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시름 내던지고 ‘계룡정토’ 들어가볼까

글·사진 대전 공주=김동욱기자

입력 2020-09-05 03:00 수정 2020-09-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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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코리아]충남 계룡산 일대 사찰
신원사, 고풍스러운 한옥느낌 물씬
갑사, 숲길-시원한 계곡 어우러져
동학사, 충신 기리는 사당 그대로


신원사 경내에 있는 중악단은 조선시대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단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중악단은 왕실의 손길이 닿아 조선 궁궐의 건축기법이 녹아들어 작은 궁궐 같은 느낌을 준다.
《계룡산은 신라시대부터 ‘영험한 산’으로 유명했다. 제단이 설치돼 신에게 제사를 지내 왔다.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조선 건국 때 계룡산 부근이 도읍지로 정해지기도 했다. 수많은 종교 시설이 계룡산 부근에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았다. 그 가운데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룡산 품속에 안겨 있는 사찰들이 있다. 개성 있는 색깔을 담은 사찰 세 곳과 주변의 알려지지 않은 명소들을 둘러봤다.》

○ 작은 궁궐을 품에 안은 신원사
신원사는 아담하게 꾸며 놓은 경내 분위기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스님의 불경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강아지가 눈길을 끈다.
계룡산 남쪽에 위치한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년)에 창건된 오래된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시원한 계곡이 나온다. 제법 숲이 우거져 여름이면 계곡을 찾는 이들이 많다. 신원사 마당에 들어서면 ‘커다란 정원 딸린 저택’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웅전 앞마당 가운데 자리한 5층 석탑과 양 옆의 석등, 초록색 잔디 사이로 동그랗게 다듬어진 돌들, 커다란 나무들이 더해져 아기자기한 정원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풍스러운 사찰 건물은 오래된 한옥 같은 느낌이 든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석탑과 대웅전 그리고 멀리 계룡산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와 심신이 편안해진다. 대웅전 왼쪽의 배롱나무는 수령이 600년이 넘은 사찰의 산증인이다.

신원사 경내에는 중악단(보물 제1293호)이 있다. 겉모습부터 보통의 사찰 건물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중악단은 조선시대 때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단이다. 태조 이성계가 세웠지만 이후 철폐됐고, 명성황후가 다시 재건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상악단, 하악단은 없어지고 현재는 중악단만 남았다.

중악단은 왕실의 손길이 닿은 만큼 조선 궁궐의 건축 기법이 녹아 있다. 추녀마루 위에 놓인 잡상(잡신을 물리치기 위해 지붕 위에 올린 장식)만 봐도 궁궐의 지붕이 떠오른다. 잡상은 궁궐이나 궁궐과 관련 있는 건축에만 허용됐던 장식이다.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담장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월이 많이 흘러 색이 바랜 단청과 중문에 그려진 신장상은 역사의 품격이 남아 있다. 신장상은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휴대전화 카메라로 확대해 보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규모는 작지만 궁궐의 많은 특징이 담겨 작은 궁궐 같다.

○ 울창한 숲길과 계곡을 품은 갑사
계룡산 서쪽의 갑사는 특이하게 두 글자 이름이다. 국내 전통사찰은 968곳(올해 1월 기준)으로 그중 두 글자 이름을 가진 사찰은 충남 서산의 죽사, 전북 진안의 답사, 경북 청도의 덕사 등 5곳이다. 으뜸을 뜻하는 ‘갑(甲)’을 쓴 것도 독특하다. 건물의 배치도 보통 사찰과 다르다.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 등 4개의 건물이 ‘ㅁ’자 구조로 둘러싸고 있다. 덕분에 마당에 서 있으면 아늑함이 느껴진다.

갑사는 걷기 좋은 숲길과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이 있다. 주차장에서 사천왕문까지 이르는 ‘갑사오리길’은 수령 100년이 넘은 거목들이 터널을 만들고 있다. 5리(약 2km) 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km 남짓 길이로 대부분 평지라서 걷기에 수월하다. 갑사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오른쪽으로 옛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굴뚝처럼 보이는 높이 15m의 철 당간(절 입구에 깃발을 매다는 장대)이 서 있다. 갑사의 원래 위치가 이곳임을 알 수 있는 표시다. 돌계단을 오르면 대적전과 승탑이 나타난다. 원래 대웅전이 대적전 자리에 있었지만 불타 없어졌다. 그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물줄기 소리가 들려온다. 차가운 바람까지 더해져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갑사계곡은 계곡 풍광이 아름다워 갑사구곡으로도 불렸다.

