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장vs최’ 1차 평가전 임박… 지분경쟁은 현재진행형 “내년 진검승부 전망”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입력 2023-02-01 09:49 수정 2023-02-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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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3월 말 정기 주주총회 예정
올해 주총서 이사회 6명 임기 만료
내년 ‘장형진 고문·최윤범 회장’ 이사회 임기 만료
최 회장 체제 고려아연 경영실적·대외평가 주목
“경영실적이 경영권 향방 판가름 낼 것” 전망
고려아연,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과 해외 JV 추진
외국인 지분 ‘캐스팅보트’ 전망… 해외 NDR 행보 눈길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작년 하반기부터 가시화된 영풍그룹 내 지분경쟁이 첫 평가전을 앞두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주총)는 영풍그룹 총수인 장형진 고문 일가(장 씨 일가)와 그룹 내 고려아연계열을 이끌고 있는 최윤범 회장 일가(최 씨 일가)가 벌이고 있는 지분경쟁의 1차 평가전 무대가 될 전망이다.
○ 지분경쟁은 현재진행형… ‘장형진 고문·최윤범 회장’ 내년 이사회 임기 만료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 확보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주총 표결권을 결정짓는 작년 주주명부폐쇄일 이후에도 최 씨 일가가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는 영풍정밀 등이 고려아연 지분을 사들였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을 1.92%까지 끌어올렸다. 영풍정밀을 지배하면 자연스럽게 2%에 가까운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때문에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경쟁에서 ‘캐스팅보트’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달 초에는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과 특수관계기업 유미개발 등이 영풍정밀 지분을 매입했다. 유미개발은 영풍정밀이 지배하고 있는 비상장기업이다. 최 씨 일가가 영풍정밀을 통해 고려아연 우호 지분을 확대하면서 영풍정밀 경영권 강화를 병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기호 공동창업주 4남인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셋째 작은아버지다.

특히 올해 주총에서 표결권이 없는 지분을 사들인 배경에 관심이 몰린다. 작년부터 격화된 지분경쟁이 올해 주총을 넘어 최윤범 회장 이사회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주총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형진 고문 역시 내년 이사회 임기가 만료된다. 올해 주총을 ‘1차’ 평가전으로 보는 이유다. 두 일가를 대표하는 장 고문과 최 회장의 이사회 재선임 안건이 상정될 내년 주총이 경영권 향방을 가를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 올해 이사회 6명 임기 만료… 이사 선임 안건 ‘표 대결’ 여부 촉각
고려아연 주총은 예년대로라면 오는 3월 말경 개최가 유력하다. 이에 맞춰 6주 전인 2월 중순경 주총 소집을 위한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사회에서는 주총 일정과 장소, 의안 등이 확정된다. 주주제안 역시 이사회 의결을 통해 주총 안건으로 상정될 수 있다.

