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스트레스 풀어줄 수도권 힐링 명당 가평[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안영배 논설위원

입력 2020-09-27 09:00 수정 2020-09-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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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지도자들이 가평을 찾는 까닭은?
- 조선판 힐링타운 판미동
- 21세기에 잠재력 인정받을 가능성 높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으로 인해 추석 귀향을 포기한 ‘추캉족(추석+바캉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추석 연휴 기간 전국 유명 리조트와 호텔을 찾으려는 추캉족들로 예약이 만원 상태라고 한다.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긴 추석 연휴를 맞아야 하는 ‘집콕족’에게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필요하다. 집에서 영화보기나 독서, 취미생활 하기 등도 좋겠지만 간단하게 교외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다. 집콕족이 수도권에서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를 이겨내기 위해 찾아볼 만한 힐링명소를 추천한다. 바로 휴양과 힐링 장소로 유명한 경기도 가평이다.


● 청평호에 둥지 튼 종교단체
수상스키 레저 명소로 유명한 청평호. 가운데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가평대교가 보인다. 안영배 논설위원

가평에서 수상스키와 아름다운 경치로 이름난 청평호 일대는 종교단체의 주요 건물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대표적으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성전을 꼽을 수 있다.
크림색 3층 건물인 신천지 교단의 ‘평화의 궁전’(가운데). 건물 바로 아래로 청평호가 보인다. 안영배 논설위원

먼저 수상레저 시설들이 들어선 가평군 청평면 고재길을 따라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다보면 청평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독특한 외관의 3층 건물(가평군 청평면 고성리)이 눈에 띈다. 5716㎡의 터에 요트 선착장까지 갖춘 이 크림색 건물은 북한강변에 산재한 부자들의 호화별장처럼 보이지만, 신천지 교인들에겐 ‘평화의 궁전’이라 불리는 성지(聖地)이다.

현재 코로나 방역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은 이곳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퇴한 신천지 교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화의 궁전에는 교육시설과 이 총회장의 치적을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다. 또 각종 기념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신천지측은 평화의 궁전 외에도 2018년 청평면 청평4리 일대의 땅을 매입해 ‘신천지 박물관’을 지으려다 마을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평화의 궁전’ 대문에 부착된 ‘사자 조심’ 팻말. 현재 이 팻말이 사라지고 없다. 안영배 논설위원

최근 평화의 궁전을 찾아가보니 이 총회장이 애지중지할 만한 터였다. 평화의 궁전은 공중에서 내려오는 천기(天氣)와 땅의 지기(地氣) 에너지가 교합(交合)하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 평화의 궁전 대문에는 ‘사자 조심’이라는 경고 팻말과 함께 앞마당에 사자(獅子) 조형물이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의식했던지 지금은 대문의 팻말은 사라지고 없다.

사자는 신천지 교인들에게 각별한 종교적 의미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백수의 제왕으로 신성시 여겨온 사자는 성경에서 신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자(使者)’의 가차(假借·뜻이 다르지만 음이 같은 문자)이자, 이만희 총회장을 상징하는 영물이다. 신천지 교인들은 이 총회장을 ‘대언(代言)의 사자’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평화의 궁전 터를 풍수적으로 해석하자면 사람의 의지가 개입한 인작(人作) ‘사자 명당’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장락산 품에 안기듯이 자리잡은 통일교 성지인 천정궁. 건물 외관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닮았다. 안영배 논설위원

평화의 궁전에서 청평호를 가로질러 맞은편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성전인 ‘천정궁’(가평군 설악면 송산리)이 자리 잡고 있다. 평화의 궁전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4km 가량 떨어진 위치인데, 천정궁에서는 청평호가 바라보인다. 통일교 창시자이자 풍수에도 밝았던 고(故) 문선명 총재는 “청평은 호숫가와 산야가 조화를 이룬 곳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곳”이라고 극찬했다.

가평군과 강원도 홍천군의 경계선인 장락산(627m) 자락에 자리 잡은 천정궁은 돔형 지붕의 미국 국회의사당을 연상하게 하는 건물이다. 지형상 이 터는 봉황의 품속에 안긴 듯한 모양새다. 천정궁의 주산(主山)인 장락산은 봉황의 꽁지라는 뜻의 봉미산(鳳尾山·856m)에서 시작돼 봉황의 머리에 해당하는 왕터산(414m)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의 중간 지점에 있다. 장락산은 봉황의 몸통에 해당하니, 그 터를 ‘봉황 명당’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아쉽게도 천정궁은 통일교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어 일반인이 이곳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천정궁 아래쪽의 송산리 일대를 추천한다. 선학UP대학원대학교와 청심국제중·고교, 청심평화월드센터, 친화공원 등 통일교 관련 시설들이 밀집된 곳으로, 이 일대를 둘러보면 하늘과 교감하는 명상 기운을 느껴볼 수 있다.

