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악용 최신형 대포폰 45만원… ‘풀옵션’ 통장은 60만원
동아일보
입력 2014-02-06 03:00 수정 2014-02-06 03:00
[대한민국 온갖 정보 다 샌다]
[덫에 걸린 신용사회]<4>대포폰-대포통장 직접 구해보니
영국작가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투명망토가 나온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투명망토를 쓰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은 채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일을 꾸밀 수 있다. 대포폰, 대포통장, 대포차 일명 ‘대포시리즈’는 범죄자에게 현대의 투명망토나 마찬가지다. 타인의 이름으로 된 휴대전화로 협박문자를 보낼 수 있다. 사기로 뜯어낸 돈을 계좌로 송금받아도 통장명의자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교통단속카메라에 차량번호가 찍혀도 내 인적사항은 드러나지 않는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대포폰의 유통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구입에 나섰다. 3일 인터넷 검색사이트 구글에 대포폰과 관련된 단어를 검색했다. ‘타인명의 폰’, ‘휴대폰 팝니다’ 등을 검색하자 광고가 쏟아졌다. 대포폰 판매업자는 전화번호나 인터넷 메신저 ID를 남겼다. 전화를 걸자 남성이 받았다. “대포폰 있어요?”, “네, 어떤 걸로 찾으세요?”. 업자는 구형 피처폰은 15만∼17만 원, 최신 스마트폰은 30만 원 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자는 “삼성 슬라이드나 폴더폰은 15만 원, 갤럭시S2는 30만 원, 갤럭시S3는 45만 원”을 불렀다.
취재팀은 “15만 원에 폴더폰을 사겠다”고 했다. 업자는 “퀵으로 받으면 2만 원이 더 들고, 직접 이 근처로 오면 내가 나가서 준다. 사무실로는 올 수 없다”고 했다. 4일 오후 2시 취재팀은 서울 경희대 인근에서 업자를 만나기로 했다. 2시 5분쯤 약속장소에서 전화를 걸자 취재팀 뒤에 서서 통화를 하던 50대 남성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다른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봉투에 담긴 대포폰을 내밀었다. 꺼내자 흰색 폴더폰이 나왔다. “요금은 선불충전식”이라고 했다. 동봉한 명함을 가리키며 “여기 번호로 걸어서 1만 원이나 2만 원씩 충전해 달라고 하고 계좌로 보내면 된다”며 “아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없다”고 말했다.
대포폰에는 ‘이○○’라는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업자는 “원래 소유자인 여성 이름이다.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를 거다”라며 “‘일’이 생기면 한 달간 애프터서비스(AS)를 해준다”고 말했다. 또 “그 대신 이걸로 피싱하거나 대출문자 날리다 구속되면 나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업자가 말한 ‘일’이란 사용 중지로 쓸 수 없게 되거나 하면 새 대포폰으로 바꿔준다는 뜻이었다.
대포폰 안에는 통화기록, 주소록, 문자,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취재팀은 원주인을 찾기 위해 한 데이터 복구 전문업체에 복구를 의뢰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타인명의 휴대전화는 위임장이 없으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취재 목적을 밝히고 데이터를 그 자리에서 확인한 뒤 다시 파기한다는 조건으로 복구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통화기록 4건, 문자메시지 4건, 주소록 2건이 나왔다. 복구를 담당한 전문가는 “상태로 보아 중간에 초기화를 한번 거쳐 데이터가 많이 삭제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원소유주로 추정되는 이모 씨는 찾을 수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수십 개, 수백 개씩 한꺼번에 (대포폰을) 만들기도 한다”며 “대포폰 업자들은 통신사에서 개통 수당도 챙기고 대포폰 판매수익도 챙긴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은 대포통장 업자와도 접촉했다. 구글에서 통장을 판다는 글을 찾아 3일 전화를 걸자 업자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통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우리는 법인(통장)은 취급 안 하고 개인(통장)만 있어요. 한 달간 AS 되고 인터넷뱅킹, 폰뱅킹 등 풀옵션으로 하면 60만 원. 인터넷 뱅킹이 안 되는 통장이랑 현금카드만 하면 50만 원입니다.”(업자1) “법인장(법인통장)이 좋아요 그거 사세요. 개인장(개인통장)은 명의자가 중간에 돈을 빼돌릴 수도 있고 거래중지를 시킬 수도 있는데 법인장은 우리가 만든 거라 아무 문제없습니다.”(업자2)
한 업자는 심지어 “법인 설립도 대행해준다”고 유혹했다. 그는 “150만∼250만 원만 내면 법인 설립을 해주는데, 법인 명의로 통장을 여러 개 만들면 되니 그게 더 좋지 않으냐”며 의사를 물어왔다. 경찰 관계자는 “일명 ‘통장 알바’라고 돈 받고 자신 명의의 통장을 대여해 대포통장이 되는 경우도 있고, 노숙인에게 업자들이 계좌를 개설시키고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고 대포통장 개설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유통된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온갖 범죄에 사용된다. 지난해 4월 텝스와 토익 어학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는 대포폰이 답안을 불러주는 데 사용됐다. 2012년 5월에 일어난 여성 납치 인질강도 사건에서는 범인들이 대포폰 2대와 대포차 2대를 이용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범행을 일삼기도 했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 발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동통신 3사의 명의도용 집계건수는 총 2만2929건, 피해액은 130억 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포통장 약 3만6000개(2013년 6월 말 현재)가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이은택 nabi@donga.com·황성호·박가영 기자
[덫에 걸린 신용사회]<4>대포폰-대포통장 직접 구해보니
영국작가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투명망토가 나온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투명망토를 쓰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은 채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일을 꾸밀 수 있다. 대포폰, 대포통장, 대포차 일명 ‘대포시리즈’는 범죄자에게 현대의 투명망토나 마찬가지다. 타인의 이름으로 된 휴대전화로 협박문자를 보낼 수 있다. 사기로 뜯어낸 돈을 계좌로 송금받아도 통장명의자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교통단속카메라에 차량번호가 찍혀도 내 인적사항은 드러나지 않는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대포폰의 유통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구입에 나섰다. 3일 인터넷 검색사이트 구글에 대포폰과 관련된 단어를 검색했다. ‘타인명의 폰’, ‘휴대폰 팝니다’ 등을 검색하자 광고가 쏟아졌다. 대포폰 판매업자는 전화번호나 인터넷 메신저 ID를 남겼다. 전화를 걸자 남성이 받았다. “대포폰 있어요?”, “네, 어떤 걸로 찾으세요?”. 업자는 구형 피처폰은 15만∼17만 원, 최신 스마트폰은 30만 원 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자는 “삼성 슬라이드나 폴더폰은 15만 원, 갤럭시S2는 30만 원, 갤럭시S3는 45만 원”을 불렀다.
