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점 경고에도 뛰는 집값에 놀란 정부, 알맹이 없는 담화문만 재탕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7-28 11:15 수정 2021-07-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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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늘(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홍 부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부동산시장 안정은 정부 혼자 해낼 수 없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다”며 이같이 당부했다.


이날 브리핑에는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김창룡 경찰청장 등도 참석했다.


홍 부총리의 발언에 이어 노 장관은 차질 없는 공급 확대 정책 추진을 위해 오늘부터 시작되는 3기 신도시 일부 지역에 대한 사전청약을 공공택지 민영주택과 ‘2·4대책’을 통해 추진할 도심 공급 물량에도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은 실수요와 무관한 부동산 관련 대출에 대해 더욱 촘촘하게 점검·감독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김 청장도 3월부터 운영 중인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의 부동산 투기사범 단속 결과를 공개한 뒤 하반기에는 부동산 투기 비리 이외에도 부정청약, 기획부동산 투기 등에 대한 집중적으로 단속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날 담화문 내용과 각 정부부처가 내놓은 대책들은 이미 알려진 것으로, 재탕 삼탕된 내용들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최근 집값 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지고 있는데 따른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사실만 다시 각인시킨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부의 각종 규제가 집값과 전세금 상승의 원인인 만큼 시장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새로운 내용 없는 담화문



홍 부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가 그간 ‘주택공급 확대와 실수요자 보호, 투기근절’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가격 오름세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면서도 공급 부족이 원인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과거 10년 평균 입주 물량이 전국 46만9000채, 서울 7만3000채인데, 올해의 경우 전국 46만 채, 서울 8만3000채로 평년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어 2023년부터는 지금까지의 공공택지 지정 실적 등을 감안할 때 매년 50만 채 이상 공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수요측면에서도 지난해 33만 세대가 증가했던 수도권 세대수가 올 1~5월에 7만 세대 증가에 머물렀다며 수급 불안이 집값 상승을 가져온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홍 부총리는 대신 원인으로 막연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와 ‘실거래가 띄우기’와 같은 불법·편법거래 및 시장교란행위를 꼽은 뒤 “기대심리와 투기수요가 가격상승을 견인하는 상황에서는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진 사례와 국제결제은행,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연구보고서와 설문조사 결과 등을 앞세워 “지금은 불안감에 의한 추격매수보다는 전문가 의견 등에 귀 기울이며 진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홍 부총리가 26차례나 진행됐던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 때마다 반복했던 레퍼토리였다. 시장에서는 이를 ‘공포마케팅’으로 부를 정도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에도 집값 상승세는 계속됐다.



● 국토부, 사전청약대상 확대 추진




홍 부총리의 발언에 이어 등장한 정부 부처 수장들도 다양한 대응 방안을 내놨지만 대부분 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충분한 공급신호’에 초점을 맞춰, 다음달까지 과천청사 대체지와 노원구 태릉CC의 주택공급 계획을 확정하고 13만 채에 달하는 신규택지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청약 시점을 1~2년 앞당기는 사전청약은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공공택지 민영아파트와 2·4대책에 따른 도심 공급 물량에도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노 장관은 “계획대로 된다면 앞으로 10년간 전국 56만 채, 수도권 31만 채, 서울 10만 채의 주택이 매년 공급되며, 특히 수도권 31만 채는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총 건설물량 29만 채를 넘어서게 된다”며 “수도권에 1기 신도시 10곳 이상이 새로 건설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노 장관은 발언에서 새로운 내용은 사전청약 대상 확대 추진 정도다. 하지만 이 역시도 주민동의 등 거쳐야하는 사전 절차가 많고, 일부 사업지는 주민반대로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사전청약에 나서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고,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라는 뜻이다.


● 금융위, 부동산 관련 대출 감독 강화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부채는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려 활용해야 한다”며 실수요와 무관한 부동산 관련 대출은 더욱 촘촘하게 점검·감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은 위원장은 이를 위해 “7월1일부터 확대 시행 중인 차주 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현장에서 차질 없이 안착되도록 면밀히 점검하겠다”며 “이를 계기로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려주는 대출 관행이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늘어나고 있는 제2금융권 가계대출도 철저히 관리하고 규제차익으로 인한 시장 왜곡이 없게 시장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은 위원장은 “우리 경제의 건전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다소간의 비판과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가계부채 증가율이 올해 목표로 삼은 5~6% 수준에서 억제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경찰청, 아파트 부청청약 집중 단속

김창룡 경찰청장은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대상을 부동산 투기비리뿐만 아니라 부동산 부정청약 등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에 따라 주택 공급 특수를 노린 청약 브로커들의 청약통장 매매, 위장전입, 청약자 조작 등 ‘아파트 부정청약’이 주요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경찰청은 수도권 공공주택 분양 예정지역을 관할하는 수도권 4개 시도청과 29개 경찰서에 ‘집중수사팀’을 편성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또 주택 공급 예정지 일대 기획부동산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기로 했다. 기획부동산 등 전문 투기세력을 ‘범죄단체조직’에 준해 엄벌하고, 투기수익은 몰수·추징보전 하는 등 적극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김 청장은 “기획부동산 투기 법인들은 헐값에 매입한 맹지, 농지, 개발제한구역 토지 등을 비싸게 판매해 막대한 전매차익을 얻고 있다”며 단속에 나서는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경찰청은 올해 3월 10일부터 운영 중인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를 통해 현재까지 부동산 투기사범 3800명 이상을 단속했고, 투기비리 공직자 등 40명을 구속했다. 몰수·추징보전을 통해 환수한 투기수익은 793억 원에 달한다.


● 규제가 집값 상승 불러왔다



정부가 이처럼 새로운 내용이 없는 관계기관 합동 담화문을 내놓을 정도로 부동산시장의 상황은 심상찮다.


무엇보다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KB부동산 월간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중위 아파트 가격이 4억 원을 돌파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5억 원을 넘었다. 서울은 소형(전용면적 60㎡ 이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 원을 뚫었다.


무주택 서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전세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금은 6억3483만 원으로, 1년 전(4억9922만 원)보다 1억3562만 원 올랐다. 이는 직전 1년(2019년 7월¤2020년 7월) 동안 상승액 3568만 원(4억6354만 원→4억9922만 원)과 비교하면 3.8배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의 출발점이 정부의 과도한 규제 정책에 있다고 지적한다. 폭등세를 보이고 있는 전세금이 대표적이다.


서울 전세금의 폭등에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임대차 3법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혼부부·사회초년생 등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전세 계약을 갱신한 경우에도 2년 뒤 전세금 폭등이 불가피해졌다. 무주택자의 시름이 그만큼 깊어진 셈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등은 한국경제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한국경제리뷰’ 영문판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 ‘한국 주택정책의 장기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현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폭등의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논문에서 두 교수는 현 정부의 수요 억제 정책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장기적으로는 신규 주택 공급을 3%가까이 줄이는 효과를 냈다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정부가 이제라도 부동산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 완화에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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