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4세 ‘남장’소녀, 관동팔경 유람할 제…

강릉=이소연 기자

입력 2022-09-19 03:00:00 수정 2022-09-19 03: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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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일대 ‘관동풍류의 길’ 행사
14세에 관동팔경-금강산 여행… 조선 女시인 김금원의 길따라
강릉역 출발해 동해 풍경 보고 ‘선교장 달빛방문’ 연결 코스
“달빛 내려앉은 밤 느껴보세요”


조선시대 여성 시인 김금원으로 변장한 배우가 강원 강릉시 선교장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행을 다닐 수 없다니…. 저 원주 소녀 김금원,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이렇게 남장을 한 채 관동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나시겠습니까.”

16일 강원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바다열차 안. 한 유랑객이 푸른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열차에 올랐다. 강원 원주에서 나고 자란 조선시대 여성 시인 김금원(1817∼?)의 복장을 한 엄미정 해설사였다. 김금원은 ‘산천을 유람하는 여성은 곤장 100대에 처한다’는 경국대전에 따라 여성에게 여행을 금하던 시대에 살았다. 그는 14세에 남장을 하고 관동팔경(關東八景·강원을 중심으로 동해안에 있는 8개 명승지)과 금강산을 유람했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16∼18일 김금원으로 변장한 해설사와 강릉 일대를 여행하는 ‘관동풍류의 길’ 행사를 처음 열었다. 일일 프로그램으로, 사전신청을 받았다. 한 회차당 30명씩, 하루 세 차례 프로그램을 운영해 사흘간 총 270명이 참가했다. 참가비는 없고 바다열차는 문화재재단에서 제공했다. 강릉을 오가는 교통비와 식사비는 각자 부담했다.

강릉역에서 삼척해변역으로 이어지는 동해를 감상하는 ‘바다열차 관동풍류’와 효령대군 11세손 이내번(1703∼1781)이 터를 잡은 300년 고택 선교장을 야간 탐방하는 ‘선교장 달빛방문’까지 연결되는 코스다.

엄 해설사는 정동진, 묵호항을 지나 열차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고성 청간정과 삼일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양양 낙산사, 울진 망양정, 통천 총석정, 평해 월송정까지, 관동팔경으로 꼽히는 명승지에 동해는 없다. 하지만 바다야말로 관동팔경의 중요한 조연”이라고 강조했다.

김금원은 1851년 펴낸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에 동해를 본 감상을 이렇게 적었다. ‘바다는 끝없이 깊고 넓도다. 비로소 하늘과 땅 사이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나니 그 품 안에 모든 것 다 안았구나.’

강원 강릉시 선교장에서 16일 박광일 해설사가 선교장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오후 7시 반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선교장 달빛방문’ 프로그램에서는 박광일 해설사(51)가 선교장 곳곳에 담긴 얘기를 전하고, 김금원으로 변장한 배우가 관람객을 안내했다. 선교장 여정의 첫 길목, ‘달빛이 내리는 문’이란 뜻의 월하문(月下門) 앞에서 김금원으로 변장한 배우가 외쳤다. “이보시오. 내 관동팔경을 유람하러 강릉을 찾았소. 이 집이 손님을 대하기가 신선 같다고 하여 내 며칠 지내고자 하오.”

선교장은 유람하던 양반들에게 잠자리를 내어주던 아량 넓은 고택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 해설사는 선교장 초입에 있는 활래정(活來亭)을 가리키며 “관동팔경을 여행하는 손님들에게 내어주던 이곳 이름은 ‘늘 새 샘물이 솟아올라 맑은 연못’을 뜻한다. 선교장이 손님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가옥에서 펼쳐지는 대금산조와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니 ‘신선이 머무는 높고 그윽한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고택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시범사업으로 진행한 ‘관동풍류의 길’ 행사는 내년부터 운영기간과 참가 인원을 확대해 운영할 예정이다.

강릉=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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