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그곳에 오래 남아 대가야 고령
여성동아
입력 2017-06-28 10:55 수정 2017-06-28 16:40
1천5백여 년 전, 신라와 백제 사이, 여섯 개의 소국이 모여 있었다. 열강 틈에서 5백여 년이나 이어갔던 가야국이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에 마음이 가는 건 왜일까. 화사한 꽃보다 풀꽃에 시선이 가는 것처럼. 그렇게 고령이란 도시에서 대가야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다. 영국 청년 다니엘 튜더는 서울에서 도시산책자, 프랑스어로 플라노(Fla^neur)로 지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 이코노미스트 〉 한국 특파원으로 있을 때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였던 그.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거닐었던 오래된 고분 사이, 고즈넉한 한옥에서, 고요하고도 찬란했던 시간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우리가 몰랐던 쓸쓸하고도 찬란한 역사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가야는 여섯 개의 작은 나라가 모인 국가란다. 대가야, 금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고령가야 등이 고령 주변에 퍼져 있었다. 그중 철기 문화가 발달했던 대가야가 도읍이었고, 그곳이 지금의 고령이다.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주변으로 가야를 차근차근 알 수 있는 역사길이 이어져 있다. 그 입구, 연꽃이 소담하게 피어 있는 우륵지에 잠시 멈췄다.
“신라와 백제는 알았는데 가야는 처음이에요. 보드랍지만 단단한 느낌이 드는 나라예요.”
영국의 명문 대학교를 나온 다니엘은 무엇이든 관심이 많았다. 정치, 철학, 역사를 두루 섭렵한 그와 함께하는 대가야 산책길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다니엘, 가야금 알지? 대가야에서 만든 악기라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어.”
궁중 악사였던 우륵이 오동나무에 12줄의 명주실을 감아 만든 가야금의 청명한 소리가 이곳 연못에 울리는 듯하다.
길 위에서 다니엘은 19세기 영국의 풍경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코스트 투 코스트 워크(Coast to Coast Walk)가 떠오른다고 했다. 우리는 그 이전의 4~5세기 길을 걷는다고 하니, 다니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사라진 도시를 여행한다는 설렘이 점점 커진다.
1천5백 년의 시간이 멈춘 부드러운 능선길 지산동대가야고분군
대가야의 왕과 귀족들이 잠들어 있는 고분은 무려 7백여 기에 이른단다.
보드라운 바람이 부드러운 능선 사이로 부니 마음의 결도 고와진다. 고분 사이를 다니엘이 서성이자 볕도 그곳으로 쏠리는 듯, 낯선 이의 등장에 고분 안의 왕들도 놀라는 듯하다. 오래된 시간을 따라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가는 역사길이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온해서 순장이란 풍습이 믿기지 않는다.
“이곳은 슬픈 곳이야. 백제나 신라에는 없던 순장 풍습이 행해졌어. 그 옛날 먼 시대에.”
순장은 죽은 사람과 노비나 동물을 함께 묻는 풍습이다. 죽은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영국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어요. 이야기와 다르게 정말 아름다운 산책길이에요.”
다니엘에게도 우리의 빛나던 시간이 조금씩 알려지기를 바라본다.
팔만대장경의 역사길을 따라 개경포공원
고령의 낙동강엔 조선 시대 내륙지역의 곡식과 소금을 운송하던 커다란 개경포 포구가 있었다.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이 운반될 때도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온 배가 이 길에 도착했다. 옛 포구는 제방 공사로 그 흔적만 조붓하게 남아 있지만, 낙동강변 너울길을 따라 수런거리는 풀 사이를 거닐기 좋다.
빛나게 일렁이는 고령의 밤 대가야교
고령 중심을 흐르는 회천변을 따라 공원이 들어섰다. 밤에 찾으니 더욱 운치 있다. 305m에 이르는 다리는 철의 문화가 스미도록, 토기의 유연함이 돋보이도록 만들어졌단다. 강변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등대의 불이 반짝이는 듯, 아름다운 여운이 오래도록 머문다.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개실마을
3백50여 년 전, 조선 전기 문신인 김종직의 후손 일선 김씨의 집성촌에 들어선 개실마을. 느린 속도로 지어 올린 한옥 사이로 강바람이 들어찬다. 여름의 나날들, 이만한 한옥에서 한량처럼 지내면 좋을련만, 마을 한편에선 바쁜 손놀림이 이어진다.
시집 와서 오롯이 40년 동안 엿을 만들었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일러주신다. 조청을 달여 살짝 식힌 후,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엿을 만드는 것이다. 마을에서 지은 쌀로 지은 밥에 엿기름을 더해 조청을 빚었단다. 삼삼한 달콤함에 끌려, 엿 만들기를 멈추고 자꾸 맛을 보게 된다.
“화해해야 하는 사람들이 오면 좋겠어요.” 엿가래를 서로 밀고 당기며 절로 친해질 것 같다. 다니엘과도 엿 하나로 부쩍 가까워졌다.
“엿 크기는 엿장수 맴대로여!” 아주머니가 댕강댕강 잘라주는 엿을 입안 가득 머금는다.
온 가족이 즐거운 체험의 도시 고령
대가야기마문화체험장에서
승마체험을 하고 있는 다니엘 튜더.
말 위에 한 번도 올라간 적 없는 다니엘이지만, 안전 장비를 갖춰 안장 위에 앉으니 그럴 듯하다. 다니엘이 탄 말은 8살. 대가야 1대 왕의 이름을 딴 아시왕이란 말이다. 마상무예와 공연 등을 도맡아 하는 똑똑한 말이라고 하니, 그제야 다니엘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피어난다. 대가야 기마무사가 된 것처럼 초원 위를 천천히 달린다.
