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석의 실전투자]기존 계약 파기 부추긴 이중매매는 무효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입력 2021-04-16 03:00 수정 2021-04-16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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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중견기업에 다니는 H 씨 부부는 맞벌이다. 퇴직 후 남편과 함께 귀농할 계획이다. 주말이면 서울과 경기로 땅을 보러 다닌다. 그러던 중 마음에 쏙 드는 땅을 소개받았다. 주변에 전원주택 4채가 이미 들어서 있었다. 서둘러 땅 주인과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지급했다. 그런데 주변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면서 땅값이 크게 뛰었다. 그러자 H 씨로부터 중도금까지 받은 땅 주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다른 사람에게 더 비싼 가격에 땅을 판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미 소유권까지 넘긴 상태였다.

이는 명백한 이중매매에 해당한다. 이중매매란 같은 부동산을 두 명 이상의 사람에게 매매하는 것을 뜻한다. 계약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이중매매 자체는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하지만 소유권을 이전하는 단계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부동산 소유권은 매매 계약만으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소유권은 등기를 해야만 효력이 생긴다. 따라서 H 씨 사례처럼 나중에 계약을 맺은 매수인이 먼저 등기를 하면 그 사람이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 경우 먼저 계약을 체결한 매수인은 등기를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로 인한 피해를 법적으로 구제받으려면 두 번째 매수인이 이중매매에 ‘적극’ 가담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현행 민법은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를 위반한 내용을 담은 ‘반사회적 질서의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중매매가 반사회적 질서의 법률행위에 해당하려면 두 번째 매수인이 매도인이 이미 다른 사람과 매매 계약을 맺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매도인에게 기존 계약을 깨고 자신에게 팔라고 요청하거나 부추겨야만 적극 가담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런 요건이 충족되면 두 번째 매수인과의 계약은 반사회적 질서의 법률행위로 무효가 된다. 이때 첫 번째 매수인은 두 번째 매수인에게 직접 소유권이전 등기 말소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채무자인 매도인을 대신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이중매매 성립 여부는 기존 계약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계약금만 지급했다면 이중매매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매도인이 계약금을 두 배로 물어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기존 계약을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매수인이 중도금까지 지급했다면 이중매매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한 뒤 스스로 계약을 취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이상 매도인은 첫 번째 매수인에게 소유권을 넘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도인이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이중매매를 했다면 배임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첫 번째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손해배상액은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된 당시 시세를 기준으로 매기는 게 원칙이다. 이뿐만 아니라 매도인은 배임죄로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이중매매가 반사회적 질서의 법률행위에 해당한다면 이중매매는 ‘절대적 무효’가 된다. 이중매매는 물론 그 후속 계약까지 모두 무효가 된다는 뜻이다. 두 번째 매수인이 이중매매로 취득한 부동산을 사들인 제3자 역시 소유권이 유효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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