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님들, 전세살이가 뭔지 정말 아십니까?[데이터 비키니]

황규인 기자

입력 2020-11-21 11:12 수정 2020-11-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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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부동산중개업소 창문에 붙은 ‘정부 정책 OUT(아웃)’ 포스터. 동아일보DB




우선 나는 경기도에 집이 있고 와이프 직장 + 아기 어린이집 때문에 서울 잠실에 전세 살고 있음


이번 부동산 정책으로 전셋값 폭등 후, 우리 집 현황

1. 우리 집주인의 집주인의 집주인이 부동산 정책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식 보고 집에 들어가서 살라 함

2. 우리 집주인의 집주인이 쫓겨나서 본인 집으로 이사하기로 함

3. 우리 집주인이 쫓겨나서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고 나보고 나가라 함

4. 내가 갈 곳이 없어져 우리 세입자보고 나가라 함

5. 우리 세입자 본인 세입자보고 나가라 함

6. 우리 세입자의 세입자가 쫓겨나서 새로운 전세를 구하는데 전셋값 폭등으로 인해 갈 곳이 없어져 멘붕(멘탈 붕괴) 옴

안 해도 되는 이사 6건 증가로 이사업체만 이득. 이것이 진정한 창조경제 한국형 뉴딜

연일 전셋값 폭등 소식이 들려오던 지난달 10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이 글 내용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베스트 댓글’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분이 적지 않으실 겁니다.

“어떻게 보면 거주와 소유가 수요에 맞게 균형을 잡고 있던 게 제대로 깨져버렸네…”

실제 통계를 봐도 이 글이 내용이 아주 허튼소리는 아닙니다.

국토교통부에서 올해 6월 펴낸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전셋집에 사는 일곱 집 가운데 한 집(14%)은 ‘부동산 소유자로서 받는 임대 보증금’이 있습니다. 자기 집이 있는 데도 전셋집에 살고 있는 것. 자가에 살면서 임대 보증금을 받는 가구 비율은 15.3%였습니다.


자기 집이 있는데도 왜 전셋집에 살까요? 짐작건대 다른 집이 전세를 사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국토부 조사에서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한 이유를 두 개 골라달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한 건 ‘직주근접(직장, 학교 등) 직장변동(취업·전근 등) 때문에(39.0%)’였습니다. 맨 처음에 인용한 글에서 ‘와이프 직장 + 아기 어린이집 때문에’라고 밝힌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 결과를 자세히 보시면 ‘집값 또는 집세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전세를 산다는 답변이 14.7%로 전셋집에 살면서 부동산 소유자로서 받는 임대 보증금이 있는 비율(14%)과 엇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까지만 해도 ‘거주와 소유가 수요에 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서울 아파트도 그랬습니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2017년 7월 가격을 100이라고 할 때 이후 3년간 매매가가 126까지 오르는 동안 전세가는 105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흔히 ‘임대차3법’이라고 부르는 주택임차보호법 및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보신 것처럼 서울 아파트 전세 지수는 2017년 7월 이후 3년 동안 100에서 5가 올랐는데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사이에 다시 5가 올라 110이 됐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임차 가구가 월세보다 부담이 적은 전세를 찾게 되고 주거 상향 수요도 증가하면서 전세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인식은 ‘전세-월세’만 한 묶음일 뿐 아니라 ‘자가-전세’도 같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토부에서 이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결과를 보면, 적어도 서울 지역에서는, 자가-전세 역시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른 데다 대출까지 막고 있기 때문에 전세 → 자가 이동이 벽을 만난 겁니다. 여기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면서 전셋값까지 상승하고 말았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발목을 잡아 전세가 오르는 이유에 대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전 국회입법조사처)은 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에 따른 전세가격 상승은 가격상승에 의한 임차인 교체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세는 100% 실수요이기 때문에 투기적 수요는 없다. 그곳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전세를 찾게 된다. 수요가 증가하면 전세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이 상승분을 보유 현금이나 대출 등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계속 거주를 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만큼의 전세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승한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입하여 거주하면서 가격은 균형점을 찾게 된다.

갱신청구권 도입에 따라 전세수요증가에 따른 가격상승이 일어나더라도 전세공급증가(기존 임차인의 이주)는 나타나지 않고, 반대로 공급이 대폭 감소하게 된다. 대폭 축소된 공급은 가격상승을 의미하고, 이를 부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새로 진입하게 된다. 물량이 대폭 감소한 만큼 이 과정에서 큰 폭의 전세가격 상승이 나타난다. 거래량은 줄어들지만 가격은 상승하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지역에서부터 중저가 지역까지 연쇄적으로 가격상승이 나타난다.
그러니 적어도 대출이라도 풀어줘야 했지만, 그래서 전세 → 자가 이동 경로를 열어줘야 했지만, 정부는 ‘영끌 금지령’을 내리면서 반대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한때 ‘법무부동산 장관’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금융의 부동산 지배를 막아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으니 이런 방향이 아주 예측 불가능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 스포츠’에 가까웠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하기’를 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OECD 회원국 국민 가운데 부동산 담보 대출 없이 집을 소유하고 있는 비율은 평균 63.1%입니다. 한국은 76.1%로 OECD 평균보다 13%포인트 높습니다. 한국은 다른 OECD 회원국보다 금융이 부동산을 ‘덜’ 지배하고 있는 나라인 겁니다.


그리고 이 그래프에 있는 나라 이름을 천천히 뜯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평가하는 나라는 한국보다 그래프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프 아래쪽에 있다는 건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비율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선진국에서도 자기 능력에 맞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게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전세’라는 한 단계가 더 들어갑니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이내에 자가로 이사한 가구 가운데 41.8%가 바로 직전에 전세에 살았습니다. (다주택자가 소유한 집에서) 전세를 살면서 목돈을 마련하고 그 돈에 은행 대출을 보태서 집 ≒아파트를 사고 그 빚을 열심히 갚아서 진짜 자기 집을 갖게 되는 게 원래 보통 사람들 ‘꿈’이었던 겁니다.

진선미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동아일보DB


이런 와중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이신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께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소유의 형태가 아니라 임대의 형태에서도 (주거의 질이)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참을 수 있겠습니까?

동아일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진 의원께서는 지역구(서울 강동갑)에 있는 아파트에서 보증금 1억5000만 원에 월세를 추가 부담하는 반(半)전세로 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역시 직주근접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번 ‘데이터 비키니’가 계속 인용하고 있는 2019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주근접은 전세뿐 아니라 반전세(39.8%)나 월세(45.5%) 가구 모두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에 사는 가구는 직주근접이 4위(24.5%)로 내려갑니다. 대신 ‘시설이나 설비가 더 양호한 집으로 이사가려고’(48.3%)가 1위로 올라서고, ‘이미 분양받은 주택(내 집)으로 이사 또는 내 집(자가주택) 마련을 위해’(45.4%)가 2위에 등장합니다.



이렇게 직장이나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져도 보통 사람들이 간절히 꿈꾸는 대상이 바로 ‘내 집’, ‘우리 집’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멀쩡한 자기 집 대신 ‘남의 집’에 살기도 했던 겁니다.

나라님들, 여러분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으셨다는 ‘선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이 ‘거주와 소유가 수요에 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던 그 시절’을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도록 제발 눈을 뜨고, 귀를 열어주시기를, 국민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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