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중공업→로봇-연료전지… 124년간 이어진 ‘변화 DNA’

김현수 기자

입력 2020-02-14 03:00:00 수정 2020-02-1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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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15> 위기를 기회로 바꾼 두산그룹


“창립 100주년은 또 다른 100주년의 시작입니다.”

1996년 7월 31일. 박용곤 당시 회장은 창립 10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0년처럼 두산은 21세기에도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선도 기업의 역할을 다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국내 대기업 중 창립 100주년을 맞은 곳은 두산이 최초였다. 두산은 1896년 박용곤 회장의 조부인 박승직 창업주가 서울 종로4가 배오개 인근에 ‘박승직 상점’을 연 것을 두산의 효시로 본다. 기네스협회도 인정한 한국 최고(最古) 기업 두산그룹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창립 100주년 기자간담회 후 20년이 지난 2016년. 두산은 또다시 한국 기업사에 최초 기록을 얹었다. 한국 대기업 최초로 4세 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2016년 3월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오르면서 4세 경영이 시작됐다. 120년 동안 온갖 위기를 돌파하고 살아남은 기업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1950년대 50년에서 최근엔 20년 이하로 줄어든 상태다. 재계는 두산의 ‘변화’ DNA와 이를 뒷받침한 두산만의 독특한 지배구조를 ‘장수’의 비결로 꼽는다.


○ 모태사업을 넘어 글로벌 제조기업으로


1998년 10월 외환위기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은 두산을 비롯한 13개 기업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구조조정 모범 사례’ 기업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당시 두산은 코카콜라 사업권 매각부터 두산의 모태사업과 다름없던 OB맥주마저 지분 매각에 나선 상태였다.

사실 100주년을 맞았던 1996년부터 두산은 위기 상태였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등으로 주력 사업이던 OB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경쟁사에 뒤처지고 있었다. 1993년 회장이 된 박용곤 회장은 위기를 벗어나려면 변화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인 “팔릴 물건을 내놔야 시장에서 제값에 팔린다”를 앞세운 건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많은 대기업이 ‘대마불사’에 기대어 빈사 상태의 계열사를 시장에 내놓기 일쑤였던 때였다. 장사가 되던 네슬레코리아, 코카콜라코리아를 비롯해 위스키 사업 등을 접고 OB맥주 매각도 추진했다.

두산의 행보는 재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1952년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인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이 옛 기린맥주 공장을 인수해 동양맥주를 설립한 건 두산이 근대 기업으로서의 출발을 알린 신호였다. ‘전쟁 통에 누가 맥주를 마시냐’는 주변의 반대 속에서도 전쟁 통에 폐허가 된 옛 공장을 사들여 시작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100년 동안 내수 위주 사업에 30여 개 계열사로 무거워진 두산은 과감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1998년에는 계열사 매각 및 합병으로 계열사가 4개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 시작한 두산의 구조조정은 뉴스위크 등 주요 외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 기술 중심 회사로 변신


팔릴 만한 물건을 내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두산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2007년 밥캣(현 두산밥캣)을 인수하며 글로벌 기계·발전사업 회사로 변신했다.

박용곤 당시 회장이 10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신규 사업으로 메카트로닉스(기계 및 전자공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대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소비재 기업에서 제조 기반 기업으로 변신한 결과 두산은 해수담수화 분야 세계 1위(두산중공업), 소형 건설장비 스키드 스티어 로더와 어태치먼트 분야 세계 1위(두산밥캣), 세계 건설기계 시장 글로벌 톱10(두산인프라코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해 프랑스 케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두산의 변신 사례를 연구한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은 논문에서 ‘두산은 사업을 이어가는 것보다 기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생존에 중점을 둔 두산은 경영진의 ‘집단 지성의 힘’이 변화의 원동력이 됐다는 의미다. 4세 경영이 시작된 박정원 회장 대에도 두산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이 박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경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정원 회장이 추진하는 두산의 변신은 디지털 전환이다. 2016년 취임 직후 최고디지털혁신(CDO) 조직을 신설한 데 이어 두산인프라코어의 무인 자동화 건설 솔루션 ‘컨셉트 엑스’, 스마트폰을 이용한 두산밥캣의 원격조종 기술 ‘맥스 컨트롤’ 등 디지털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협동로봇(두산로보틱스)과 수소연료전지 드론(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2019년) 등 신사업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기술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가스터빈이 2023년 상용화되면 2030년까지 10조 원의 수입 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 마련된 두산그룹 전시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두산은 최신 기술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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