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쇼크…수백억 적자에 정리해고 바람 부는 항공사들[떴다떴다 변비행]

변종국기자

입력 2020-03-31 14:26 수정 2020-03-3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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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항공사 직원이 쓴 글 한 편이 항공업계 종사자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직장인 커뮤니티 어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항공업계 종사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비운항 콜백하다. 취소 처리 해달라는 젊은 남자 고객이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상투적인 내 말에 ”기운내세요. 파이팅“이라고 말했다. 그 말 한 마디에 왈칵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래, 이 사태를 내가 만든 건 아닌데. 월급 밀려도 잘릴까봐 노동부에 진정서도 못내는 내 잘못도 아닌데. 밥값 아끼려고 집에서 도시락 가져와 사무실에서 먹는 내 잘못도 아닌데. 용돈 없을까봐 월급도 못 갖다 준 나에게 1만 원짜리 한 장 쥐어준 내 아내 잘못도 아닌데. 아빠 회사 잘 갔다 오라며 웃으며 배웅해준 내 아이들 잘못도 아닌데. 누굴 원망해야하는지….

쉬는 날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지만 여기도 코로나 여파로 일거리가 줄었다. 아니 거의 없다. 혹시나 하고 기다리지만 여기도 급이란 게 존재하여 나처럼 기술 없는 잡부는 나가기도 힘들어 2주 동안 1번 나갔다.

2월 이후 처음 집에 가져다 준 9만8000원. 그래, 이렇게라도 버티자 맘 먹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담배만 늘어가고, 3월 급여 미지급과 정리해고 한다는 공지에 이젠 모두 포기하고 싶다.”

항공업계 종사자들은 먹먹하게 써내려간 글에 많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는 항공업계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항공사들은 전체 노선의 90%를 줄였습니다. 항공기들은 날지 못하고 주기장에 서 있습니다. 주차 공간이 없어 유도로에 서있는 항공기들도 있습니다. 항공사들은 매달 수백 억 적자에 시달립니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니 현금이 안 들어옵니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장비와 시설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현금은 들어오지 않고 비용만 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곧바로 인력 조정 및 임금 감소가 들이 닥칩니다. 항공업계에서 유·무급 휴직은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조업사와 협력사들부터 권고사직 및 정리해고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임금이 줄어들어 생활비가 부족해서 소일거리를 찾는 분들도 많습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잠시 하고 있는 승무원, 쿠팡 등 택배 일을 알아보고 있는 직원, 아이들 학원을 하나 끊었다는 차장님, 대리운전 등 밤에 소일거리를 찾고 계시던 분, 지인 식당일을 돕고 있는 직원, 결혼 준비를 조금 미룬 총각, 대출 이자 및 각종 생활비 걱정을 토로하던 가장, 고정적으로 나가야는 병원비를 고민하던 한 아들, 이직을 위한 이력서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며 씁쓸한 농담을 전하던 분,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항공업계 일뿐인데 다른 업계로의 이직이 되겠냐며 고민하던 사람까지.

월급 한두 달 밀리고, 급여가 줄어드는 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편과 아내, 가장, 부모님을 보시고 사는 자녀, 아이들 병원을 보내고 대출을 갚아야 하는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큰 고통입니다. 더욱이 이 같은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도 싸우고 있습니다.

더욱 울분이 터지는 건 이 모든 위기가 항공업계와 여행업계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그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경제 불황으로 인한 여행객 감소, 한일 갈등으로 불거진 일본 불매 운동, 그리고 코로나19 등으로 자신이 잘못 한 건 없는데 외부 요인들로 인한 피해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답답할 뿐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며 성장했던 항공사들이지만, 이번 코로나19는 정말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인(人)들은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고객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간혹 항공업계의 어려움에 관한 기사를 쓰면 ‘엄살이다’ ‘너네만 힘드냐’ ‘좋을 땐 뭘 했냐’ 는 냉혹한 댓글이 달리곤 합니다. 한 항공사 직원이 “좋았을 땐 더 좋아지고 싶어서 채용과 투자를 늘리며 국민 수송을 위해 일했는데, 안 좋을 때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 된 일인가요?”라고 말하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항공업계가 믿고 있는 흐름이 있습니다. “좋은 시절이 있으면 나쁜 시절이 오고, 나쁜 시절이 가면 다시 좋은 시절이 온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진정세로 접어들면 다시 여행 수요는 폭발 할 겁니다. 항공사들은 좋은 날을 기다하며 열심히 버티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지지와 응원의 한 마디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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