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이륙, 서울 제주 찍고 부산 착륙

부산=변종국 기자

입력 2020-09-22 03:00 수정 2020-09-22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에어부산 ‘목적지 없는 비행’ 타보니
2시간 동안 국토 구석구석 구경, 경치 좋은 곳선 최대한 저공비행
일반 관광객 대상은 허가 못받아 예비 승무원들 실습용으로 띄워


18일 에어부산이 국내 최초로 실시한 ‘목적지 없는 비행기’ 안에서 부산여대 항공관광학과 학생들이 구명조끼 착용법 안내 실습을 하고 있다. 이날 에어부산 현직 객실 승무원 7명이 함께 탑승해 실습을 지도했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제 이름은 ‘A321네오LR’입니다.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이 동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들여온 최신 항공기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비행기들이 주기장에 서 있는 와중에, 저는 18일 특별한 비행을 했습니다. 바로 에어부산이 국내 최초로 시도한 ‘목적지 없는 비행’입니다.

목적지가 없다는 것이 낯설 텐데요. 말 그대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하늘을 날다가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비행입니다. 이날 비행은 저의 홈그라운드인 부산 김해국제공항을 출발해 대구와 경북 포항, 서울을 찍고 전북 군산, 광주를 지나 제주 인근을 돌고 다시 김해로 돌아오는 2시간짜리 노선이었습니다. ‘하늘 위의 국토순례’인 셈이죠.

비행경로는 저를 조종한 전경석 기장님이 직접 짜셨어요. 전투기가 훈련하는 공역과 고도제한 지역 등을 피해 노선을 짜느라 고생 좀 하셨다고 해요. 승객들이 창밖으로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도록 해안이나 산의 위치 등도 고려해 노선을 만든 건 기장님의 센스! 비행 도중 기장님은 어디를 날고 있는지 기내방송으로 일일이 알려주셨습니다. 특히 좋은 경치가 나오면 최대한 낮게 날아 승객들이 창밖으로 대한민국의 초가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탑승권에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부산’으로 표기돼 있다.
이날 비행에는 부산여대 항공관광학과 학생들 64명이 함께 탑승했습니다. 비행기에서 현직 에어부산 승무원들과 함께 승무원 교육 실습을 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마이크를 잡고 “승객 여러분 반갑습니다”라며 기내 안내방송도 해보고, “레이디스 앤드 젠틀맨”으로 시작하는 영어 안내방송도 해봤습니다.

김해국제공항에 착륙할 즈음엔 승무원들이 라디오 DJ가 돼 미리 받아둔 사연을 읽어줬습니다. “코로나로 힘들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을 날이 올 테니 힘내자”라는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목적지 없는 비행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위기를 조금이나마 이겨보자는 뜻에서 에어부산이 시작했습니다. 1인당 20만 원 정도 하는데, 예비 항공인들에겐 현장 경험을 쌓게 하고 회사로선 가뭄 속 단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종류의 유사한 비행 상품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대만의 타이거에어는 ‘제주 가상 출국 여행’ 상품을 만들어 제주도 상공까지 와서 치맥(치킨+맥주)을 먹는 비행을 최근 진행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품은 발굴하지 못하고 오로지 예비 승무원 교육 목적의 비행만 할 수 있습니다. 관광 상품은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조금 더 해소될 때 정부 허가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은 하늘 위 호텔이라 불리는 A380을 띄워 관광 및 교육 비행을 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제주항공도 B737 항공기를 띄워 예비 승무원을 교육하는 상품을 준비 중입니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