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기 초저물가에 근원물가 ‘바닥’…“사실상 디플레”

뉴시스

입력 2019-12-02 15:00:00 수정 2019-12-02 15: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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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올해들어 11개월째 0%대…역대 최장기간
일시·계절적 요인 제거한 근원물가 1999년 이후 최저
"L자형 침체 우려…'일시적 현상' 정부 진단 어불성설"



지난 9월 사상 처음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deflation·경제 침체로 이르는 상품·서비스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한 차례 제기됐었다.

연말엔 반등할 것이란 정부 예상과 같이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소폭 반등했다. 그러나 0%대 저(低)물가 현상이 역대 최장기간 지속된 데다 ‘근원물가’가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우리 경제는 이미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접어든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7(2015년=100)로 1년 전보다 0.2%포인트(p) 상승했다. 이 지수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올해 들어 1월부터 11월까지 11개월째 0%대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가장 긴 기간이다. 경기 부진과 함께 시작된 저물가 현상이 유례없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11월 기준 전년누계비 소비자물가 상승률(1월부터 해당 월까지의 물가 수준을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한 변동률)은 3개월째 0.4%에 머물고 있다. 연간 수치가 1%에 못 미쳤던 적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경기가 위축됐던 2015년(0.7%)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덮쳤던 1999년(0.8%)이 유일하다.
연간 0.4%의 상승률은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전망치(0.9%)에 한참 못 미친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이미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에 그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다음달에는 상승률이 0%대 중후반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정부 전망도 무색한 상황이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예측이 쉽진 않지만, 다음달 국제유가의 상승 등을 고려하면 마이너스 물가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가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기획재정부 역시 “기저효과 등 특이 요인이 완화되면서 연말엔 0% 중반대로 회복될 전망”이라고 했다.

일시적 충격의 영향을 반영하지 않은 물가의 기조적 흐름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절적 요인에 따라 등락이 큰 농산물과 외부 요인에 민감한 석유류 등을 제거하고 산출한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 즉 ‘근원물가’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0.6%로 물가 상승률이 공식적으로는 처음 0% 아래로 내려갔던 지난 9월(0.5%)과 함께 1999년 12월(0.5%)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로 쓰이는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 역시 1999년 12월(0.1%) 이후 가장 낮은 0.5%를 나타냈다.
이대로라면 연간 근원물가와 OECD 기준 근원물가 모두 1999년(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 0.3%,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 -0.2%)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공식 수치로 지난 8월(0.0%), 9월(-0.4%), 10월(0.0%) 이후 넉 달 만에 플러스(+)로 반등했다. 그러나 그간 작년 대비 기저효과(경제 지표 평가 시 기준 시점과 비교 시점의 상대적 수치에 따라 그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로 초저물가 현상을 이끌었던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등을 걷어낸 근원물가가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했던 지난 9월과 같다는 점을 보면 지수의 반등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 우리 경제의 기초 여건이 반영된 수요 측 물가 압력이 낮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원물가가 지속해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통계청은 집세와 학교급식비, 해외단체여행비 등 서비스 부문에서의 가격 하락세가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집세는 지난 5월부터 7개월째 하락 중이다. 무상 급식 등 복지 정책이 시행되면서 학교급식비는 지난 3월부터 9개월 연속 -40%가 넘는 하락률을 나타내고 있다. 해외단체여행비는 국제유가 하락에 영향을 받아 9월(-4.2%), 10월(-2.9%)에 이어 11월(-3.8%)까지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측 압력이 약화하고 있는데 따른 우려는 여전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낮은 근원물가 수준과 더불어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전월 대비해선 -0.6% 하락한 것을 두고 “사실상 디플레이션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전년 대비 -0.1%건, +0.2%건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비용 관련 정책이 경기 부진을 심화하면서 2%대 물가 상승률 목표에서 완전히 이탈했다”고 짚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물가가 마이너스냐 아니냐보다는 0%대 저물가가 10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L자형 침체가 우려되는 경기 상황을 고려할 때 최근의 물가 하락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정부 진단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자율을 내렸지만, 저물가가 지속되면서 통화 정책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내년 예산 역시 복지나 일자리 부문에 치중돼 있어 경기 부양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최근의 저물가 상황에 대해 “수요 측 물가 압력이 낮아지고 있다”고 일부 인정하면서도 “공급 측 요인과 정책 요인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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