이번 주총에서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선임의 건이 주요 안건으로 오르게 된다. 11명으로 구성된 현행 이사회(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6명, 기타비상무이사 1명)에서 과반 이상인 6명(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3명)이 이번 정기 주총을 끝으로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가 주총 소집을 위한 이사회와 함께 열릴 전망이다.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후보가 정해지면 주총 당일 표결을 거쳐 선임 여부가 결정된다. 표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의결권을 확보해야 한다. 주식 1주는 1개의 의결권이다. 주주명부폐쇄일에 맞춰 주식 지분(우호 지분 포함)을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주총 표결 승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장 씨와 최 씨 일가가 경쟁적으로 고려아연 주식을 사들인 가장 현실적인 이유도 결국 주총 표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표결에서 이기면 의결권 행사를 통해 이사회 구성원 선임이 가능하다. 나아가 이사회를 장악해 회사 경영권까지 거머쥘 수 있다. 경영 관련 주요 의사결정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뤄지는 만큼 경영권 분쟁은 이사회 장악을 위한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 최윤범 회장, 성장 앞세워 영향력↑… “올해 LG에너지솔루션과 해외 JV 추진”
고려아연 지분경쟁은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최윤범 회장 측이 경영권 강화 행보를 보이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에 영풍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장형진 고문 측이 대응에 나서면서 지분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최 회장 측은 지난해 굵직한 기업들과 사업제휴, 협력 등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최 회장은 작년 신년사를 통해 신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2차 전지(배터리) 소재, 리사이클링을 통한 자원순환 사업 등 3대 성장 동력을 주축으로 하는 ‘트로이카드라이브’를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LG화학과 합작법인 한국전구체주식회사 설립을 추진했고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그룹과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보다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독자적으로는 자원순환 사업 추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전자폐기물 리사이클 기업인 이그니오를 자회사로 인수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성장 전략인 트로이카드라이브 추진을 위한 행보다. 적극적으로 펼친 사업제휴와 협력 추진에 따라 트로이카드라이브 전략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트로이카드라이브는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적인 비전이면서 전략으로 거듭났다”며 “올해는 트로이카드라이브를 현실로 실현시키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고려아연과 배터리 업체 LG에너지솔루션이 상반기 중 해외에서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배터리 리사이클 관련 사업 추진을 위한 협력 프로젝트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적극적인 신사업 추진이 최 회장 측 경영권 강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 협력 과정에서 유상증자 방식으로 다른 기업에 배정된 주식이 결정적인 순간에 최 회장 측에 우호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백미(白眉)는 작년 11월 단행된 자사주 맞교환 방식 협력 강화를 꼽을 수 있다. 당시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활용해 LG화학(배터리 소재), 한화(그린에너지), 해외기업 트라피규라(니켈 제련) 등과 총 7868억 원 규모 거래를 진행했다. LG화학, 한화 등과는 지분을 맞교환했고 트라피규라 컨소시엄에는 자사주를 넘기면서 3723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다른 기업에 넘어가면 의결권이 생긴다. 고려아연 전체 발행주식의 약 6% 규모에 해당하는 자사주가 사업적으로 관계가 밀접한 다른 기업에 넘어가면서 현 경영진 우호 지분으로 거듭난 것이다. 최 씨 일가 친인척을 동원한 우호 지분 확보도 꾸준히 이뤄졌다. 이에 장형진 고문 측은 테라닉스와 코리아써키트, 에이치씨 등 그룹 계열사가 고려아연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장 고문은 영풍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고려아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지분 추가 확보를 위한 자금여력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가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인 결과 두 집안(우호 지분 포함)이 확보한 고려아연 지분(작년 12월 15일 기준)은 장 씨 측이 31.96%(추정치), 최 씨 측은 27.90% 수준으로 집계됐다. 10%가량 차이 났던 지분율 격차가 3~4%(추정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다만 장 씨 일가 지분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 외국인 투자자 ‘캐스팅보트’ 부각… 해외 기업설명회 챙기는 고려아연
현 상황에서 실제로 표 대결이 펼쳐지면 소액주주(기관 포함, 약 12~13% 추정)와 국민연금(약 8%), 외국인 지분(약 19%) 등이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소액주주 지분의 경우 다양한 성향이 혼재돼 있고 일반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이지 않다. 때문에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의 지분 향방이 핵심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고려아연은 외국인 투자자와 소통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한 노진수 고려아연 대표이사 부회장이 직접 해외를 오가면서 기업설명회(NDR, Non-Deal Roadshow)를 챙기고 있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해외 NDR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동안 고려아연은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아연 지분경쟁 과정에서 외국인 보유 지분의 영향력을 방증하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일가 지분 확보 내역을 살펴보면 올해보다는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인 모습이기 때문에 당장 올해 주총에서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 지분이 고려아연 뿐 아니라 영풍그룹 내에서도 얽히고설켜 있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에는 양 측 모두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두 집안을 대표하는 장형진 고문과 최윤범 회장의 이사회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주총이 고려아연 지분경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며 “현 고려아연 경영진 입장에서는 직접 지분투자보다는 변수로 남아있는 연기금과 기관 투자자 등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경영성과 극대화에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경영성과가 지분경쟁에 미치는 영향… “실적·대외평가가 판가름 낼 것”
결국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지분 확보에 앞서 기업운영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영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입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기본적으로 실적을 확인할 수 있다. 사업 분야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영풍 역시 고려아연과 마찬가지로 비철금속제련사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실적 비교가 가능하다.
