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천착”… 화이트큐브 안으로 들여온 돌과 흙, 나무
인천=김태언 기자
입력 2022-09-07 03:00 수정 2022-09-07 03:53
제7회 박수근미술상 차기율 작가
설치미술가 차기율 씨(61·사진)가 제7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6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차 작가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이용해 설치와 회화 여러 분야에서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인 힘을 실험해 왔다. 심사단은 “차 작가는 동양의 전통철학에 바탕을 두고 박수근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10월 25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
‘박수근미술상’ 차기율 작가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 사용해 “땅에 대한 애정이 내 본연의 모습”
‘도시시굴…’ ‘순환의…’ 작업 승화
“자연이 만든 대범함 이길 수 없어… 자연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
이번 수상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
차기율 작가가 제일 먼저 떠올렸다는 계기란 뭘 뜻하는 걸까. 1일 인천 연수구 인천대에서 만난 그는 이를 “전력을 다해 작업할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조형학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뭔가 창작에 집중하질 못하며 생긴 ‘공백’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근미술상이 “다시 한번 삶을 도약시킬 힘을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85년 인천대를 졸업한 차 작가는 이후 약 10년 동안 여러 그룹전 등에 참가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 갔다. 하지만 1995년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난 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귀국 뒤엔 1년 동안 작업을 멈췄다.
“그때까지 제 작가로서의 인생은 한마디로 ‘깍두기’였습니다. 마흔 살 즈음까지 뭘 해도 잘 안 됐어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제 작품을 ‘설득하느라’ 몸부림쳤죠. 하지만 임기응변처럼 떠밀리듯 하는 전시는 관두고 싶었습니다. 여행에서 ‘나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선 무작정 산천을 떠돌았어요.”
그 결과로 내놓은, 1999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땅의 기억’은 차 작가의 예술 활동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로 여겨지는 돌과 흙, 나무 등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을 본격적으로 ‘화이트큐브’(전시장) 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설치미술을 주로 하다 보니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해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차 작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예술은 시각적 산물에 그치지 않고 정신이 바탕이 된 영적 산물”이라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에 대한 열렬한 긍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 작가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어머니의 힘이 컸다. 2014년 세상을 떠나시며 어머니는 단 한마디,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되뇌며 강화도 작업실 앞마당 매화나무 아래 어머니를 모셨다.
“지난해 그 매화나무가 고사했어요. 안타깝지만, 이 나무를 활용해 10월 수원국제예술제 ‘온새미로 프로젝트’에서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일평생 아들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라도 뭔가 갚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오늘도 그렇게 나무를 다듬고 자른다.
인천=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설치미술가 차기율 씨(61·사진)가 제7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6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차 작가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이용해 설치와 회화 여러 분야에서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인 힘을 실험해 왔다. 심사단은 “차 작가는 동양의 전통철학에 바탕을 두고 박수근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10월 25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
‘박수근미술상’ 차기율 작가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 사용해 “땅에 대한 애정이 내 본연의 모습”
‘도시시굴…’ ‘순환의…’ 작업 승화
“자연이 만든 대범함 이길 수 없어… 자연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
이번 수상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
1일 인천대에서 만난 차기율 작가는 와이셔츠에 재킷을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을 어색해하며 “별명이 ‘타이거’인데 지금은
호양이(호랑이+고양이)가 됐다”고 수줍어했다. 자연 자체를 작품 주제로 여기는 그는 “언젠가 인간이 없는 북극이나 남극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인천=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한참 나무를 깎고 있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작업 중에 무심코 받았는데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더군요. 아, 드디어 나에게도 뭔가 ‘계기’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차기율 작가가 제일 먼저 떠올렸다는 계기란 뭘 뜻하는 걸까. 1일 인천 연수구 인천대에서 만난 그는 이를 “전력을 다해 작업할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조형학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뭔가 창작에 집중하질 못하며 생긴 ‘공백’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근미술상이 “다시 한번 삶을 도약시킬 힘을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85년 인천대를 졸업한 차 작가는 이후 약 10년 동안 여러 그룹전 등에 참가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 갔다. 하지만 1995년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난 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귀국 뒤엔 1년 동안 작업을 멈췄다.
“그때까지 제 작가로서의 인생은 한마디로 ‘깍두기’였습니다. 마흔 살 즈음까지 뭘 해도 잘 안 됐어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제 작품을 ‘설득하느라’ 몸부림쳤죠. 하지만 임기응변처럼 떠밀리듯 하는 전시는 관두고 싶었습니다. 여행에서 ‘나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선 무작정 산천을 떠돌았어요.”
그 결과로 내놓은, 1999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땅의 기억’은 차 작가의 예술 활동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로 여겨지는 돌과 흙, 나무 등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을 본격적으로 ‘화이트큐브’(전시장) 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갯벌에 게들이 구멍을 판 부분들을 모아 불에 구운 설치 작품 ‘고고학적 풍경―불의 만다라’. 박수근미술관 제공
“한마디로 땅에 천착하기 시작했어요. 땅에 대한 애정이 제 본연의 모습이란 걸 깨달은 겁니다. 전 경기 화성의 갯벌과 평야가 맞붙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학교가 끝나면 산에서 식물과 새를 보는 게 일상이었죠. 지금도 눈을 감으면 끝없는 갯벌과 아지랑이, 풀, 온갖 철새들이 떠오릅니다. 그게 제 놀이터이자 저만의 색깔이 된 거죠.”포도나무와 자연석, 철을 이어 붙인 설치 작품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를 표현한 작품이다. 박수근미술관 제공
이런 기억은 이후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자양분으로 자리 잡았다. 차 작가는 현재도 ‘도시 시굴―삶의 고고학’과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라는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 시굴은 집 뒷마당 같은 평범한 공간의 땅을 발굴해 삶의 흔적이 담긴 옹기 조각 등을 수집해 전시한다. 순환의 여행은 자연물과 문명을 결합시켜 보는 작업이다. 차 작가는 “자연이 만든 대범함은 이길 수 없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의 산물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설치미술을 주로 하다 보니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해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차 작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예술은 시각적 산물에 그치지 않고 정신이 바탕이 된 영적 산물”이라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에 대한 열렬한 긍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 작가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어머니의 힘이 컸다. 2014년 세상을 떠나시며 어머니는 단 한마디,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되뇌며 강화도 작업실 앞마당 매화나무 아래 어머니를 모셨다.
“지난해 그 매화나무가 고사했어요. 안타깝지만, 이 나무를 활용해 10월 수원국제예술제 ‘온새미로 프로젝트’에서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일평생 아들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라도 뭔가 갚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오늘도 그렇게 나무를 다듬고 자른다.
인천=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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