가평군에는 이외에도 여러 종교 단체들이 숨은 듯이 둥지를 틀고 있다. 봉미산자락 깊숙한 곳에는 은퇴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집단 거주지인 ‘생명의 빛 예수마을’(설악면 설곡리)이 조성돼 있다. 이곳 관리자는 “홍송(紅松)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예배당이 바깥으로 소문나 기독교인의 순례 코스가 됐다”고 소개했다.

각종 교단들이 가평에 둥지를 튼 것은 서울·수도권 사람들이 쉽게 다녀갈 수 있는 교통 편리성과 함께 기도 명상과 힐링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청평호 주변의 복합문화공간 쉼터에서 당일치기 휴양을 즐기거나, 리조트 펜션 등에서 1박2일 코스로 가평의 명당 터를 체험해보는 것도 힐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조선의 힐링타운, 가평 판미동
조선시대 이상향 사회를 구현했던 ‘판미동’ 터로 추정되는 지역. 판미동은 가평군 상판리 및 하판리 일대에 존재했고 현재는 판미동 앞에 흐르는 조종천을 중심으로 위락시설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안영배 논설위원


가평은 조선시대에도 이상향을 구현하는 터로 주목받았다. 조선 숙종 임금 때인 1674년 신숙주의 후손인 신석(申奭, 1650~1724)이 친인척을 이끌고 가평 판미동(板尾洞)에 정착한 후 유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했다. 판미동은 한때 다른 성씨까지 가세해 100여 호에 이르는 촌락을 형성했고, 3대에 걸쳐 100년간 유지됐다고 한다.

판미동 사람들은 찾아온 손님 누구에게나 정중하게 접대하고, 흉년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생업인 농사에 부지런했으며,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 규제하는 ‘덕업상권 과실상규(德業相勸 過失相規)’를 실천했다. 깊은 산골에서 일종의 향약(鄕約)인 ‘동헌(洞憲)’을 기본으로 삼아 향촌 자치의 이상 세계를 구현한 판미동은 한양까지 소문날 정도였다.

판미동의 ‘판미’는 ‘넓은 들판의 꼬리 부분으로 땅 기운이 뭉치는 명당’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오늘날 가평군 상판리와 하판리 일대를 가리킨다. 연인산(월출산)과 운악산 사이의 협곡 지대로 조종천이 흐르는 지역이다. 산색이 아름다고 물이 맑아(山紫水明) 유원지와 펜션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판미동은 한양에서 반경 100리(39.2km) 안에 드는 한양생활권으로, 도교나 불교의 초월적 세계가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둔 이상향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조선판 힐링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경기연구원 조사 자료). 즉 벼슬이 없는 양반층이 언제든지 한양으로 쉽게 복귀할 수 있는 곳에서 머물며 몸과 마음을 양생하는 곳이었다. 현대로 치면 직장인들이 휴식을 취하며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땅의 기운을 진정시키기 위해 세운 ‘현등사 지진탑.’ 안영배 논설위원
현등사 입구에 세워진 삼충사. 일제의 무단 침략에 항거해 자결한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들이다. 안영배 논설위원



판미동의 양생 기운을 느끼고 싶다면 인근에 위치한 운악산의 현등사 산책을 추천한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현등사에는 일제의 무단 침략에 항거하다 자결한 조명세, 최익현, 민영환 선생을 기리는 삼충사가 있고,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절을 중창하면서 땅의 기운을 진정시키기 위해 세웠다는 ‘하판리 지진탑’(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7호)이 있다.

● 미국 세도나에 버금가는 기운을 품은 땅



역사적으로 가평은 밭농사나 겨우 지을 수 있는 궁핍한 땅이라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곳이다. 조선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가평을 인접한 지역인 포천 등과 함께 묶어 한양 동쪽 교외에 있는 동교(東郊)라 칭하고,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이중환은 농업과 상업 등 경제 활동이 원활하지 못한 점을 가평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자인 이중환이 놓친 가평의 숨겨진 장점이 있었다. 바로 가평의 엄청난 땅기운이다. 세계적인 명상지이자 휴양지로 각광받는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Sedona)에 못지않은 힐링 기운을 품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그에 따라 명상 기도 등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게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가평이 지닌 가치가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미래가 밝다는 의미다. 수상 레저와 전원주택 명소인 가평에서 현대인의 지친 마음과 몸을 달래줄 ‘건전한 시설물’은 땅 기운과도 궁합이 아주 좋다. 그게 가평의 미래를 밝게 해줄 등불이 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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