취재팀은 “15만 원에 폴더폰을 사겠다”고 했다. 업자는 “퀵으로 받으면 2만 원이 더 들고, 직접 이 근처로 오면 내가 나가서 준다. 사무실로는 올 수 없다”고 했다. 4일 오후 2시 취재팀은 서울 경희대 인근에서 업자를 만나기로 했다. 2시 5분쯤 약속장소에서 전화를 걸자 취재팀 뒤에 서서 통화를 하던 50대 남성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다른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봉투에 담긴 대포폰을 내밀었다. 꺼내자 흰색 폴더폰이 나왔다. “요금은 선불충전식”이라고 했다. 동봉한 명함을 가리키며 “여기 번호로 걸어서 1만 원이나 2만 원씩 충전해 달라고 하고 계좌로 보내면 된다”며 “아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없다”고 말했다.
대포폰에는 ‘이○○’라는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업자는 “원래 소유자인 여성 이름이다.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를 거다”라며 “‘일’이 생기면 한 달간 애프터서비스(AS)를 해준다”고 말했다. 또 “그 대신 이걸로 피싱하거나 대출문자 날리다 구속되면 나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업자가 말한 ‘일’이란 사용 중지로 쓸 수 없게 되거나 하면 새 대포폰으로 바꿔준다는 뜻이었다.
대포폰 안에는 통화기록, 주소록, 문자,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취재팀은 원주인을 찾기 위해 한 데이터 복구 전문업체에 복구를 의뢰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타인명의 휴대전화는 위임장이 없으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취재 목적을 밝히고 데이터를 그 자리에서 확인한 뒤 다시 파기한다는 조건으로 복구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통화기록 4건, 문자메시지 4건, 주소록 2건이 나왔다. 복구를 담당한 전문가는 “상태로 보아 중간에 초기화를 한번 거쳐 데이터가 많이 삭제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원소유주로 추정되는 이모 씨는 찾을 수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수십 개, 수백 개씩 한꺼번에 (대포폰을) 만들기도 한다”며 “대포폰 업자들은 통신사에서 개통 수당도 챙기고 대포폰 판매수익도 챙긴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은 대포통장 업자와도 접촉했다. 구글에서 통장을 판다는 글을 찾아 3일 전화를 걸자 업자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통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우리는 법인(통장)은 취급 안 하고 개인(통장)만 있어요. 한 달간 AS 되고 인터넷뱅킹, 폰뱅킹 등 풀옵션으로 하면 60만 원. 인터넷 뱅킹이 안 되는 통장이랑 현금카드만 하면 50만 원입니다.”(업자1) “법인장(법인통장)이 좋아요 그거 사세요. 개인장(개인통장)은 명의자가 중간에 돈을 빼돌릴 수도 있고 거래중지를 시킬 수도 있는데 법인장은 우리가 만든 거라 아무 문제없습니다.”(업자2)
한 업자는 심지어 “법인 설립도 대행해준다”고 유혹했다. 그는 “150만∼250만 원만 내면 법인 설립을 해주는데, 법인 명의로 통장을 여러 개 만들면 되니 그게 더 좋지 않으냐”며 의사를 물어왔다. 경찰 관계자는 “일명 ‘통장 알바’라고 돈 받고 자신 명의의 통장을 대여해 대포통장이 되는 경우도 있고, 노숙인에게 업자들이 계좌를 개설시키고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고 대포통장 개설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유통된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온갖 범죄에 사용된다. 지난해 4월 텝스와 토익 어학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는 대포폰이 답안을 불러주는 데 사용됐다. 2012년 5월에 일어난 여성 납치 인질강도 사건에서는 범인들이 대포폰 2대와 대포차 2대를 이용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범행을 일삼기도 했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 발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동통신 3사의 명의도용 집계건수는 총 2만2929건, 피해액은 130억 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포통장 약 3만6000개(2013년 6월 말 현재)가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이은택 nabi@donga.com·황성호·박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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