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양도세법… 세무사도 헷갈려 수임 포기 ‘양포세’

김호경 기자 , 세종=주애진 기자 , 장윤정 기자

입력 2020-01-17 03:00 수정 2020-01-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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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 부동산 정책]스스로 신뢰 깎아먹는 文정부
12·16 세부규정 마련 한달 걸려… 전세대출 수요자들 전전긍긍
임대사업자 세제혜택 오락가락… 종부세 3차례-청약 10여차례 변경
“규제대상인지 아닌지 몰라 답답… 주택거래 규정 난수표 수준” 한숨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최근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부가 12·16부동산대책을 발표한 뒤 대출, 세제 규제 등이 한층 더 복잡해지면서 관련 상담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그 덕분에 매출은 늘었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이란 표현까지 쓰며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강조하지만 급하게 징벌적으로 규제를 도입하다 보니 정부 신뢰가 깎이며 집값 안정 효과도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12월 5억9827만 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12월 8억9751만 원으로 50%가량 뛰었다. 결국 ‘누더기’가 된 규정 탓에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들이 정책을 따라가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 오락가락 ‘말 바꾸기’ 정책

2017년 ‘8·2대책’을 내놓으며 정부는 다주택자가 임대주택 등록 후 8년간 임대를 유지하면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임대소득세, 양도소득세 등을 면제하거나 대폭 줄여주겠다고 발표했다. 주거 안정을 목표로 임대 물량을 늘리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2018년 서울 집값이 다시 급등하자 9·13대책을 내놓으며 세제 혜택을 취소 또는 축소했다. “다주택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자 1년 만에 정반대 정책이 나온 것이다.

조율 없는 발표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8년 7월 돌연 “통으로 여의도를 개발하겠다”며 여의도와 용산 개발 계획을 밝히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박 시장은 거듭 “서울시의 권한”이라며 맞섰지만 서울 집값이 들썩이자 한 달 만에 이를 철회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자꾸 부동산 얘기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 땜질로 누더기 된 정책




금융당국은 12·16대책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장과 관련해 발표 당일 이전 입주자 모집공고(분양공고)를 낸 곳에 한해서만 종전 규정대로 이주비와 추가분담금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반발이 거세지자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발표 당일 이전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사업장에도 종전 규정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전세대출 세부 규정이 나오기까지는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정부는 12·16대책을 통해 9억 원 초과 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을 전면 차단하겠다고만 했고, 대출 수요자들은 정확한 시행 시기, 세부 규정을 알지 못해 마냥 가슴을 졸여야 했다.

대출, 세제, 청약 등 부동산 관련 규정이 수차례 수정되며 1주택자라도 9억 원이 넘는 집을 매매하려면 난수표보다 더 어려운 규정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택 양도세는 2017년 8·2부동산대책부터 지난해 12·16대책을 거치면서 비과세와 감면 요건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양도세 비과세 대상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세무사 중에는 몇십만 원 벌려다 몇천만 원 물어줄 수 있다며 수임을 포기하고 있어 ‘양포세’(양도세를 포기한 세무사)라는 자조어가 유행할 정도다.

추가 대책이 이어지면서 다른 세법들도 누더기가 됐다. 종합부동산세만 하더라도 이번 정부 들어 2018년 7월 세법개정안과 그해 9·13대책, 지난해 12·16대책 등 세 차례나 손을 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약제도는 10차례 이상 변경됐다.


○ “정부 스스로 신뢰 깎아먹어”

일각에선 부동산 정책의 혼란이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가 정책 방향을 선회하면서 생긴 후폭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서울 강남을 타깃으로 한 대책에 부정적이었던 청와대가 집값이 계속 오르자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초강경 기조로 돌아서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아니면 말고 식의 ‘공수표’만 날리며 스스로 신뢰도를 깎아먹고 있다고 지적한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정책을 정책이 아니라 정치 차원에서 접근하다 보니 일관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 / 세종=주애진 / 장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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