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앱 전세매물 연락했더니 이미 계약됐다며 비싼 집 보여줘”

정순구 기자

입력 2020-10-20 03:00 수정 2020-10-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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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형 부동산 플랫폼 단속하자 중고거래 사이트로 허위매물 번져
대부분 공시 누락 등 중개사법 위반
업계 “감시 사각… 소비자 피해 우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신축 오피스텔 전세 2억 원.’

직장인 이모 씨(31)는 평소 자주 쓰던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생필품 등 저가 물건이 주로 거래되는 앱에 수억 원대의 전세 매물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마침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던 터에 주변 시세보다 5000만 원 정도 낮아 눈길이 갔다.

문제는 전세 가격 외에 기본적인 정보가 전무했다는 것. 판매자에게 쪽지를 보내자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로 오면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그는 “중개업소로 찾아가자 해당 매물은 이미 계약이 됐다며 다른 비싼 매물을 보여줬다”며 “허위 매물을 영업 수단의 미끼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부동산 허위매물 단속의 타깃을 대형 부동산 플랫폼으로 삼은 사이 부동산 중개매물이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단속 이후 네이버나 직방, 다방 등에서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한 매물이 급감한 대신에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 감시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동아일보가 부동산 허위매물 단속 계도기간이 종료된 9월 20일 이후부터 이달 7일까지 중고거래 서비스인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에 등록된 부동산 중개매물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은 중개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고나라 내 부동산 게시판 ‘강남·서초·강동·송파’에는 한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매물 23건을 올렸는데 모두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했다. 관리비나 주소지, 입주가능일 등을 표기하지 않았거나, 중개보조원이 매물을 올린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당근마켓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공인중개업소는 부동산 매물 500여 건을 당근마켓에 등록했는데, 모두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했다. 인천 남동구의 한 공인중개업소도 217개의 매물 중 분양광고를 제외한 모든 매물이 관련법을 지키지 않았다.

올해 8월 공인중개사법 개정으로 온라인에 부동산 매물을 올릴 때 △주소 △면적 △가격 △주차대수 △입주가능일 △관리비 등 중요 정보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위반 시에는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허위매물 광고의 경우 최고 5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허위 매물 단속 계도기간(8월 21일∼9월 20일)에 총 1507건의 허위 매물이 신고됐다. 이 중 네이버와 직방, 다방 등 대형 부동산 플랫폼에 등록된 매물이 1297건으로 전체의 86%를 차지했고,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에서의 신고 건수는 없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 감시를 피해 중고거래 플랫폼 등으로 부동산 허위 매물이 퍼지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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