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종일 서서 번 전재산, 몽땅 날리고 거리 나앉을 판”
백연상기자
입력 2013-11-04 03:00 수정 2015-05-25 19:17
동양사태 한달… 피해자들의 절규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동양그룹의 3개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금융감독원은 피해보상을 위한 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갔지만 더딘 속도와 실효성 문제로 금융당국, 동양 측과 피해자들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동양 측에서 채권 및 기업어음(CP)에 대한 설명과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동양 측은 “고수익 고위험 상품이라는 점을 설명했고 고객들이 직접 사인했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은 향후 금감원의 분쟁조정 절차와 민사 소송을 통해 진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분쟁조정 절차가 지지부진하고 해당 금융회사가 합의권고를 수용치 않을 경우 법원 판결처럼 강제력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금융당국의 감독 부실이 동양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만큼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 구제 절차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서울 왕십리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박모 씨(54·여)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1월만 상상하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남편 없이 아들을 홀로 키우며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서서 일한 지 10년. 화장실은 오전 오후 단 2번만 갔고 손은 계속된 가위질 때문에 뼈가 튀어나오고 상처투성이였다. 무릎과 허리는 날마다 아팠지만 10년간 어렵게 모은 9000만 원으로 아들과 함께 새 전셋집으로 이사할 수 있다는 희망에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올 8월 박 씨는 동양증권 왕십리지점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담당 직원은 박 씨에게 이자율이 좋은 상품이 있다며 가입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딱 잘라 거절했다. 주식이나 펀드 등을 해본 적이 없는 박 씨로선 ‘혹시 돈을 한 푼이라도 잃게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당 직원은 ‘원금이 보장된다’며 ‘3개월만 가입하시라’고 권유했다. 결국 박 씨는 일이 끝난 오후 8시 지점을 방문해 직원이 형광펜으로 표시해준 곳에 사인을 했다. 내용은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동양 사태가 터지면서 자신의 돈 9000만 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 씨는 1일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다. 월급 약 100만 원을 받는 박 씨의 투자자 정보 확인서에는 월 300만∼6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투자형’으로 돼 있었다. 박 씨는 “그동안 아들에게 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하고 학원도 못 보냈다. 그렇게 모은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됐다”며 흐느꼈다.
○ 그녀가 옥상으로 올라간 까닭은
1일 낮 12시 30분경. 서울 중구 을지로2가 동양생명 옥상에서 40대 여성이 ‘투신하겠다’고 외쳤다. 이순자 씨(48)는 “내가 죽어 동양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알리려 했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이 씨는 “원금은 확실히 보장된다”는 담당 여직원의 전화를 받고 ㈜동양 채권에 3800만 원을 투자한 뒤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 씨에게 3800만 원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었다.
그는 한 달 동안 창원, 울산, 진해 지역 피해자 대표로서 담당 직원과 피해자들의 통화 녹취록을 찾고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하지만 동양증권 측에서는 “녹취록은 제공하지 못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씨의 투신 시도는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이 씨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농약을 먹고 자살하겠다는 피해자들의 절망에 찬 전화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 돈 잃고 건강 잃고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김모 씨(53)는 평생 단순 노무직에 근무했다. 아내 박모 씨도 마트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던 김 씨는 보험사에서 암 수술 비용으로 받은 보험금 2000만 원을 동양 채권에 투자했다. 수술비마저 날릴 위기에 처한 그는 담당 직원의 “원금이 보장된다”란 말에 수술을 받기 전 3개월만 돈을 넣어두면 살림에 약간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것. 현재 몸이 아파 일을 못하고 있는 그를 대신해 그의 아내가 수술비를 벌기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정미(가명·48·여) 씨는 동양사태 이후 두려움과 담당 직원에 대한 배신감이 겹쳐 한 달 동안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찾은 신경정신과에서는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금감원이 피해자 5만 명에 대해 동양 측의 불완전 판매를 조사하는 데만 1년 6개월가량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당국의 철저한 회계감사를 통해 책임 있는 대주주와 법인의 채권 확보를 서두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양측의 상반된 주장은 향후 금감원의 분쟁조정 절차와 민사 소송을 통해 진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분쟁조정 절차가 지지부진하고 해당 금융회사가 합의권고를 수용치 않을 경우 법원 판결처럼 강제력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금융당국의 감독 부실이 동양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만큼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 구제 절차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서울 왕십리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박모 씨(54·여)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1월만 상상하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남편 없이 아들을 홀로 키우며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서서 일한 지 10년. 화장실은 오전 오후 단 2번만 갔고 손은 계속된 가위질 때문에 뼈가 튀어나오고 상처투성이였다. 무릎과 허리는 날마다 아팠지만 10년간 어렵게 모은 9000만 원으로 아들과 함께 새 전셋집으로 이사할 수 있다는 희망에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올 8월 박 씨는 동양증권 왕십리지점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담당 직원은 박 씨에게 이자율이 좋은 상품이 있다며 가입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딱 잘라 거절했다. 주식이나 펀드 등을 해본 적이 없는 박 씨로선 ‘혹시 돈을 한 푼이라도 잃게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당 직원은 ‘원금이 보장된다’며 ‘3개월만 가입하시라’고 권유했다. 결국 박 씨는 일이 끝난 오후 8시 지점을 방문해 직원이 형광펜으로 표시해준 곳에 사인을 했다. 내용은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동양 사태가 터지면서 자신의 돈 9000만 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 씨는 1일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다. 월급 약 100만 원을 받는 박 씨의 투자자 정보 확인서에는 월 300만∼6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투자형’으로 돼 있었다. 박 씨는 “그동안 아들에게 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하고 학원도 못 보냈다. 그렇게 모은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됐다”며 흐느꼈다.
○ 그녀가 옥상으로 올라간 까닭은
1일 낮 12시 30분경. 서울 중구 을지로2가 동양생명 옥상에서 40대 여성이 ‘투신하겠다’고 외쳤다. 이순자 씨(48)는 “내가 죽어 동양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알리려 했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이 씨는 “원금은 확실히 보장된다”는 담당 여직원의 전화를 받고 ㈜동양 채권에 3800만 원을 투자한 뒤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 씨에게 3800만 원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었다.
그는 한 달 동안 창원, 울산, 진해 지역 피해자 대표로서 담당 직원과 피해자들의 통화 녹취록을 찾고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하지만 동양증권 측에서는 “녹취록은 제공하지 못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씨의 투신 시도는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이 씨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농약을 먹고 자살하겠다는 피해자들의 절망에 찬 전화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 돈 잃고 건강 잃고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김모 씨(53)는 평생 단순 노무직에 근무했다. 아내 박모 씨도 마트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던 김 씨는 보험사에서 암 수술 비용으로 받은 보험금 2000만 원을 동양 채권에 투자했다. 수술비마저 날릴 위기에 처한 그는 담당 직원의 “원금이 보장된다”란 말에 수술을 받기 전 3개월만 돈을 넣어두면 살림에 약간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것. 현재 몸이 아파 일을 못하고 있는 그를 대신해 그의 아내가 수술비를 벌기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정미(가명·48·여) 씨는 동양사태 이후 두려움과 담당 직원에 대한 배신감이 겹쳐 한 달 동안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찾은 신경정신과에서는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금감원이 피해자 5만 명에 대해 동양 측의 불완전 판매를 조사하는 데만 1년 6개월가량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당국의 철저한 회계감사를 통해 책임 있는 대주주와 법인의 채권 확보를 서두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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