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막겠다는 임대보증보험… 제출서류만 최소 10개

김호경 기자

입력 2021-02-25 03:00 수정 2021-02-25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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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등록 사업자 가입 의무화
‘공시가격 출력물’ 등 생소한 서류… 공무원 출신 60대 “나도 처음 봐”
취급기관 2곳… 방문 가입만 가능
“150번 넘게 전화해도 연결 안돼”




직장인 이모 씨(47)는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하려고 두 달 넘게 애쓰고 있다. 지난해 12월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부모님을 대신해 이 보험을 대신 가입하려 했지만 제출 서류가 워낙 많았다. 보험 가입처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150번 넘게 전화했지만 매번 연결이 안 됐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를 준비해서 휴가까지 내고 HUG 지사를 찾았다. 하지만 HUG 측은 추가 서류를 요구했다. 그는 “가입 절차가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고 말했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깡통전세’ 피해를 막겠다며 정부가 임대사업자에게 임대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가입 자체가 어렵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가입 업무를 뒷받침할 행정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은 채 가입을 의무화해 사업자들만 애꿎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대보증보험은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월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보험사가 대신 돌려주는 상품. 지난해 8월 시행된 ‘민간임대주택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8월 18일 이후 신규 등록한 임대사업자는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마다 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올해 8월 18일부터는 기존 임대사업자도 모두 가입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고 2000만 원의 벌금 또는 최장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정도로 처벌 수위가 높지만, 서류 준비부터 난관이다. 필수 제출 서류만 ‘공시가격 출력물’, ‘보증채무약정서’, ‘양도각서’ 등 최소 10가지다. 임대사업을 하는 건설사 등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대상으로 설계된 보험 가입 규정을 개인 사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한 탓이다.

노후 대비를 위해 임대사업자 등록을 한 지모 씨(61)는 지난해 서류 미비로 HUG 지사를 네 번이나 방문한 끝에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는 “공무원 출신인 나도 생소한 서류였다. 동네에 연로한 임대사업자들은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혼란은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류를 다 갖춰도 가입까지 어려움이 많다. 온라인 신청은 불가능하고 직접 방문해야 한다. 임대보증보험 취급 기관은 HUG와 SGI서울보증 2곳으로 보증료가 저렴한 HUG로 가입 신청이 몰린다. HUG 지점은 전국에 단 15곳뿐이라 일부 지역에선 신청부터 가입까지 2개월 이상 걸린다. 은퇴한 생계형 임대사업자들은 “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HUG 내부에서조차 “가입 업무 처리가 벅차다”는 불만이 나온다.

여기에 은행 대출금과 전·월세 보증금이 집값의 일정 비율을 넘으면 가입하고 싶어도 아예 가입할 수 없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대출금을 상환하거나 보증금을 낮추면 되지만 그럴 여윳돈이 없는 임대사업자는 꼼짝없이 처벌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당장은 어렵지만 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인력을 충원해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며 “가입이 불가능한 임대사업자들은 예외적으로 가입을 허용하거나 임대사업자 등록 말소 기회를 주는 등의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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