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만 있는 전세…조선때부터 지금까지 생존 가능했던 이유는?

정순구기자

입력 2020-07-31 18:18 수정 2020-07-3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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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우리나라의 한국의 전세 제도는 한국의 주택 공급 상황과 금융 환경 등이 낳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제도로 꼽힌다. 집주인에게는 목돈 마련의 기회를 주는 사금융 역할을 했고 세입자에게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도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를 제외하면 유사한 방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전세 제도는 고려시대 때 목돈을 빌려주고 전답을 사용하는 전당 제도가 조선시대로 넘어와 주택을 활용한 가사전당(家舍典當)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 기록으로는 1910년 조선총독부 관습조사보고서에서 처음 확인된다. 전세를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가옥 임대차 방식’으로 소개하며 ‘임차인이 일정 금액을 집 소유주에게 기탁해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집을 반환할 때 금액을 돌려받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전세 제도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방식이 당시에도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전세는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본격 확산됐다. 그 이전에는 사글세가 주를 이뤘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농촌 인구가 대도시로 몰려 주택 수요가 크게 늘었고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하지만 취약한 금융구조로 일반적으로는 아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으면 제도권 은행에서 목돈을 대출 받기도 힘들었고 금리도 높았다. 이런 이유로 전세가 집주인에게는 ‘사적(私的) 대출’의 역할을 했다. 집주인은 집을 살 때 모자란 목돈을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보충했고, 세입자는 자신의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주택보다 더 좋은 집에 거주할 수 있었고 월세를 매달 지출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목돈을 맡기고 살았다. 이처럼 집주인과 세입자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덕분에 전세는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었다.

가계 대출이 일반화된 뒤에도 전세 제도는 살아남았다. 장기적인 추세로 볼 때 집값이 상승해 왔기 때문이다. 집값이 상승하리라는 전제 하에서는 전세를 끼고서라도 집을 미리 사두는 게 집주인에게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런 형태로 집을 사들이는 사람들을 집값 상승 요인으로 지목한 것도 이런 이유다. 앞으로는 임대 방식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순간에 전세 제도가 사라지기는 어렵겠지만, 임대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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