전반적인 실적은 고려아연이 영풍을 크게 압도한다. 최근 5년간(2017~2021년) 추이를 보면 매출액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지난 2019년 고려아연과 영풍 모두 전년 대비 실적이 하락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1년 만에 성장세로 돌아섰고 영풍은 하락세가 이어졌다. 2017년 고려아연과 영풍의 매출 실적 격차는 3조9940억 원, 2018년은 4조1459억 원으로 집계됐다. 실적이 부진했던 2019년에는 3조8708억 원으로 격차가 소폭 줄었지만 이후부터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2020년과 2021년 매출 격차는 각각 4조4188억 원, 5조8280억 원이다. 2021년 기준 고려아연 매출 실적은 7조1625억 원, 영풍은 3345억 원이다. 영풍 매출액은 고려아연의 18.6% 수준이다.

영업이익 실적 추이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커지는 추세다. 2017년 고려아연과 영풍은 각각 7612억 원, 249억 원의 영업이익 실적을 거뒀다. 7363억 원의 격차를 보였다. 2018년에는 두 업체 모두 실적이 하락했다. 고려아연은 6475억 원을 기록했고 영풍은 영업손실 300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2019년에는 영풍이 흑자 전환에 성공해 영업이익 500억 원을 기록했고 고려아연은 7292억 원으로 집계됐다. 1년 만에 실적을 회복한 영풍은 2020년(235억 원)부터 실적 부진을 겪었고 2021년에는 영업손실 728억 원으로 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고려아연은 2018년 실적 부진 이후 2020년(7572억 원)과 2021년(9974억 원)까지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갔다. 2022년 실적 전망 역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업이익 1조 원 돌파가 유력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영업이익 실적 격차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6000억~7000억 원대를 유지하다가 영풍이 적자 전환한 2021년부터 9974억 원으로 크게 벌어졌다.
경영실적에 따라 고려아연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주당 1만 원이 넘는 배당 정책을 이어왔다. 2021년 1만5000원에 이어 2022년에는 2만 원까지 배당금을 늘렸다. 영풍은 고려아연 최대주주로 배당금을 수익으로 받아왔다. 특히 최근 5년간 고려아연이 지급한 총 배당금은 2967억 원으로 영풍 당기순이익 합계(2059억 원)를 넘어섰다. 또한 영풍이 지급받은 총 배당금의 97.2%를 고려아연이 지급했다. 고려아연이 우수한 경영실적을 거둘수록 영풍이 거두는 배당 수익도 증가하는 것이다.

정량화된 실적 외에 정성적인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도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전 세계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트렌드에 따라 고려아연은 지난 2021년 관련 전담조직(지속가능경영본부)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금속업계 최초로 RE100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ESG경영 강화에 나섰다. 작년 12월에는 정부 주관 기업혁신대상에서 최우수기업에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다우존스지속가능성지수(DJSI) 평가에서 금속광업업계 최초로 DJSI코리아 지수에 편입되는 등 ESG경영 관련 가시적인 성과도 거뒀다. 반면 영풍은 석포제련소에서 수년간 오염수를 불법 배출한 것이 적발돼 2021년 환경부로부터 과징금 281억 원을 부과 받았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중앙은행투자청은 이를 문제 삼아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영풍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업계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 체제 하에서 고려아연은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왔고 국내외 굵직한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성장을 위한 기반까지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실적이나 대외평가 등 전반적인 경영성과를 종합해보면 현 경영진에 반대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투자자가 나타나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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