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도 힘든데”…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생계형 임대인 부담

김호경 기자 , 이새샘 기자, 정순구 기자

입력 2020-09-27 22:31 수정 2020-09-2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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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재개발로 서울 한 아파트단지 상가를 분양받은 A 씨(76)는 현재 임대료가 주 수입원이다. 월세 200만 원 중 대출 원리금과 관리비를 빼고 남은 40만 원에 자녀 용돈을 보태 생활한다. 그는 “은행 이자를 안 깎아주는데 법 개정으로 상가 임대료를 깎아주고 연체까지 허용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다”며 씁쓸해했다.

이달 25일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두고 생계형 임대인들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임차인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부담을 임대인에게 떠넘기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3년 전 대출 8억 원을 끼고 서울 서대문구 4층짜리 상가주택을 매입한 B 씨도 건강 문제로 일 하기 어려워 임대료로 생계를 꾸린다. 그는 “대출금과 세금 등을 제외하면 수익은 400만 원 남짓”이라며 “건물주라고 다 넉넉한 건 아닌데 이런 사정까지 고려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법 개정으로 임차인에 대한 보호 장치가 강화된 건 분명하지만 임차인들도 “혜택을 체감하기 쉽지 않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보인다. 개정법은 시행일부터 6개월간 임대료가 밀려도 계약 해지, 계약 갱신 거절, 권리금 회수 기회 상실의 사유로 보지 않기로 했다. 다음 달 법이 시행되면 임차인은 내년 3월까지 월세를 못 내도 쫓겨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밀린 임대료에 지연 이자까지 줘야 한다. 장사할 ‘시간’은 벌어도 어차피 갚아야 할 ‘빚’인 셈이다.

영업금지로 지난달에만 1700만 원의 손실을 본 탓에 2개월 치 월세를 연체한 PC방 점주 C 씨는 “연체 허용 기간이 늘어도 어차피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를 차감하지 않느냐”며 “남은 보증금이라도 건지려고 폐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존에 두루뭉술했던 ‘차임감액 청구’ 사유에 코로나19와 같은 ‘제1급 감염병에 의한 경제사정의 변동’을 명시한 것을 두고도 비슷한 지적이다. 임차인이 차임감액을 청구해도 임대인이 거부하면 분쟁 조정이나 소송까지 감수해야 한다. 상가에서도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이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소송까지 갈 경우 임차인은 소송비뿐 아니라 소송에 따른 영업 차질까지 각오해야 한다.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D 씨는 “임대료 인하를 요구했다가 괘씸죄로 찍히면 나중에 쫓겨날 수 있지 않냐”며 “허울만 좋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최재석 서울시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변호사)은 “상가 분쟁은 주택보다 갈등이 첨예해 조정에 실패하고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법 개정 취지를 잘 살리려면 임대인에게 전가되는 손해를 세금 감면 등으로 보전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총연합회 사무총장도 “건물주의 선의에만 기댈 게 아니라 대출이자 지원 등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이새샘 기자iamsam@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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