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참았다”… 엔데믹 ‘보복 관람’에 공연계 훈풍

이지윤 기자

입력 2023-02-07 03:00 수정 2023-02-07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작년 공연 티켓 판매액 5589억원
2019년보다 43%↑… 회복세 빨라
티켓값 비싸도 표 구하기 어려워
‘아옮’ 등 진화한 암표문제 다시 대두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주인공 크리스티안(홍광호·왼쪽)이 사랑하는 여성 사틴을 잊기 위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노래 ‘샹들리에’를 부르는 장면. 지난해 뮤지컬은 전체 공연 티켓 판매액의 76%를 차지하며 공연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CJ ENM 제공

공연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공연 관람에 제약이 컸던 팬데믹 시국을 지나 지난해부터 엔데믹 국면으로 전환되며 공연 시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치열한 ‘티케팅’전이 벌어지며 몇 년간 잠잠했던 암표시장마저 진화(?)되고 있다.
●브로드웨이보다 빠른 회복세

6일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 티켓 판매액은 총 5589억 원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43% 증가했다. 성장세는 뮤지컬이 견인했다.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전체 76%를 차지했다. 클래식(12%)과 연극(8%)이 뒤를 이었다. 국내 공연시장 회복세는 글로벌 공연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 영국보다 가파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한국 공연시장의 회복세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가 저조한 티켓 판매로 고전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평가했다.

국내 제작사들은 ‘맘마미아’처럼 흥행이 보장된 인기 작품을 내놓고 있다. 세계 유명 공연 단체도 한국 공연시장의 회복세에 주목하며 올해 잇달아 내한공연을 펼친다. 30년 만에 내한하는 파리오페라발레단(BOP)과 6년 만에 한국을 찾는 베를린필하모닉이 대표적이다.

이런 배경에는 코로나19로 공연을 장기간 취소했던 해외와 달리 한국 시장은 강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이어온 영향이 크다. 2020년 뮤지컬 ‘캣츠’ 공연은 한국에서만 열렸다. 올해 뮤지컬 ‘기대작’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 역시 2020년 한국에서만 공연했다. 반면 뉴욕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팬데믹의 타격을 회복하지 못해 4월 ‘오페라의 유령’을 폐막할 예정이다. 1988년 초연 후 35년간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작품이다.
●‘보복 관람’에 암표시장도 진화
관객들의 보복 관람이 늘어난 것도 공연시장 회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표가 매진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뮤지컬 ‘레베카’의 옥주현, ‘웃는 남자’의 박효신 등 스타 배우들의 대표작은 VIP석 티켓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암표상에게 관객이 티켓 판매처 ID와 비밀번호를 모두 제공하는 형식의 암표 거래가 활개를 치고 있다. A가 티켓을 취소하는 순간 B가 티켓을 낚아챌 수 있도록 매크로를 쓰는 ‘아옮(아이디 옮기기)’이 대표적이다. 암표상이 표를 대거 사들여 웃돈을 얹어 파는 행위가 빈발하자 공연 제작사들이 관객의 티켓 구매 계정과 신분증을 확인해 암표 거래가 변화된 것이다. 회사원 임모 씨(30)는 “뮤지컬 ‘물랑루즈’ 홍광호 공연 회차를 예매하는 데 실패해 발만 동동 구르다 온라인에서 5만 원을 주고 ‘아옮’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 씨(26) 역시 지난해 8월 ‘더 보이즈’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13만 원짜리 표를 암표상에게 맡겨 33만 원에 예매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를 통째로 넘기는 거래 방식이 2, 3차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춘식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거래 직후 비밀번호를 변경한다 해도 ID와 이름을 알면 다른 웹사이트의 비밀번호까지 파악할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 해킹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고 본인이 직접 제공했기에 개인정보보호법상 보호를 받기도 힘들다”고 경고했다. 이에 공연업계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브로드웨이에서 취소 표를 살 수 있는 매표소를 운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뮤지컬협회를 중심으로 티켓 되팔기 시장을 공식적인 시스템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