턴 부부, 골프는 ‘따로국밥’ 이었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입력 2017-11-02 10:09 수정 2017-11-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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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70)은 어릴 때부터 두 가지 결점(?)이 있었다. 안경을 벗으면 사실상 맹인에 가까운 나쁜 시력과 둔한 운동 신경이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 관련 일화를 자세히 기술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1960년 대 초. 똑똑하고 공부 잘하기로 유명했던 14세 소녀 힐러리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지원 편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은 “우리는 여성을 우주 비행사로 선발하지 않는다”였다.


야심만만한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물론 내 형편없는 시력과 운동신경 때문에 남성이라 해도 떨어졌겠지만 어쨌든 그건 내 인생 최초로 겪은 좌절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중학교 3학년 때 한 남자 고교생을 짝사랑했다. 문제는 그의 어머니. 해당 학생과 놀지 못하게 했다. 총명한 딸에게 기대가 컸던 어머니는 딸이 남학생과 이유 없이 어울리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결국 “그 남학생에게 골프를 배우겠다”는 구실로 겨우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예쁘게 보이려 안경도 쓰지 않고 나간 골프장. 가뜩이나 작은 골프공이 제대로 보일 리 만무했다. 남학생에게 “나 너 때문에 일부러 안경을 안 쓰고 나왔다”는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그는 어렴풋이 흰색으로 보이는 물체를 공으로 여겨 골프채를 휘둘렀다. 순간 흰색 부스러기들이 팝콘처럼 공중에 흩어졌다. 그가 때린 건 흰색 버섯이었다.


성인이 된 클린턴 전 장관은 정식 레슨도 두 차례나 받고 콘택트렌즈를 끼고 골프장에 나갔다. 하지만 골프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자서전에도 ‘골프는 좋은 산책을 망치는 운동(Golf is a good walk spoiled)’이라는 말에 십분 공감한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반면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골프 마니아였다. 다만 그도 실력은 별로였다. 골프장에 자주 나갔지만 첫 티샷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치는 ‘멀리건’을 즐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게다가 ‘셀프 멀리건’을 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을 했다”는 농담도 즐겼다.

골프에 대한 부부의 ‘따로국밥’은 미 매사추세츠 주의 고급 휴양지 마사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섬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고향 아칸소 주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오랜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고 클린턴 전 장관은 독서와 수영을 즐겼다.

1993년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클린턴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화도 있다. 원래 백악관에서는 두 대통령의 골프 회동을 주선하려고 했다. 알려진 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 대신 조깅을 선호했다. 결국 두 정상이 조깅을 같이 하게 됐다.

골프 애호가인 친구는 이를 두고 “골프를 쳤으면 미국 대통령과 최소 4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 반면 조깅은 길어야 20~30분 아니냐. 미국 대통령을 독점할 4시간을 그렇게 버리다니 말이 안 된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한국 대통령은 억지로라도 미국 대통령과 골프를 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무튼 YS의 조깅 제안에 클린턴 전 대통령은 실망했을지 몰라도 클린턴 전 장관은 좋아했을 것 같다.


한 가지 의문도 든다. 클린턴 전 장관이야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할 뻔 했고 공직 생활을 오래 했으니 그렇다 쳐도 왜 각국 영부인이 골프를 쳤다는 기록은 많지 않을까? 트럼프, 오바마, 클린턴, 부시 부자 등 미국의 전 대통령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골프광이었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재직 중 골프를 너무 많이 친다는 이유로 한 기자에게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골프광 대통령들의 부인들이 남편만큼 골프를 즐겼다는 보도는 보지 못했다.

한국도 마찬가지. ’홀인원‘을 해 해당 골프장에 식수를 했다는 이순자 여사를 제외하면 영부인의 골프에 관한 보도를 접하기 어렵다. 영부인은 골프를 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프랑스계 다국적 마케팅기업 하바스코리아의 전략부문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역서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로드 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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