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버티기 힘든데 보증상담 대기 한달… 망한뒤 지원받을 판”

김형민 기자 , 김호경 기자 , 황금천 기자

입력 2020-03-25 03:00:00 수정 2020-03-25 05: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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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소상공인 긴급자금 신청 ‘행정병목’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계단까지 긴 줄 24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정책자금 지원 대상 확인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계단까지 나와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어젯밤부터 줄 선 사람도 있어요. 나는 아침 6시에 왔는데 벌써 100명이 있더라고요.”

24일 대구 중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대구남부센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정부 정책자금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긴 줄을 서 있었다. 이날 남부센터가 준비한 대기번호표는 800장. 개점 30분도 안 돼 모두 소진됐다. 전날에는 오전 11시에 모두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출 신청자가 늘면서 번호표 소진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 긴급경영자금으로 12조 원을 풀겠다고 했지만 일선 현장에선 돈이 돌고 있지 않다. 실탄만 잔뜩 준비한 채 이를 어떻게 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 ‘행정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급경영자금을 받으려면 △소진공에서 정책자금 확인서를 받고 △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서를 발급받은 뒤 △은행에서 약정을 체결하고 대출하는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정책자금 확인서를 받는 기관이 소진공으로 제한돼 있다 보니 1단계부터 병목이 생긴다. 2단계에선 각 지역 신보에서 보증서 발급을 위한 상담 대기 시간만 3∼4주 이상 걸린다. 신보마다 인원을 확충하고 있지만 밀려드는 신청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다.


실제로 24일 오후 서울신용보증재단 마포지점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 대출을 받기 위해 보증 서류를 접수시키러 온 신청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보증 신청을 하러 온 김모 씨는 동네에서 작은 보습학원을 운영하다가 지난달에 휴업했다. 매출이 급감해 학원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급한 마음에 코로나19 소상공인 대출을 받으려고 이날 보증재단을 방문했지만, 다음 달 중순 이후에야 보증 심사가 완료된다는 말에 낙담했다. 김 씨는 “정부에서 조 단위 자금을 소상공인에게 풀었다고 하는데, 왜 나는 못 받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보증 받는데 한 달 반 이상 걸린다는데, 학원 망하고 나면 대출 나올 것 같다”고 했다.

16만여 명의 소상공인이 있는 인천도 마찬가지다. 인천 소재 일부 소진공 지역 센터는 오전 9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는데도 신청인들이 2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도가 3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대출 절차가 정부 자금에 비해 간단한 인천시 지원자금에 신청이 몰리고 있다. 홍종진 인천시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상공인은 당장 하루 벌어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인데 가게가 망해 문을 닫은 뒤 지원금을 받으면 무슨 소용이냐”며 “정부가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한 자금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금융권 및 지역신용보증재단 등에 따르면 소상공인 보증부대출 신청 건수는 지금까지 약 20만 건이다. 이 중 보증 심사가 완료돼 보증서가 발급된 건수는 단 2만 건으로 전체 신청 건수의 10%에 불과하다. 19일 정부가 내놓은 소상공인 긴급경영자금 대책도 상황이 비슷하다. 해당 자금 신청 건수는 이달 10일 기준 6만8833건이며 이 중 실제 대출이 실행된 건수는 3726건으로 단 5.4%에 그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신속한 자금 지원을 위해 이달 6일부터 소상공인 확인서를 온라인으로 발급하고 인력 200여 명을 주무 기관인 소진공의 자금 지원 업무에 투입했지만 자금 신청이 폭주하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온라인 소상공인 확인서 신청이 시작되는 오전 9시 무렵이면 소진공 홈페이지는 일시적으로 먹통이 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상공인 대출에 대한 은행의 부실 대출 면책을 관련 규정 개정을 통해 명확히 해주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대출 부실을 우려한 은행이 보증부 대출을 우선 취급하는데, 은행에 코로나19 대출에 한해 확실한 면책권을 부여하면 보증 대출 없이 자체 대출로 자금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소상공인 대출은 신속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일단 은행이 대출을 집행하고 추후에 정책자금으로 바꿔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김호경·황금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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