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보고 입문했어요”… 전자담배 홍보영상 청소년도 볼 수 있다

조건희 기자

입력 2022-09-22 03:00 수정 2022-09-22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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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제는 OUT!]〈9〉
규제 사각지대 놓인 전자담배 광고
홍보영상 성인인증 없이 접근 가능


한 유튜버가 전자담배 니코틴 용액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에선 이처럼 전자담배 사용 후기나 판촉 영상이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유튜브 캡처

“남자가 뿌리면(피우면) 섹시할 것 같은 향이에요.”

20대 여성 유튜버 A 씨가 액상형 전자담배의 증기를 내뱉으며 한 말이다. 19일 유튜브에 올라온 니코틴 용액 리뷰 영상이었다. 앞에 ‘성인 대상 영상’이라고 표기했지만 나이 제한 없이 누구나 볼 수 있었고, 판매업체로부터 제작비를 받았다면서도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유튜버가 구독자에게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겠다고 밝히자 영상 게재 하루 만에 “언니 영상 보고 전담(전자담배) 입문했어요” 등의 댓글이 200건 넘게 달렸다.

유튜브에서는 이런 전자담배 사용 후기나 판촉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유튜브에서 ‘담배 리뷰’ ‘담배 추천’ 등의 키워드로 모니터링한 결과 총 845건의 영상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17건을 A 씨를 비롯한 10명의 유튜버가 게재했다. ‘담배 전문 유튜버’인 셈이다.

현행 담배사업법상 인터넷으로 담배를 광고하거나 판촉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된 유튜브 흡연 영상 중 40.0%에 해당하는 338건에서는 출연자가 전자담배 업체로부터 후원받았다고 버젓이 밝히거나 해당 제품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안내했다. 광고와 판촉의 성격이 짙다.

그런데도 제재가 어려운 건 담배의 법적 정의가 ‘담뱃잎을 원료로 한 제품’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담배의 줄기와 뿌리, 합성니코틴 등으로 만든 전자담배 제품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이는 관련법이 전자담배가 없었던 1988년 제정된 이후 지금껏 쭉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담배 업체와 유튜버들이 법망을 피해 일종의 ‘영업’을 하는 것을 국회가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 유튜브 내 담배 판촉 영상 4건 중 1건은 성인 인증 없이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었다. 이런 영상은 청소년 흡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연구진은 청소년 10만666명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종합한 결과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흡연 장면에 노출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담배 사용률이 2.18배로 높았다고 밝혔다.

김길용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금연정책팀장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담배 판촉 영상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려면 담배의 법적 정의를 ‘모든 담배제품’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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