고령은 산과 물을 이용한 체험이 풍성하다. 시골 마을 실개천에서 뗏목을 타보거나 당도 높기로 유명한 고령 딸기를 직접 따며 농부가 되어볼 수 있다. 아름다운 가락이 울려 퍼지는 가얏고마을에서 우륵이 되어 직접 가야금을 만들거나 연주도 할 수 있다. 대가야체험캠프장에서 소시지와 피자 등을 만드는 바른 먹을거리 체험도 인기. 온 가족이 즐기는 체험은 그해 여름을 특별하고도 행복한 시간으로 이끌 것이다.
불과 땀이 스민 문화를 발견하다 대가야시장
대가야시장 대장간에서
탕탕탕탕 연장 만드는 소리를 들으니
화려한 철기문화를 꽃피운 대가야에
와 있는 듯하다.
4, 9일이 장날인 대가야시장을 빠뜨릴 수 없다. 대가야 시대부터 철기 문화로 유명했던 고령이니, 벌써 두 손 가득 무거워질 각오로 장터로 향한다.
시장 입구엔 3대째 운영해온 대장간이 있다. 주인 이준희 씨가 직장생활을 하다 대장간을 이어가기로 한 건 15년 전이다. 가끔은 서툴러, 아버지에게 혼나는 40대의 주인이다. 물에 담그는 열처리는 그 오래되고도 익숙한 손놀림이 아니면 안 되는가 싶다. 쇠가 부러지고 뭉그러지는 것도 세밀한 시간 차이다. 1000℃가 넘는 불 앞에서 그 오랜 시간을 이어나가는 그가 존경스럽기만 하다. 시장 구석구석을 거닐다 아련한 추억이 담긴 무쇠솥도 발견했다! 수작업으로 하루에 몇 개만 만들어진다는 솥을 보는 순간 뭘 해 먹어야 하나, 갖가지 메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 무쇠 그릇에 음식을 해보면 알아요. 맛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요!” 주인장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고령은 대가야 시대부터 철기 문화가 발달했다. 철로 만든 농기구로 농작물을 풍성하게 재배했고, 철제 무기로 나라를 지켜왔다.
그 문화의 맥이 오랜 시간이 흘러 시장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니! 뿌듯한 순간이다.
고령의 오래된 맛
고령표 참외·메론·수박 등 과일이 풍성한 대가야시장에서.
우곡그린수박
기나긴 여름 중에 보름 정도만 먹을 수 있는, 고령 사람도 맛보기 힘들다는 귀한 수박이다. 낙동강변 사질 양토에 5월 한 달 동안만 수확하는데, 1년에 한번만 심고 수확해 영양도 높다. 맑은 물, 비옥한 토양, 벌을 이용한 자연 수정 등으로
아삭하고 당도 높은 수박을 재배할 수 있다.
한우_고령금산한우
25년 동안 한우만을 고집한 식당.
특히 최고급육인 A 2++ 거세 한우를 파는 곳은 고령 지역에서 이 집이 유일하다. 고기의 더욱 깊은 맛은 참나무숯이 그 비법이다. 국내산 참숯의 가격은 고깃값과 비슷할 정도로 고가지만 고기의 맛을 좌우한다.
숯으로 살짝 구운 한우는 육질이 더욱 부드러워지며 참숯 향이 은은하게 배어난다.
스무주_황토식당
조선 시대 효종 때 궁중에서 가져왔다 그 맥이 잠시 끊긴 전통주다. 1백50년 전에 집안 어르신이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고령의 대표 술로 자리 잡았다. 찹쌀이 귀했던 그때는 중요한 손님이 와도 석 잔 이상 내주지 않았을 정도로 귀한 술이었다. 초가을에 한 번만 담글 수 있는데, 20일 숙성시킨 후 첫맛을 볼 수 있어 스무주란다. 1백여 일 동안 시간을 들여 만든 스무주 맛이 가장 좋다. 달콤쌉쌀함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복어찜_월산복어
고령은 예부터 경북에서도 크다고 자랑할 만한 전통 시장이 있었다. 그래서 바다와 가깝지 않아도 신선한 해산물이 풍족했다. 복어도 그중 하나. 특히 이 집은 10여 년 동안 복어와 아귀 등을 전문으로 낸 식당이다. 이곳의 복어찜은 갖가지 해산물이 들어가 풍성하면서도 보드라운 살이 특징이다. 이제 목포나 부산에서 직접 들여오는 신선한 복으로 요리를 한다.
뒷고기_가는 날이 장날
10년 전만 해도 대가야시장엔 커다란 우시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장에서 국밥집이나 고깃집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중 돼지 뽈살과 눈살, 뒤통수살을 내는 이 집은 여느 고깃집에서 구하지 못하는 뒷고기를 맛볼 수 있다.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며 연탄불에 구우면 기름이 빠져 느끼하지 않다.
숨겨진 역사길 따라 찬란한 대가야를 만나다 고령
고즈넉한 지산동대가야고분군을 거니는 효재.
1박 2일 코스
고분가얏길→대가야박물관→우륵박물관→숙박→대가야시장→개실마을
2박 3일 코스
고분가얏길→대가야박물관→우륵박물관→숙박→대가야시장→개실마을→숙박→가얏고마을→장기리암각화
고령에 대한 추가 정보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국내 여행 정보 포털 사이트. 추천 테마 여행, 관광 명소, 교통, 숙박, 맛집 등 지역 관광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기획 최은초롱 기자 취재 박산하 사진 홍태식 이상윤 디자인 김영화 취재협조 고령군청 스타일리스트 류시혁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기획 최은초롱 기자 취재 박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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