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휘몰아치는 파도… 흔들리는 조각배 같은 인생

이지윤 기자

입력 2023-03-24 03:00 수정 2023-03-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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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단 70주년 공연 연극 ‘만선’

구포댁(왼쪽)과 곰치가 비극을 맞는 연극 ‘만선’의 마지막 장면에선 총 2∼3t에 달하는 빗줄기가 무대 위로 세차게 쏟아진다. 국립극단 제공

하얀 장막을 친 듯 무대 위 억수가 몰아쳤다. 방파제에 부딪친 파도는 무대 옆과 뒤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관객 귓가에서 철썩였다. 만선을 꿈꾸는 가난한 어부 곰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고집스럽게 바다로 나갔다. 잘살아보겠다는 그의 간절한 마음은 강풍에 찢길 듯 펄럭이는 오방색 만선기 앞에서 절규로 돌변한다.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16일부터 공연 중인 연극 ‘만선’의 한 장면이다. 1964년 극작가 천승세가 쓴 희곡을 국립극단이 2021년 창단 70주년을 맞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2년 만의 재연이다. ‘만선’은 1960년대 남해안의 작은 섬마을에 사는 곰치네 가족이 거친 숙명과 자본가의 횡포로 겪는 비극적 삶을 다룬다. 평생을 배 타는 일에 바쳤지만 이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 곰치 역은 배우 김명수가, 그의 아내 구포댁 역은 정경순이 맡았다. 강인하면서 재치 있는 구포댁은 “배암 섯바닥처럼 비양질 헌다(뱀 혓바닥처럼 비아냥거린다)” 등 전라도 방언으로 가득 찬 대사를 차지게 구사하며 말맛과 극적 재미를 더한다.

곰치(김명수)는 폭풍우가 와도 만선을 꿈꾼다. 그는 배가 난파된 상황에서도 “손에서 그물을 놓는 날엔 차라리 내 배를 가를 것”이라며 절규한다. 국립극단 제공
‘만선’의 무대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살려냈다. 2∼3t에 달하는 빗줄기가 무대에 휘몰아치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만선’ 무대는 제42회(2005년), 제55회(2018년)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이태섭 디자이너가 맡았다. 명동예술극장에서 22일 만난 그는 “무대 뒤편에 있는 총 5t 용량의 물탱크에 저장된 물을 호스로 끌어와 천장에 일렬로 설치된 강수장치로 무대에 흩뿌린다”며 “빗물은 곧장 경사를 타고 내려와 무대 아래 설치된 수조에 고이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 바닥 표면이 거칠고 여러 겹 코팅된 덕에 공연 후 1시간이면 마른다”고 덧붙였다.

극 전체에 난파선 느낌을 주기 위해 무대 바닥을 송판으로 제작했다. 이 디자이너는 “무대의 돌도 스티로폼 모형이 아니라 쌀 한 가마니 무게에 달하는 실제 돌”이라고 했다. 나혜민 무대감독은 “안전을 위해 강수장치는 전기 설비보다 낮은 곳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4월 9일까지, 3만∼6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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