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료 통제로 물가억제, 정답 아니다[기고/김진욱]

김진욱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22-09-27 03:00 수정 2022-09-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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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로마제국 멸망 원인은 이민족 침략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최근에는 인플레이션을 멸망 요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3세기 말 통화량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인류 최초로 가격 통제를 실시했다. 시민을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였지만, 시장 기능이 마비되고 생산이 줄어들어 로마제국 멸망에 일조했다.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과 혹독한 전쟁 중이다. 한국은 전기, 가스 요금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려 한다. 당장은 물가 억제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첫째, 국민 부담과 사회 갈등을 가중시킨다. 높은 에너지 가격의 현재 위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기, 가스 요금을 억누르는 정책은 특정 시점에 소비자와 국가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여기에 이자까지 더해져 다음 세대에 전가된 비용은 세대 간 갈등을 초래할 것이며, 이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정부 원칙에도 배치된다.

둘째,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여건이 요금 억제 정책을 감내할 수 없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한전은 올해부터 매년 수십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이로 인해 최소한의 설비투자도 어려워 국가산업의 근간인 전력 공급 안정성이 낮아질 것이다. 해외 원전 수출은 고사하고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이 붕괴될 수 있다.

셋째, 요금 억제는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고, 무역수지 악화, 환율 상승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올해 8월까지 무역수지는 에너지수입액 88.4% 급증 등으로 역대 최대인 24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가격을 올려 수요를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산업 경쟁력 저하가 초래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4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효율 부문 투자액은 약 1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기업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가격 상승 장기화에 대비해 사업구조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반면, 한국은 저렴한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효율 향상을 위한 투자 유인이 낮아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요금 억제 정책으로는 에너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 프랑스(24.3%), 독일(43.3%), 영국(33.7%)의 경우도 전기요금 인상으로 수요를 감축하는 등 근본적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 등을 주요 수단으로 하고, 가계 및 기업 부실은 세율 인하 등 재정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 동시에 에너지 요금 정상화를 통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 물가 안정과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공짜는 유한한 자원에 대한 소비를 왜곡시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므로 경계해야 한다. 지금 정책 입안자들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김진욱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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