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 맛보며 최재형 선생의 기개를…크루즈 여행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입력 2019-12-03 13:31 수정 2019-12-0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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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관광 크루즈 여행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타이타닉의 표를 구한 건 제 생애 최고의 행운이에요.”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이 선상에서 운명의 연인 로즈에게 사랑을 담아 건네는 대사다. 손을 꼭 잡고 ‘세레나호’의 곳곳을 누비는 어느 노부부의 모습과 닮았다.

롯데관광개발은 타이타닉호보다 두 배 이상 묵직한 이탈리아 세레나호(11만4000t)를 빌려 1년에 단 두 번 탑승객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선 중 가장 큰 규모다. 가로 길이가 63빌딩을 눕혀 놓은 길이보다 40m나 길다. 다수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만큼 선사 측은 여행 내내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다. 여행 중 선내 안전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벌금까지 부과한다. 승객을 위해 생략할 수 없는 절차다.

“차오!” 크루즈에 오르면 밝은 표정의 선원들이 이탈리아어로 인사한다. 세레나호의 전속 공연단은 이탈리아의 풍미가 느껴지는 오페라·단막극 등 각종 공연을 선사한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한 와인과 커피는 승객의 미각까지 자극한다. 크루즈 기항지 외에 ‘이탈리아의 맛(Sapori d’Italia)’까지 경험할 수 있는 것.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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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내 애니메이터들은 승객 참여형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댄스 강습·노래 경연대회·카니발 코스튬 만들기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승객의 즐거움을 위해 세레나호에 오른 선원 수만 약 1100명. 승객 수(약 2800명)로 계산하면 선원 1명이 승객 약 2.5명의 서비스를 책임지는 셈이다. 관리하는 승객이 적을수록 만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선내 곳곳에선 클래식·대중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흐른다. 승객들은 시름을 놓고 음악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그렇다고 선내 분위기가 마냥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크루즈를 타는 신사·숙녀답게 디너쇼 자리에서는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 한다. 품격을 높이는 드레스를 차려입고 선장이 직접 주최하는 칵테일 파티에 참석해 선상 임원진들과 춤을 추는 로맨틱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추억은 사진으로 남는다. 세레나호의 모든 곳이 사진 명소다. 특히 선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일몰은 가히 장관이다. 크루즈를 따라오는 돌고래 떼를 만나기도 한다. 푹신한 흰색 침대에 누워 여유롭게 일출을 바라보는 느낌은 직접 체험해봐야 안다.

승객들이 입을 모아 극찬한 건 음식이다. 마사지·카지노 등 즐길 거리가 아무리 많아도 음식이 맞지 않으면 여행의 즐거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레나호엔 한국인 요리사가 탑승해 승객의 입맛을 특별 관리한다. 승객들은 한식·양식 등 원하는 음식을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부산 남구에서 교편을 잡았던 탑승객 최모 씨(66·남)는 “숙모의 팔순을 기념해 가족 8명이 여행을 왔다. 몸이 아파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숙모를 위해 크루즈 여행을 선택했다. 갑갑할 줄 알았는데 공간도 넓고 편의시설도 많아 만족한다. 특히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제공해 기호에 맞게 음식을 선택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어렵다. 여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크루즈 여행의 매력은 숙소를 바꾸지 않고 여러 국가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레나호의 승객들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맛보며 여유롭게 러시아·일본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대표 기항지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겨울에도 바닷길이 열린 곳이다. 최근 종영한 tvN 예능 ‘시베리아 선발대’ 이선균·김남길 등이 이곳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독립운동의 본산지다. 곳곳에 우리 민족의 흔적이 남아있다. 북쪽으로 112km 떨어진 곳엔 ‘고려인의 도시’라고 불리는 우수리스크가 있다. 안중근 의사를 도운 최재형 선생(1860~1920)이 이곳에서 눈을 감았다.

선생은 노비 출신이라는 개인적인 한계를 딛고 연해주에서 부를 축적해 독립군 자금의 대부분을 지원했다.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작가는 고려인과 우수리스크의 의미를 짚으며 “다른 독립운동가에 비해 최재형 선생의 공적(功績)이 너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상설 선생(1870~1917)도 우수리스크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이준·이위종 선생을 대동해 ‘헤이그 만국평화화의’에서 독립을 외쳤다. 항일단체 성명회·권업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동해로 이어지는 우수리스크 수이푼강 근처에는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광복을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선생은 “동지들을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고국에 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원고는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저 바다에 날린 후에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 역사의 현장에서 흐르는 강물 소리가 선생의 유언으로 들려 서글프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또 다른 기항지인 일본 사카이미나토는 국내 여행객들에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다. 공항과도 멀어 배편이 아니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갈 수 있다. 관광객이 적어 국내 연예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사카이미나토 아다치 미술관은 일본 정원 평가에서 수년간 1위 자리를 지킨 곳이다. 사계절의 정원 풍경과 명화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펼쳐지는 한아한 풍정은 지친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서일본 최대 꽃 공원인 하나카이로의 면적은 약 50ha으로, 도쿄돔의 약 11배에 이른다. 만개한 셀비어 언덕이 시선을 압도한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롯데관광은 봄·여름, 1년에 두 번 크루즈 상품을 선보인다. 2010년 시작해 전세선 운영만 벌써 10년째다. 안민호 롯데관광개발 크루즈사업본부 본부장은 “크루즈 사업은 위험이 큰 사업”이라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화한 여행 상품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레나호는 2020년에도 운항한다. 1항차는 내년 5월 8·9일 부산·속초에서 각각 출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가나자와·사카이미나토를 6박7일, 5박6일 일정으로 항해한다. 1항차 크루즈는 198만 원부터 이용할 수 있다. 2항차는 5월 14일에 출발해 속초·부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사카이미나토를 4박5일 일정으로 여행한다. 2항차 크루즈는 178만 원부터 이용 가능하다.

김진석 롯데관광개발 홍보마케팅 팀장은 “여행 중에 노부부의 사진을 찍어드린 적이 있다. 남편인 할아버지께서 치매로 투병 중이신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여행하고 계신 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탑승객”이라며 크루즈에서 특별한 추억을 남겨볼 것을 추천했다. 자세한 문의는 롯데관광 홈페이지 또는 크루즈팀으로 하면 된다.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사카이미나토=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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