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포착한 이 순간…구정임 작가 첫 개인전

대전=지명훈기자

입력 2021-06-13 16:07 수정 2021-06-13 16:41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저수지는 물이 맑았다. 바닥의 자갈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한순간 바람이 불어 닥쳤다. 수면이 뒤척였다. 자갈은 사라졌다. 끝없는 물결 형상이 나타났다.

구정임 작가는 이 순간은 포착했다. 첫 개인전에 내건 대전 수통골 저수지 사진에서다. 관람객들은 끝없는 해석을 내놓는다. 얇은 돌조각 기와지붕, 산골짜기의 층층 천수답, 연잎들이 어깨를 부대는 연못….

전시는 대전 중구 대전도시철도 서대전 네거리역 부근 소제창작촌 용두예술공간에서 5일 시작돼 27일까지 열린다. 대전 시민의 공원이라 할 수통골의 사계 가운데 지난 겨울과 이번 봄의 모습 11개 장면을 선보인다.

비에 휩쓸린 솔잎, 풀과 나무가 뒤엉킨 덤불 숲, 빨리 해 저문 수통골의 달빛…. ‘거기에 있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주제처럼 흔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담았다. “보여서 카메라를 들이댔다기보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보이게 된 것들이에요. 그런 면에서 카메라는 무언가를 비로소 보이게 하는 좋은 도구인 셈이죠….”

작가는 수통골 저수지 작품에 가장 애착을 느낀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만으로 살 수 없고 인고(忍苦)의 기다림이 필요한 삶의 단면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람의 도움으로 새로운 형상(물결)을 얻었고, 그것은 오랜 기다림 끝에 가능했다.

작가는 피사체 아닌 그 속에 투영된 자신에 앵글을 들이대기도 했다. 눈에 파묻혀 겨우 한줌의 줄기만 보이는 작품이 그랬다. 구 작가는 “눈 속 어딘가의 뿌리에 의지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봄을 기다리는 모습이 생계에 허덕이면서 걸작을 꿈꾸는 많은 작가들과 겹쳐 보였다”고 말했다.

구 작가는 영국 런던예술대학교에서 순수예술 사진을 전공한 뒤 골드스미스대학(석사)에서 사진과 사회학을 같이 공부했다. 지난해에는 전재홍, 이은덕 작가와 함께 재개발과 원주민 이전, 핫플레이스 변신, 자본 유입 등으로 사회학적 공간으로 변모한 대전 소제동을 소재로 그룹전을 가졌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