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세입자 보호’ 열쇠는 공급확대… 양질 임대주택 뒷받침돼야

김호경 기자 , 정순구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

입력 2020-08-04 03:00 수정 2020-08-04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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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뀌는 전월세살이] <下> ‘규제의 역설’ 피하려면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을 규정한 임대차 2법 시행으로 기존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새로 전월세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빨라져 주거비 부담도 늘어난다는 전망도 나온다.

자칫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와 정반대로 아직 집을 안 구한 청년층, 목돈을 마련한 기간이 짧은 신혼부부에게 전월세 시장 진입 문턱을 높이는 규제의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 등 수요가 높은 지역의 경우 민간에서 전세 매물이 급감하는 가운데 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원룸에서 사는 프리랜서 양모 씨(34·여)는 임대차 2법 시행이 달갑지 않다. 수입이 들쭉날쭉해 전세를 선호하는 양 씨는 지난해 11월 보증금 1억 원에 겨우 맞춰 현재 원룸을 구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 올해 11월 계약 만료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지만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월세 시세까지 올랐다. 그는 “목돈을 마련하려면 어떻게든 월세만은 피해야 하는데, 지금 예산으로는 현재 거주하는 집보다 더 좋은 집을 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괜한 우려가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세입자 보호제도를 도입한 해외 선진국에서는 실제 이런 문제를 겪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곳도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세입자 보호가 강해 한때 ‘세입자의 천국’으로도 불렸다. 세입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월세만 제때 내면 평생 살 수도 있다. 2015년부터 집주인은 임대료를 종전 계약의 10% 초과해 올리지 못한다. 독일 세입자의 평균 거주기간은 12.8년으로 한국(3.4년)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절반만 맞는 얘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올해 3월 펴낸 ‘동향브리핑’에 따르면 2008∼2017년 독일 베를린 임대료 상승률은 소득 상승률의 5배에 달했다. 베를린 저소득층은 평균 소득의 47.3%를 임대료로 지출했다. 강력한 세입자 보호정책에도 베를린의 임대료 급등을 막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구 유입이 늘며 임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저금리로 베를린 부동산으로 자금이 대거 유입된 가운데 민간 기업과 집주인들은 리모델링한 주택이나 신규 세입자를 받을 때 임대료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빈틈’을 노리고 임대료를 계속 올렸다. 올해 2월부터 베를린에서 임대료 5년간 동결이라는 더 센 규제가 추가된 이유다.

미국 뉴욕시는 독일과는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현재 뉴욕주는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막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고 있다. 과거엔 임대료 규제가 더 강했다. 집주인에게 난방비, 건물 관리비 등을 임대료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자 집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하자를 방치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임대주택 공급도 줄었다. 뉴욕시에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간 주택 공급량이 수만 채 수준이었는데 임대료 규제가 강화되자 1만 채 안팎으로 떨어졌다. 규제가 완화한 1990년대부터 주택 공급이 증가했다.

뉴욕만큼이나 임대료가 비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1994년 임대료 상한제가 도입됐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임대주택 물량은 규제 전보다 15% 감소했다. 임대료 인상에 제동이 걸린 집주인들이 주택을 처분하거나 주택 이외 용도로 개발한 탓이다. 도심에 살던 저소득층은 외곽으로 밀려났고 그 자리는 고소득층이 채웠다. 연구진은 관련 논문에서 “임대료 규제가 정책 목표와 반대로 샌프란시스코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선 양질의 임대주택 부족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더 크다. 독일 베를린의 임대료 동결은 2014년 이후에 지어진 주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오리건, 캘리포니아주 역시 15년 이상 된 주택에만 임대료를 규제한다. 민간에서 양질의 신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한 취지다.

반면 한국에선 모든 주택에 대해 임대료 규제가 전면 시행됐다. 게다가 서울의 내년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5021채로 지난해(4만7025채)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가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를 강화하면서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행대로면 4년 뒤 민간 임대물량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임대료가 급등할 수 있다”며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되 양적 확대보다는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공공임대주택은 민간주택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과 입지의 한계 등으로 시장에서 외면받기 일쑤였다. 당첨 포기 사례가 속출했던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이 대표적이다. 당초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역세권에 시세 95% 이내로 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민간 업체들이 각종 옵션비를 추가하면서 임대료가 시세보다 비싸진 탓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공임대주택은 수요자가 선호하는 입지에 양질의 주택으로 공급돼야 한다”며 “새로 지으면 예산과 입지의 한계가 명확한 만큼 원도심의 다세대주택, 상가 등 유휴시설을 양질의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정순구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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