갑사 강당 오른쪽에 벽돌로 만든 아치형 문은 기와가 얹혀 있지 않았다면 유럽의 한 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이채롭다.
갑사 강당 오른쪽에 벽돌로 만든 조그마한 아치형 문이 있다. 기와가 얹혀 있지 않았다면 유럽의 한 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사찰의 이미지와는 달라 이채롭다.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려 사진 찍기에도 좋다.

갑사는 백제 구미신왕 원년(420년)에 창건됐다. 천년 넘게 이어져오다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탔다. 그 후 조선시대에 하나둘 새로 건물들이 세워졌다고 한다. 갑사는 이름에서부터 ‘ㅁ’자 구조, 강당 승탑 당간의 위치 등 보통의 사찰과는 다르다. 뭔가 정리되지 않고 어색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천년고찰 갑사가 만들어온 흔적이라 할 수 있다.

○ 충신들의 사당을 모신 동학사
계룡산 동쪽에는 비구니 사찰인 동학사가 있다. 주차장에서 동학사까지는 약 1.5km의 숲길이 이어진다. 포장된 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져 걸어가기에도 무리가 없다. 길 중간에는 약 400m 길이의 동학계곡 옛길도 보존돼 있다. 동학사는 예전부터 주변 계곡과 숲이 유명해 인근의 대전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나들이객이 많이 찾는다. 주차장과 동학사 입구에는 많은 식당과 상점도 생겼다.

계룡산 동쪽에 위치한 비구니 사찰인 동학사에는 독특하게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동학사까지 이어지는 1.5km의 숲길은 산책하기 좋다.
동학사는 724년 신라 성덕왕 때 지어졌다.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해서 동학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6·25전쟁 때 모두 불탔으나 1960년대 중건됐다. 동학사는 특이하게 역사적 인물들을 기리는 세 개의 사당을 품고 있다. 사찰 한가운데에 숙모전, 삼은전, 동계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려 충신 정몽주,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사육신 등을 기리고 있다. 지금도 매년 수많은 유생과 후손들이 참여하는 제사가 진행된다. 동학사가 사찰이기 이전에 제를 지내던 사당으로서의 역할이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동학사 옆을 흐르는 총 3.6km 길이의 동학계곡은 동학사 등산로를 따라 흐르고 있다. 등산객들에게는 걷는 내내 시원한 물소리를 들려준다. 동학계곡의 정점인 은선폭포는 계룡산에서 가장 큰 폭포로 동학사에서 1k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계룡산 사찰 3곳은 모두 등산로로 연결돼 있다. 동학사∼갑사, 갑사∼신원사, 신원사∼동학사 모두 약 4∼5km 길이로 3∼4시간 코스다. 어디로 가더라도 연천봉 고개(해발 738m)를 넘어야 해 쉬운 길은 아니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사찰 간 이동에 30분 정도 걸린다. 계룡산 북쪽에는 구룡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 볼거리 넘치는 계룡산 주변
보훈둘레길은 국립대전현충원을 둘러싼 산책로다. 총길이 8.2km로 숲길과 흙길을 3시간 남짓 걸을 수 있다. 30여 년 수령의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 사이로 현충원에 잠든 영령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가게 된다. 계룡산 수통골은 대전 도심과 가까운 계곡이다. 입구부터 수통폭포까지 약 20분 거리로 가볍게 산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탐방 코스가 마련돼 있어 일정과 체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계룡산국립공원의 수통골은 계곡을 따라 탐방로가 이어져 수통폭포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닿는다.
대청호 보조댐 옆의 로하스가족공원 워터캠핑장은 금강과 대청호의 수려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휴식처다. 일반, 카라반, 글램핑 등 50면의 캠핑사이트와 샤워장, 피크닉 테이블 등의 편의시설과 생태학습쉼터, 전망대, 강변산책로 등을 갖췄다. 강변산책로에는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사진 명소가 많다. 송현철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장은 “대전과 계룡산에는 계곡, 휴양림, 캠핑장 등 멋스러운 거리 두기 여행지가 많다”고 소개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계룡산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대전 공주=김동욱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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