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하면 대번에 들키는 증명서, NFT[정우성의 미래과학 엿보기]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입력 2021-04-12 03:00 수정 2021-05-2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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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은 복제 불가능한 ‘디지털 소유 및 거래 증명서’에 해당하는 ‘NFT’(대체불가능한 토큰) 기술 형태를 선보였다. AP 뉴시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그림 파일 하나가 785억 원? 올 3월 미국의 한 경매장에서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이 약 7000만 달러에 판매됐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경매인데, 비단 작품의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격보다는 예술 작품의 형태가 화제였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지고 액자에 담긴 작품이 아니라, 300MB(메가바이트)의 크기를 가진 컴퓨터 파일이다. 컴퓨터 파일은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다. 작가가 만든 파일을 가졌다 하더라도 쉽게 복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니 경매로 구입한 그림 파일은 무수히 복제되어 여러 명이 소유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어마어마한 가격을 주고 겨우 그림 파일 하나를 구매한 것일까?

이번 경매에 등장한 작품은 다른 그림 파일과는 다른 기술이 적용됐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한 토큰)’가 활용되었다. 다른 작품과 달리 ‘디지털 소유 및 거래 증명서’라 할 수 있는 NFT 형태로 경매에 나왔다. 즉 그림 파일은 앞으로 복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증명서를 바탕으로 누가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 가능하다. 작품이 정당한 방법으로 거래된 것인지, 혹은 불법으로 복제된 것인지도 알 수 있다. NFT 증명서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복제와의 전쟁은 오래되었다. 일상생활과 가장 가까운 복제 범죄는 위조지폐이다. 지폐의 복제를 막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무늬가 달라지는 특수필름을 넣거나, 복사하면 색깔이 변하는 기술을 넣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위조지폐를 쉽게 확인하기 위해, 밝은 곳에 비춰보면 숨어있던 인물의 초상이 나타나는 ‘숨은 그림(워터마크)’을 넣어둔다. 금융기관 등 전문적인 취급자만이 알고 있는 방지장치도 있다.

관공서에서 혹은 인터넷으로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문서를 발급받으면, 문서가 진본임을 증명하는 표식이 들어간다. 집에서도 간편하게 프린터로 문서를 발급, 출력하게 되면서 복제를 방지하는 기술이 더욱 중요해졌다. 요즘은 졸업증명서도 인터넷 발급이 가능하니 예전보다 허위 학력을 내세우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졌다. 각종 증명서에는 고유의 발급번호 이외에도 여러 복제방지 기술이 적용된다. NFT에서 사용된 블록체인 기술을 졸업증명서에 적용하는 학교도 있다.

5만 원권의 빨간색 점선 안에는 띠 모양 홀로그램과 빛에 비춰야 나타나는 은선 등 각종 복제방지 장치들이 있다. 동아일보DB
워터마크는 생각보다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림 파일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견본으로 제공하는 그림에 모두 고유의 워터마크를 삽입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워터마크가 없는 그림을 사용할 수 있다. 언론사에서 배포하는 그림 파일도 불법 활용을 막기 위해 언론사의 로고가 박혀 있다. 동영상이나 노래 파일에도 워터마크를 넣는다. 상당수 회사에서는 어느 컴퓨터에서 문서가 출력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의 소속과 직위, 이름이 함께 출력되게 한다. 해상도가 높은 컬러프린터는 일반인이 알 수 없는 표식을 넣어서, 위조지폐가 발견될 경우 어느 프린터가 사용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다.

그간 유명화가의 작품이 진품인지를 판별하려면, 전문가의 눈으로 작가의 고유한 붓 터치나 그림에 적힌 작가의 필체를 살피곤 했다. 최근에는 과학적 방법이 동원되어, 작품에 사용된 물감의 성분을 분석하거나 종이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병원에서 볼 수 있던 X선 촬영도 동원된다. 이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기술인 NFT가 경매시장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에 판매된 그림은 작가가 5000일 동안 매일 디지털 아트 작품을 만들었고, 이를 하나의 파일로 만든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그림인데, 첫 NFT 경매라는 희소성을 갖고 있다. 이후 NFT를 활용한 예술품의 경매가 이어지고 있다.

진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남들과 차별화된 가치를 사는 것이다. 이 경우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인 가격이란 없다. 명품을 판매하고 사는 시장의 심리이다. 미술작품에만 NFT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도 쓰인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선수카드가 NFT 형태로 등장하고, 만화가의 스케치도 판매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식의 발행 확인을 NFT로 보증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NFT가 복제를 완전히 막지 못한다. 이는 소유와 거래의 기록이 담긴 위조불가능한 보증서이다.

그간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디지털 작품은 복제 우려 때문에 활발한 거래가 없었고, 작가의 노력이 평가받기 어려웠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관련 시장이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실체에 비해 거품이 낀 가격으로 시장을 왜곡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활발한 거래는 검은돈 세탁에 악용될 거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NFT 거래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가명으로 거래를 하기에 사기꾼의 앞마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어찌 활용할지는 사회의 몫이다. NFT가 없더라도 위작이 시장을 교란해 왔다. 미술 작품이 검은돈과 연결되는 건, 이전에도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의 뉴스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다만 거품에 휩쓸리는 사람뿐 아니라 피해자를 막을 방안은 있어야 한다. 첨단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최근의 열풍을 예술혁명이 아니라 투기성 높은 블록체인 기술을 향한 골드러시라고 하였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당신의 허영을 위한 NFT’라는 동영상을 판매한다고 했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이제 NFT의 미래는 소수의 기술자가 아니라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대로 넘어왔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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