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작업복이 가장 귀한 옷” 쌍용차의 남다른 추석

평택=김재형 기자

입력 2022-09-09 03:00 수정 2022-09-0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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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흥행-경영정상화 기대… 활기 되찾은 평택공장 르포

선목래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오른쪽 앞)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경기 평택시 쌍용차공장 정문에서 근로자들과 악수하며 덕담을 건네고 있다. 평택=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경기 평택에 있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 오후 1시 반이 되자 생산라인 근무를 마친 낮 근무조가 도로를 따라 공장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명절 잘 보내세요.” 정문 앞에선 회사 임직원과 노동조합 간부 등이 밝은 얼굴로 명절 인사를 나눴다.

명절을 앞두고 공장 정문 앞에서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쌍용차 노사의 전통 중 하나다. 2010년부터 매년 명절 때마다 펼쳐지던 이 광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로 2020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이날 2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쌍용차에 다시 등장한 것은 명절 인사만이 아니었다. 쌍용차 회생계획안이 법원 인가를 받았고, 새 주인이 정해지면서 경영 정상화의 새 희망이 생겨났다. 퇴근하는 몇몇 직원 손에는 인수기업인 KG그룹이 선물한 한우세트가 들려 있었다. 회사 측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 추석엔 30만 원 상당의 상품권도 선물했다.

정문을 향하던 윤상진 보전팀 기술수석(53)은 “작년 이맘땐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올 추석엔 회사가 준 상품권으로 주변 상가에서 선물을 사겠다는 직원이 많다”며 “집에 돌아가서도 이젠 자신 있게 ‘우리 회사 앞으로 잘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찬다”고 했다.


최근 출시 2개월 만에 계약 물량 6만 대를 넘긴 신차 토레스 덕분에 공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평택공장 생산라인은 당초 2교대 근무로 운영됐다. 하지만 경영이 차질을 빚고 차량 판매 실적도 저조해지면서 지난해 7월 2교대 근무가 중단됐다. 직원들의 순환 무급 휴직도 시작됐다.

무급 휴직 연장 여부를 재협상하던 올 6월, 신차 토레스가 사전 계약 하루 만에 쌍용차 최다 기록인 1만2000대 예약 판매 실적을 올리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그 덕에 올해 7월 주간 연속 2교대 근무가 재개됐다. 한 달씩 돌아가며 일을 쉬지 않게 된 것이다. 공장 가동 시간이 늘어나면 근로자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진다.

이계주 조립1팀 기술수석(51)은 “아이들에게 ‘아빠가 가진 가장 비싼 옷이 작업복이다’라고 말해 왔는데 최근 몇 년간 그런 자부심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피자 배달을 시켰는데 피자집 사장님이 ‘쌍용차 괜찮은 거냐’ 묻기도 했다”며 “가족에게 내색하지 않고 지금껏 버텨 왔는데 이렇게 재기하는 모습에 회사가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쌍용차 직원 “올 추석엔 선물 사요… 무급휴직 벗어나 감개무량”



활기찾은 쌍용차 평택공장





작년 7월부터 직원 절반가량 휴직, 매각 작업 부진에 불확실한 미래
올해 KG 인수 확정… 새로운 희망… 7월 출시 토레스 판매호조에 환호
월별 순환휴직서 2교대 근무 재개 “서로 ‘마지막 기회’ 의지 다져”



쌍용 토레스
이날 만난 쌍용차 임직원들은 지난해 7월 무급 휴직에 들어가던 때를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았다. 새 주인을 찾는 인수합병(M&A)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시장의 불신이 커지면서 덩달아 차량 판매 실적도 저조해졌다.

당시 무급 휴직을 포함한 자구안을 관철시켰던 박장호 생산본부장(상무)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박 상무는 지난해 6월 직접 노조 대의원을 상대로 자구안을 설명하고, 통과시켜야 했다.

“2009년 법정관리 때 후배들에게 다신 이런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그런데 무급 휴직 협상을 하려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고 괴로웠습니다. 회사가 살아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민광춘 조립1팀 기술수석(56)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임금 삭감과 무급 휴직에 들어가니 아들의 대학 등록금이 당장 문제가 됐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일용직 자리를 찾아야 했죠. 저 혼자로는 어려워서 아내와 함께 일용직에 나서야 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했고, 아들에게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무급 휴직 연장 여부를 재협상하던 올해 6월 신차 토레스의 ‘깜짝 흥행 성공’에 힘입어 무급 휴직을 연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간 연속 2교대로 근무체제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박 상무는 “감개무량한 일이었다”고 했다.


쌍용차는 2020년 12월(1만591대) 이후 1년 7개월 만인 올해 7월에 월간 판매량 1만752대로 1만 대 선을 다시 넘기는 데 성공했다. 8월에도 총 1만675대를 판매했다. 업계에서는 월 판매량 1만 대를 쌍용차가 정상화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넘어야 할 고지로 여겨 왔다. 쌍용차는 올해 말까지 이 기세를 이어가 경영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올해 KG그룹이 인수자로 정해지고 회사의 회생계획안도 법원의 인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채무 변제와 신주 발행 등을 거치면 KG그룹은 이달 21일 서류상으로는 쌍용차 대주주가 된다. 법원의 ‘종결 판결’이 남았지만, 기업회생절차 졸업을 눈앞에 둔 것이다.

회사 임직원들이 이번 명절을 맞이하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쌍용차 노조는 회사 인수합병 등 경영 정상화 조치가 난항을 겪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 조기 정상화를 호소했다. 선목래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내심 ‘인수 절차가 틀어지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며 “인수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된 이후 공장에서 근무자들을 만났는데 현장에서 ‘고생하셨어요’라고 격려해줘서 뿌듯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쌍용차를 인수한 KG그룹은 본격적인 경영 구상에 나서고 있다. 이달 1일 쌍용차 회장 취임식을 연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평택 공장과 서울 KG그룹 본사를 수시로 오가며 업무 파악에 나섰다. 업계는 곽 회장이 법원의 쌍용차 회생절차 졸업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이사회 구성과 대표 체제에 대한 구상을 마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위축되고, 원자재가 상승과 공급망 차질 등의 악조건이 겹친 가운데 쌍용차가 완전히 부활할 수 있을지 아직 시장에선 의문부호가 붙은 상황이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누적된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하지만 8일 평택에서 만난 근로자들은 부푼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민광춘 기술수석은 “어렵게 다시 찾은 일이다.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두헌 조립1팀 기술수석(54)은 “70여 명의 직원을 관리하는데 따로 독려할 필요도 없이 서로 ‘마지막 기회’라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며 “우리 팀에서 토레스도 생산하는데 그 라인을 볼 때마다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분이 든다”고 전했다.


평택=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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